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국공립 공연장, 전시관, 도서관이 장기간 폐쇄되고, 예술이 멈춤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기를 우리는 겪었다. 그리고 이 간헐적인 닫힘과 열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교육 현장은 많은 혼돈이 있었고, 동시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일찍이 미국의 극작가 토니 쿠쉬너(Tony Kushner)는 “예술이란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이웃을, 자신의 지역을, 사회를,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예술에 있어 ‘깨어 있는 의식’이야말로 변화의 핵심이며, ‘예술은 바로 그 의식이 깨어나도록 돕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예술교육이란 우리가 놓인 이 상황과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고,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생각과 의식이 깨어나는 변화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하는 과정 속에 녹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갑작스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덥쳐 오고 이로 인한 ‘집합명령금지’ 상황에서 예술교육 현장이 가장 먼저 했던 대응 중 하나는 바로 ‘비대면 콘텐츠 개발’이었다. 가장 빠르게 정책적으로 적용되고 선호되었던 것은 온라인(동영상 혹은 실시간 화상용) 수업자료 만들기와 참여자에게 전달할 교육 콘텐츠 키트였다. 지원사업 운영자 입장에서는 예산지원 근거를 위해, 현장 예술교육가 입장에서는 비대면 상황에서 교육 참여자를 만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길로 여겨졌다. 그 과정에서 비대면은 디폴트로 인식되었고, 동영상 강의자료나 키트 제작은 일종의 ‘전형’이 되었다.
일례로 작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신청자 집으로 배달된 예술 꾸러미(키트)에 동봉된 매뉴얼에 따라 예술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꾸러미(키트) 배달 프로그램이 그 주된 콘셉트였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화체육관광부 2020.11.10.)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위로...‘예술처방전’ 배달
https://www.korea.kr/special/policyFocusView.do?newsId=148879672&pkgId=49500742
개인적으로 나는 비대면 상황에서 예술교육 관련 온라인 기반 수업이나 배달용 키트의 개발 및 활용 그 자체는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늘 정책사업에서 나타나듯, 이러한 사례가 결국 ‘전형화’되고 ‘매뉴얼화’ 된다는 점이다. 특히 중앙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선례는 실제 교육 참여자를 만나는 지역 현장에 일종의 ‘뉴노멀’이자 이제는 당연한 ‘노멀’이라는 시그널을 주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시민들의 향유(享有)를 최전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문화원 역시 이러한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라 짐작된다. 특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밀착형 문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비대면 콘텐츠 개발에 앞서 당장 스마트 기기 활용 등 비대면 소통 방법론부터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형화’와 ‘매뉴얼화’가 가진 가장 치명적 문제는 결국 ‘본질’보다는 ‘형식’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는 점에 있다. 지원사업은 그 속성상 늘 현장을 시간에 쫓기게 한다. ‘비대면’ 상황에서 ‘예술’을 매개로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예술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키트나 수업 자료를 개발하는 것은 단순히 하룻밤, 이틀 밤을 샌다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비대면 소통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은 대상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타이트한 사업일정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그 과정에서 ‘본질’을 충분히 고민하고 성찰할 시간의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모두가 한창 정신 없던 작년 여름, 당시 필자가 예술향유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만난 한 현장 예술교육 전문가와의 인터뷰는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는 예술교육이 ‘예술적’이기 쉬웠던가요? 문화예술교육은 늘 정책(슬로건)에 속박당해 있어요. (지원사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역 사회에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야 하고, 공동체(커뮤니티)도 만들어야 하고, 다양한 대상도 발굴해야 하고, 그들의 니즈도 찾아야 하고…. 거기에 지금은 비대면도 극복할 수 있는 콘텐츠도 당장 만들어야 하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야 하고요. 물론 예술가로서 저는 예술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지금 이렇게 갑작스런 팬데믹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어요. 하지만 사업으로 접근하는 틀 속에서, 늘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어요.”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예술교육이 ‘전형화’되고 ‘매뉴얼화’ 되는 문제가 비단 코로나19 상황이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늘 예술교육은 중앙에서 이야기하는 정책 담론에 부합해야 하고, 기조에 따라 사업들은 양산되고, 정해진 가이드라인 틀 속에서 움직여 왔다. 하지만 정책 기조와 상관없이 ‘항상성’을 가지고, 늘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예술교육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고민해왔을까?
지금 이 순간 역시 비대면 국면은 지속되고 있고, 정책도 현장도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논의에 집중되는 듯하다. 작년 말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계획 발표에서 가장 강조된 의제 중 첫 번째는 바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안전한 문화생활지원’이었고, 관련하여 제시된 사업들 역시 ‘분야별 비대면·온라인 사업’이었다.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지원 관련 신규예산도 20억 원이 포함되었다.
출처: 문체부 보도자료(2020.12.02.) 2021년도 문체부 예산 6조 8,637억 원 확정.
https://www.mcst.go.kr/kor/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8496
국가 차원에서 국민의 문화적 권리이자 향유의 기반으로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정책적으로 인식하고 지원해 온 지 벌써 20여 년 가까이 되었다. 당시 예술교육을 추동한 다양한 개념과 철학, 정책적 동기들이 상존했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기존 예술교육의 문제로 늘 지적되었던 경직된 방식의 기술·기량 습득 중심의 ‘전형성’ 극복 혹은 참여자와의 열린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일방적이거나 획일적 혹은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부터의 탈피였다. 돌이켜 보면, 결국 ‘예술적’이지 못했던 예술교육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공감이었던 셈이다.
예술에 있어 모두가 같은 예술을 찍어내듯 만드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쿠쉬너(Kushner)가 말했던 예술을 통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의식의 깨어남은 결국 예술의 본질이 보편성에 머무르지 않고 특수성을 발견해내는 것에 있음을 의미한다. 정원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일상이 재미와 안전을 추구하는 반복적 행위라면, 예술이란 안락함, 편안함을 추구함으로써 보지 못하게 되는 그 거대한 세계에 눈길을 돌려보길 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 그렇다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80억 사람들 모두를 획일적으로 불편하게, 안락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팬데믹 상황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는 새로운 환경적 조건이라고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보편성과 획일성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과 독창성을 찾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때, 20여 년 전 예술교육이 이전까지의 ‘전형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정책적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 당시 우리 사회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것을 강조해야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었음을 되새기게 한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이 된 뉴노멀 상황에서 예술교육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비대면 영상 콘텐츠의 전달이나, 키트의 배달을 넘어, 우리의 예술교육이 지금 이 순간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이 엄혹한 전 지구적 뉴노멀 시기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과 관계 맺음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에 관한 치열한 상상력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언제나 전형성과 보편성을 속성상 강조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는 틀과 늘 부대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보려는 새로운 도전 또한 지속해왔다. 모두가 ‘마스크’와 ‘비대면’을 디폴트라고 하는 또 다른 획일적 환경과 더 불편한 상황이 주어졌지만, 우리가 지금 바라보아야 지점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 어쩌면 20여 년 전 ‘전형성’과 ‘획일성’을 넘어서서 새로운 예술적 상상력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을 예술교육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그때의 마음가짐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위드 코로나 시대 형식을 넘어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는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정원철이 2020년 10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에서 한 발언을 다시 음미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작품은 예술가의 정신이 사람들과 만나는 매개체이기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사람들과 만나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술가와 예술교육자 모두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궁극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서만 발언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예술교육자는 자기 작품 창작하듯이 온 힘을 기울여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중략) 예술은 선언이고, 예술교육은 실행입니다.”
1) 정원철(2020) ITAC5, Korea Teaching Artists Present 중 영상발제문 일부 발췌.
https://www.youtube.com/watch?v=hDzz0SDnI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