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러면 나의 뇌수가 고동칠 겁니다.
나의 뇌수를 불살라 버리세요, 그러면 당신을 내 핏속에 실어갈 겁니다.
_ 라이너 마리아 릴케
halt mir das Herz zu, und mein Hirn wird schlagen,
und wirfst du in mein Hirn den Brand, so werd ich dich auf meinem Blute tragen.
_ Rainer Maria Rilke
릴케(R.M.Rilke 1875-1926)
인간은 영원을 갈구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을 통해 그 영원을 달성하려 한다. 독일의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가 사랑하는 여성에게 바치는 이 시는 영원을 향한 시인의 미칠 듯한 감정을 드러내며 위와 같은 구절로 끝맺는다. 시인에게 심장은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는 성스런 장소다. 그 심장이 멈추면 사랑은 끝날까? 아니다. 그 사랑이 시인의 뇌에 새겨졌기에 이번에는 그 사랑의 추억이 심장을 대신해 고동칠 것이다. 그런데 그 뇌수마저도 불태워진다면? 시인은 그 사랑을 핏속으로 실어가겠다고 결의한다. 핏속으로 실어간다니 대체 무슨 말일까? 그 사랑을 현재에서 미래로 기필코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그의 영원한 사랑을 후세에 이어가고 있다. 그의 시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여전히 심장을 고동치게 하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이 영원을 이어가기 위해서 선택한 기록의 방식이다. 우리의 모든 삶과 활동, 사고의 기억은 뇌수에 있다. 그런데 인류라는 생물종의 진화는 한 개체의 삶이나 한 세대만의 기간이 아닌, 수많은 인류의 기나긴 적응과정 속에 응축된 정보를 우리의 형질에 새겨 후손에게 유전시킨다. 일종의 진화를 위한 기록 방식이 DNA인 것이다. 인간의 DNA에는 생명의 탄생과 인류 진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에 임신이 이루어지면 이 유전정보에 따라 배아가 형성되면서 진화의 과정을 재현한다.
지질층은 지구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하나하나 보여주는 기록물과 같다. 지구가 처음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그 토대 위에서 생명이 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지구 자신의 기억체계이자 지구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 지질층의 가장 위층은 최근에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명명된 지질층이다. 이 지층에는 그동안 인류가 살아온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플라스틱과 비닐, 스티로폼, 닭뼈, 아스팔트, 콘크리트, 그리고 수천 미터 지하에 매립된 방사능 폐기물…. 인류는 여기까지의 활동을 지질층에 새기며 인류세 층으로 끝내 종말을 고하고 말았는가?
F.M.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19세기 도스토예스키의 소설 『죄와 벌』 끝부분에 보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결국 자수하여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다. 거기서 그는 한동안 기괴한 꿈에 시달린다. 인류가 아시아에서 발원한 미생물균에 감염되어 자멸의 길을 걷게 되는 꿈이다. 지능과 의지를 부여받은 이 세균에 감염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믿게 되어 자신만이 간직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싸움이 시작되고 서로를 죽이면서 그렇게 멸망해 간다. 인류가 지구에서 멸절되고 마는 원인은 결국 소통과 합의가 불가능한 사회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와 벌』의 에필로그는 이렇게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예견하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기괴한 꿈은 2020년 코로나19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급습으로 휘청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본의 힘을 과신해왔던 인류는 이제 팬데믹에 따른 현대 사회의 역기능, 사회적 합의의 어려움, 소외층의 양산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담하고 있는 사회체제와 국가의 본질에 대해서 되묻고 성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근대의 합리적 이성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만들어 그로부터 획득한 부(wealth)를 어떻게 지키고 누릴 것인지를 두고 이를 보장할 국가를 상정했다. 부를 두고 벌어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지하려면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절대권력인 국가의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1649년 영국의 크롬웰은 청교도 혁명 후 공화정을 선포했을 때 국가를 스테이트(state)가 아닌, 커먼웰스(Commonwealth)로 표현했다.
이제 인류는 공통의 부(common wealth)가 아니라 그의 탐욕적 자연 파괴의 결과로 빚어진 공통의 빈곤(common poverty)을 어떻게 나누고 책임질 것인지를 두고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상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코로나19 이후에 어떤 위기가 예상되고 있는가?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재난의 확산이다. 지구 자원의 한계와 제동이 걸리지 않는 인류의 탐욕을 뒤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도시적 삶의 양식을 버리는 길뿐이다. 이 위기 앞에 인류는 과연 소통과 합의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5년 안에 탄소제로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류는 과연 살을 깎는 마이너스 성장을 수용할 수 있을까? 5년 안에 상하이와 서울은 인구를 백만 명 이하로 줄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더 이상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국가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이 실천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빈곤의 현실을 헤쳐나가야 할 지역 단위에서 오직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나의 나됨, 나를 타자와 구별 짓는 다름, 나에게만 고유한 특성 등을 말한다. 살아 있는 경험세계에서 느껴지는 정체성은 무엇이고, 또 그런 정체성은 어떻게 확보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가진 몸이야말로 우리 정체성의 근간이다. 나는 나의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타자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은 몸의 사멸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나의 세계, 나의 우주도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든 것은 끝나버리고 마는가? 우리의 몸은 이런 절대적 시간의 폭력성에 대항하기 위해서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왔다. 그것은 바로 ‘기억’(memory)이다. 불가항력적 시간의 흐름(크로노스적 시간)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우스는 기억의 저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기억은 인간의 경험을 담는 그릇이다. 기억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세계 경험을 내면화할 때, 경험은 비로소 체험(Erlebnis)이 된다. 마찬가지로 기록은 인간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기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세계 경험을 밖으로 표출하며 타인과 공유한다. 기록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가 되고 서로 다른 공간적, 시간적 지층과 만나면서 역사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기록은 무엇인가? 처음에 기록은 동굴이나 바위에 그림으로 새겼고 비문이나 도판, 파피루스에 문자로 새겼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는 자신의 몸에 삶의 내용을 기록했다. 몸이 바로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을 새겨온 원천기록이다. 얼굴은 표정으로 그의 기분과 정서를 표출하며 그것이 쌓이면 주름으로 그의 삶의 정황을 새겨놓는다.
하지만 낱낱이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대 이집트에서는 심장의 무게로 그 사람이 살아온 윤리적 삶의 총체를 알 수 있다고 여겼다. 현대에 와서는 회백질의 뇌에 그 사람의 모든 삶의 기록들이 저장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기억들의 총합이 과연 ‘나’일까?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감정, 내가 의도하고 욕망했던 것들,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내용, 내가 일하고 행했던 모든 행동과 태도, 나의 움직임의 모든 동선, 그리고 나의 입으로 발화된 모든 언어들―이 모든 내용들을 디지털 기록으로 작은 메모리 칩에 담는다면 그것이 곧 나의 ‘내용’이요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은 기억이나 기록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유한한 몸이지만 그 몸을 통해 들어온 우리의 세계 경험은 다 기억될 수도 없고 기록될 수도 없다.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에 가득하도록’(요21:25) 기록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사람의 생애를 다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기록 보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디어는 새로운 지각의 형태이자 새로운 경험의 재현 방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불가역적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미디어의 풍요로움은 더 이상 소멸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했다. 이제 원본은 필요 없다. 그 무엇이라도 원본보다 더 원본성을 지닌 형태로 재현해낼 수 있다고 믿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몸은 인간의 한계성이자 인간 정체성의 근간이기도 하다. 정신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려면 정신은 몸을 입고 특정 장소,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성육신, 육화(incarnatio)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경험하는 세계는 좌표로 눈금화된 수학적 공간, 물리학적 진공 상태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place)로 경험되는 공간이다. 공간(space)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의미화되고 가치가 부여되면서 비로소 ‘장소’가 된다. 나의 몸을 중심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공간은 살과 피가 있는 ‘장소’로 육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정체성은 몸의 이동을 통해, 발로 이동해가는 장소성의 변화를 통해 경험되는 삶의 내용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그 정체성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일회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이다.
국가를 대체하는, 다중의 집단적 자치를 주창한 네그리(Antonio_Negri)와 하트(Michael_Hardt)
서구의 근대 사회가 시작된 17세기에 이성에 대한 자각은 그동안 개인을 억눌러왔던 종교적 권위를 끊어내고 오직 개인으로서의 ‘나’를 획득하고자 했다. 근대의 문을 연 르네상스인들은 가문을 나타내는 성(姓)이 아니라 오직 나를 지칭하는 고유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아직 자기 욕구의 주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만 있을 뿐,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거나 소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 이런 단절 상태에 놓이게 되었을까?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 욕구와 욕구가 서로 충돌하는 공간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별화된 개체(in-dividuum),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창 없는 모나드(monad without window), 고립된 원자적 자아(a-tomos), 이 모두가 서구의 근대성 개념이 기반하고 있는 비극적 공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사고의 주체로서의 ‘나’ 만으로는 나의 정체성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생각하는 나의 존재가 아무리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 ‘나’는 결국에는 의식 속에 고립되어 있는 존재일 뿐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나의 의식의 작용이 창조해낸 이 세계의 외로운 섬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에게로 가 닿을 수 있을까? 나와 동일한 의식을 가진 수많은 주체들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생활세계’(Lebenswelt)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만일 우리에게 타인에게 다가설 수 있는 창문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각자의 영상실에서 자신의 영화필름을 돌리고 되감으면서 자기의 세계만을 폐쇄적으로 감상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추위에 떨고 누군가의 말에 울고 웃으며 또 쉽게 상처받는, 그렇게 구체적인 ‘나’는 분명 현재형의 공간,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 공간 위에 비로소 존재한다. 그렇지 않은 나는 그저 나일 뿐, 텅 비고, 공허한 나에 불과하다. 나의 몸을 통해 감각을 느끼면서 자각할 수 있는 나.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 스스로를 세우고 삶의 내용을 채워가고 있는 나. 지금 여기. 같은 시기, 같은 동네와 마을,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 그런 내가 모여서 함께 공동체적 자아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적 자아를 기반으로 해야만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비로소 다중이 주체적으로 자치를 이룰 수 있는 공통체(Commonpoverty)*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진정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어째서 그런가? 과거에도 우리는 마을에서 살아왔고 지역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은 지리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든지, 통치 권력에 의해 구획된 지역에 불과했다. 중앙권력에 의한 수탈과 문화적 독점화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주민들이 새로운 주체로, 중심으로 나서고자 하는 의식이 없이 그저 그들이 그어놓은 경계를 따라 그 안에 안주하며 순응해왔던 객체에 불과했다. 주민이 주체가 된 지역의 발견, 바로 ‘마을’의 발견이다. 거기서 출발해야 바로 진정한 근대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적 과정에서 근대성의 의미를 되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서구 제국이 거쳐온 근대의 과정이 왜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의심해보아야 했다. 생각 없이 그들을 따라 하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근대적 시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했다. 조선후기 왕조권력과 귀족층의 수탈에 이어서 식민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약탈적 대상화를 겪어온 한국에서 과연 ‘지역’은 존재했는가? 시민세력이 배제된 근대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가혹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지역은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식민성에 침식되어왔다.
지역의 새로운 발견, 지역 시민층의 형성이 없다면, 우리에게 지역의 역사는 없다. ‘지역’을 발견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지방’을 말하고 있다. 마을을 세우려고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두레와 향약, 또는 새마을운동을 말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의식 없이 깨우치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도시 공간 구조 속에 구획된 개인으로 살면서(apartment) 여전히 우리는 공동체를 말하고 있다. 도시 공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개인을 분리하고 소통과 관계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 우리를 편입시켰다. 지역을 오직 공간으로만 분할해 놓은 도시 구조에서 우리에 의해 새롭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은 그런 장소는 어디에 있는가? 지역에서 새로운 지역문화를 향한 지역 주민의 참여와 공동체적 연대는 과연 가능한가?
* A.네그리와 M.하트가 2009년 저술한 책 『공통체』의 원제목인 ‘커먼웰스’(Commonwealth)는 근대 사회에서 공통적인 것(the common)으로서의 부(wealth)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상정된 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원래 홉스(Thomas Hobbes)의 저작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쓰였던 개념이다. ‘커먼파버티’(Commonpoverty)는 이 말의 반대 개념으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어) 빈곤(poverty)을 공통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현재 인류가 놓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를 가리키는 말로,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처음 고안한 용어임을 밝힌다.
하워드 진(HowardZinn 1922~2010)
이제 ‘지역성’의 이야기를 논의해보기로 하자. 지역성의 개념은 서구 지성사에서 추상적 이념의 세계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을 뒤집고 현실의 세계를 되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개념이다. 중세에는 우리가 사는 땅은 불완전한 세계이며 온갖 위험과 고농도 방사능이 퍼져 있는 구역이었다. 신화가 말하는 금지구역, 금단의 땅이란 무엇인가? 고결한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더럽혀진 추방의 땅에 신이 스스로 추방의 몸을 입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성의 발견은 근대정신의 시작점이요, 피와 살이 느껴지는 생활 현장의 발견이다. 중세말 ‘지역교회’는 라틴어로 집전되는 종교 특권층의 보편교회를 대체했다. 지역 말로 예배가 집전되고 지역의 문화와 정서 속에서 그들의 삶의 문제와 애환을 함께 나누는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참다운 지역문화는 없었다. 지역문화의 핵심은 지역의 관점에서 문화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행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지난날 우리의 시골은 그저 중앙정부와 서울 같은 대도시의 문화만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수준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원래 그 지역의 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수준이 낮은 변두리 문화로 천대받아왔다. 이제는 누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일, 그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를 찾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촌뜨기 프랑스 말이 유럽의 외교언어가 되듯이, 제주말과 안동말이 서울말을 물리치고 더 주목받고 대접받기 시작했다. 시골말이 그 지역의 문화를 물씬 담고 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역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요, 더 나은 지역의 미래 모습을 함께 꿈꾸는 일이다. 그동안 지역의 역사에 주민의 삶과 애환은 없었다. 실록, 읍지 류 같은 관찬(官撰) 기록물에 주로 의존해왔던 향토사에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던 곳은 지방이었고 변방이었고 향토였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아키비스트인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서구 중심의 역사와 권력에 대항해 아키비스트에게 정반대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중앙권력과 관료적 시각에 치우친 역사와 문중사를 걷어치우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차별과 소외로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땀 냄새 나는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렇다면 대체 지역문화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화성’의 문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화성을 내용으로 하는 문화다. 1949년 군에서 2001년 시로 승격한 화성시가 화성인가? 화성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화성이고,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 화성이며, 그들이 빚어내는 삶의 내용이 화성의 문화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화성의 역사에 뿌리를 대고 있는 문화다. 주민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삶의 경험이 화성이고, 지금의 화성을 살아가는 나의 경험이 화성이며, 그 속에서 동질성을 느끼고 이를 공동체로 수용하는 과정이 바로 화성의 문화*인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역을 성찰하고 출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지역 아카이브 운동’이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화성시가 ‘수원화성’을 수원시로부터 뺏어올 필요가 없고 ‘융건릉’이라는 역사자원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는 마치 ‘여주영릉’이 가지고 있는 세종대왕의 애민군주 이미지에 압도되어 여주시에 있는 다른 더 좋은 문화적 자산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도 닮아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시선으로 주체적으로 지역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동안 지역은 역사적으로 늘 대상화되어왔기에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사실은 지역의 주민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들의 기록에 의존하여 지역의 모습을 복원하려 했고, 이를 재현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남겨진 기록들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라 믿었기에 그것을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기록은 사회질서를 주도하는 권력들이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만을 기록하고 그들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역에서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지자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시·군지는 관찬 읍지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부가적으로 주민의 삶과 마을 이야기 같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의 통시적 기록사업으로 이어져온 시·군지의 성격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게다가 행정과 외부 전문가 중심의 집필 방식으로 시민에게 널리 읽히기도 어려웠다. 이제는 방대한 시군지 편찬사업보다는 시민 중심의 집필과 시민의 참여를 보다 확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시·군지가 담아낼 수 없었던, 지역 주민의 경험과 기억을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보다 다양한 역사 해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과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관료적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면서 관찬 읍지류 같은 기록물을 남겼던 것처럼, 오늘날 민속학자나 역사학자, 구술 전문가, 아키비스트들도 역시 그들의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그들의 취향대로 선택하고 기록한다. 이제 지역을 중앙의 관할지가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고 지역의 주민을 대상화시키기보다는 주체의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한다.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권력자나 전문가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관점으로 바꾸어 새롭게 지역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렇게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지역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일상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적 활동이 바로 ‘지역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천마을기록사업은 2017년 시민기록자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아카이브’(archives)가 일반적으로 기록물, 기록 관리, 기록물 보관 장소를 아울러 일컫는 용어인데 비해, ‘아카이빙’(archiving)은 행위의 주체로서 아키비스트가 수행하는, 기록 관리에 대한 총체적인 활동 과정을 뜻한다. 아키비스트는 현장을 바라보며 그 현장성을 살려내는 방식의 기록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료를 바라보는 관점, 그 자료에 다가가는 접근 방식, 그리고 그 자료를 어떻게 분류하고 정보로 조직하고 지식으로 재구성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제 아카이브는 단순히 자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식의 범위가 확장된다. 오늘날 아카이브 개념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아카이브가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우리들 자신의 삶에 대한 관점임을 말해주고 있다.
2017년 추진된 ‘목록화’ 작업이 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 그 목록화 작업의 범위를 지방문화원의 한계를 넘어 지역과 지역문화 전반으로 확장하여 추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지역의 문중이나 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는 문집류, 유물 등의 향토자료를 조사하고 목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 근현대 신문아카이브 등 아카이브 관련 전문기관을 통해서 지역에 관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확보하여 목록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목록화 작업들은 시·군지 편찬사업에서 조사·수집된 기초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관하는 과정에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수집된 기초자료들이 훼손되거나 폐기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문화원이나 향토사연구회가 관심을 갖지 못했던 개인의 구술생애사, 주민생활사, 구술 아카이브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문화 자원을 수집·기록하는 작업도 시급한 과제다. 새로운 형태의 자료란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다. 특히 그 지역에서 기존의 문화재 개념으로 분류되지 않는 형태의 유물이나 기록물, 그리고 비지정 무형문화유산 등에 대한 조사, 정리 작업이 중요하다. 마을지는 지방문화원이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마을에 관한 관찬 기록들은 어디까지나 외부자, 통치권력의 시선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관점에 머물렀다. 이제부터는 외부 권력이나 외부 전문가가 주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기록하는 마을기록사업으로 가야 한다. 마을 안에 마을기록학교를 설치하고 마을 주민과 마을 기록자가 함께 모여 전체 계획과 교육, 조사 일정을 진행한다. 마을은 이제 지배 권력의 수탈의 공간도, 민속학자의 연구조사의 공간도 아닌, 주민 자신의 일상공간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야 한다. 마을 아카이브는 문화원의 새로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