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출’ 씨는 은퇴한 집배원이다. 덕출 씨는 해남의 남편이자 성산, 성숙, 성관, 세 아이의 아버지이다. 덕출 씨는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 믿고 살았다. 자녀들은 잘 자라주었고, 가정은 비교적 행복하다. 그 사이 덕출 씨는 70살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덕출 씨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 그것은 발레다.
‘채록’은 23살의 발레리노다. 아니, 아직 데뷔하지 못한 발레리노 지망생이다. 축구선수였으나,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채록이 다니던 학교의 축구감독이었지만 폭행으로 교도소에 갔다. 채록의 재능은 환경에 가려져 있다.
‘기주’는 채록을 거두어 발레를 가르친다. 기주는 부상으로 은퇴한 세계적인 발레리노다. 기주는 채록이 덕출 씨에게 발레를 가르치도록 한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채록이 나이든 몸에도 발레에 진심으로 도전하는 덕출 씨를 마주하며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채록은 덕출 씨에게 발레를 가르치다가 덕출 씨가 가족에게도 미처 말 못한 그의 병까지 돌보게 된다. 덕출 씨는 채록에게 발레를 배우며 채록의 매니저라는 명목으로 채록이 갖지 못한 가족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그렇다. 드라마 [나빌레라] 속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꿈꿨던 노인 문화예술교육, 세대 소통, 예술적 경험, 예술의 사회적 가치, 문화안전망…, 그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화롭게 펼쳐진다.
젊은 시절, 나의 아버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봉화의 한 광산에서 지질기사로 일을 시작하고, 몇 년 뒤에는 캐나다 퀘백의 광산에 취직해 바다를 건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원을 사고파는 1세대 상사맨이 되었다. 말 그대로 세계를 누볐다. 중국이 열릴 때, 소련이 열릴 때, 그렇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늘 그곳에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그곳의 말을 배우고 문화를 배웠다. 그리고 그 둘을 합쳐 가는 곳마다 현지형 ‘아재 개그’를 시전하며 생존했다.
그런데 70살이 된 나의 아버지는 다니던 극장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었다. 문제는 함께 보기로 약속한 영화가 아버지가 늘 다니던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다른 극장에 표를 예매했는데, 아버지는 돌연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화를 냈었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게 힘들다고…. 메가박스 코엑스관에 가면 표를 어디서 살지, 주차를 어디에 할지,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다 아는데, 그렇지 않은 곳에 가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극장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과 긴긴 시간 토론하며 나와 다른 그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고자 했던 내 자신이 정말 멍청했다고 생각했다.
덕출 씨가 현실에 존재했다면 드라마처럼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그가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서 <백조의 호수>를 출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단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운영하는 개인 스튜디오의 교습료를 덕출 씨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덕출 씨는 공공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찾아보겠지만, 발레를 가르치는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문화원, 생활문화센터의 프로그램들은 최소인원을 채워야 한다. 발레를 배우고자 하는 노인을 열 명씩 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요청해도 수업이 개설되지 못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혹은 원한다고 믿는, 쉽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었을 것이다.
정말 운 좋게 발레 과정을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수업은 일주일에 많으면 세 번, 대부분 한두 번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16주차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 주에는 틀림없이 발표회가 예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발표회에서 주인공은 젊었을 적 춤 좀 춰본 어르신이 맡게 되었을 것이고, 공연이 끝난 뒤 덕출 씨는 플래카드 끝부분에 걸쳐 찜찜한 미소를 지은 채 찍은 기념사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또 있다. 수업 중 위험한 요인들은 모두 제거되어 있을 것이다. 사고는 프로그램과 기관의 성과평가에서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라마에서처럼 덕출 씨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드라마에서처럼 1:1로 지도를 받을 수도 없을 것이고, 눈만 뜨면 스튜디오로 달려가 온전히 자신의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 속 스튜디오는 낡은 교회를 개조한 자연광이 연습하는 덕출 씨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는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옆방에서 난타가, 뒷방에서는 양말 공예가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이라 불리는 공간의 형광등이 켜진 구석방일 확률이 높다.
결정적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채록과 스태프들의 일상적인 돌봄, 그리고 덕출 씨의 수업 밖 활동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증빙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산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4만3천원을 받는 주강사나 보조강사가 알츠하이머를 겪는 덕출 씨를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따로 돌보는 것은 힘들다. 덕출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수업에 계속 참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주와 같은 매개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주는 채록과 덕출 씨에게 강사와 매니저라는 각각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황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모든 자원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왕자님이랄까.
아마도 이러한 현실 속에서 덕출 씨는 발레를 포기하고, 오카리나나 우쿨렐레를 배워 <백조의 호수>를 연주하며 ‘그래도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의 반은 이루었구나’ 하고 자위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기관의 권유로 소외계층을 위해 ‘찾아가는 연주회’ 같은 무대에 서게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운동 중 다리를 다쳐 몇 달 간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가장 고생했던 것이 화장실이었다. 나는 남보다 장(臟) 활동이 활발하다. 신호가 온 뒤에 평소와 같은 속도로 화장실에 도착할 수 없었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도착해 문을 연 그곳에 ‘쪼그려쏴’ 변기라도 얼굴을 내밀면 말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극장을 바꾸지 못하는 아버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내 장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무릎이 아프다.
‘창피’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은 나보다 덕출 씨와 아버지에게 훨씬 더 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인생 대부분 시간을 공적 영역에서 존재해야만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끝임없이 남과 비교 당하며 경쟁해야만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과 체면이 중요해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노인에게 ‘공적’ 영역에서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형식은 가장 익숙한 형태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살던 대로’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형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을 ‘꼰대력’이 최대치로 발휘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놓고, 그들에게 꼰대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 몇 가지와 ‘하고 싶은 것을 하셔도 된다’는 짧은 응원 몇 마디가 그들의 몸에 켜켜이 배인 세월의 근육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 [나빌레라] 속 덕출 씨의 발레는 ‘사적’ 영역에서 ‘개인’으로, 또 교육보다는 ‘학습’으로 덕출 씨의 삶을 바꿔놓는다.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가족에게 취향을 드러내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세대 간의 소통이 아니라 혼자서 자신의 몸과 역사를 온전히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수업 참여가 아니라 마당과 공원에서 매일매일 반복하는 훈련과 학습 과정을 통해 덕출 씨는 삶의 전환점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형식의 사업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3명의 예술강사가 아이 한 명에게 취향에 맞춰 3개월간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공공의 지원을 받았다.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고 구입하는 과정을 ‘무정산(無定算)’으로 지원하는 공공 프로그램도 생겼다. 형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 남성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변화하기 위해, 아니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변화의 씨앗은 내용보다 형식에 있는 것은 아닐까?
몇년 전 하와이의 한 마을에 보름 동안 머문 적이 있다. 한 곳에 꽤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자주 마주치게 된 몇몇 남성 노인들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그 중 한 명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일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이야기하기 바빴다. 노년을 하와이에서 보내겠다고, 하와이에서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결심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고서도 자신만을 위해 ‘◯◯’을 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