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류는 코로나19의 급습에 휘청대고 있다. 얼마 전까지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권좌에 올라 전지전능한 초연결‧초지능 시대를 선포했던 인류가 이제는 전염병의 창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호모 데우스의 권력은 한순간에 불과했던 것일까? 인류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지구 자원의 한계에 대해서도 그리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기술과 자본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일까? 이전에 지구를 지배했던 생물종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도 그가 누려온 권력의 향유, 탐욕의 흔적들을 어느 지질대층에 남기게 될 것이다. 인류세(Anthropocene), 또는 자본세(Capitalocene)라고 명명해놓은 이 지질층은 인류가 그의 탐욕을 절제하지 못해 벌어질 사태들을 예감하고 미리 짜놓은 관이 아닐까?
재난과 위기에 직면해서야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실상을 알게 된다. 어느 정도 단단한지, 어디까지 충격을 흡수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대응이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염병이 야기한 수많은 패닉 사례들을 살펴보면 인류의 행동 패턴은 오늘날 코로나19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시점에서 과거의 탐구가 중요한 것은 참담한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우리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희망을 찾기 위함이다.
중세 시대 투르네(Tournai)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시신을 관에 넣어 옮기는 모습.
Miniature by Pierart dou Tielt illustrating the chronicles by Gilles Li Muisis(1272-1352)
전염병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그 속에 내장된 사회구조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는 인간의 활동을 무한정 수용할 수 없다. 인간의 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그 도시는 지속가능하다(Sustainable). 그리고 재난을 당했을 때 얼마나 빨리 그 충격을 흡수하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지가 그 도시의 회복력(Resilient)이다. 그러나 그 회복력에도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까? 어느 선에서 우리의 욕망을 멈출지 계산해낼 수 없을까? 지구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을까?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의 조건과 삶의 방식에 대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상상하고 있나? 지금 이 사태는 얼마만큼 절박한 상황인가?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도시적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할 만큼?
우리는 도시를 세운 건설자들과 그 후예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오만(hybris)을 목격한다. 도시를 세운 처음 건설자들로부터 몇 대(代)가 지나면 그들은 낙관에 젖는다. 인구가 늘어나고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도시에는 부가 축적된다. 도시민들은 풍요로운 시기를 구가한다. 이 무렵 통치자들은 쉽게 오만에 빠져 정복전쟁을 시작한다. 전리품과 노예가 넘쳐나면서 인구가 과잉되면 도시는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한다. 몇 가지 전조 증상이 나타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패와 오염이 임계점에 이르면 도시에 역병이 창궐한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도시는 거짓 소문과 은폐, 이간질과 사재기로 자중지란에 빠진다. 역병과 내란, 기근이 이어지며 시민은 도시 밖으로 탈출하고 도시는 그렇게 종말을 고한다….
도시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부의 축적, 풍요, 인구 과잉, 오염, 전조 증상, 역병, 전쟁, 기근, 사회의 해체. 어쩌면 그렇게도 인류는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일까? 전염병은 도시의 성장과 번영, 도시 간 무역과 교류를 통해 실려 오고 또 급속하게 확산된다. 콜럼버스는 1492년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을 때 천연두와 홍역도 원주민들에게 덤으로 선사했다. 1910년대 후반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경영과 산업혁명, 철도와 증기선,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대의 대규모 이동루트를 따라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인류는 여러 유형의 괴물퇴치 신화를 갖고 있다. 도시의 번영과 안전을 위협하는 힘은 신화에서 흉측하고 광폭한 괴물로 묘사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괴물들은 대부분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이다. 이들은 지진과 화산, 폭풍과 대홍수, 인류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가이아는 지구 지배종의 오만이 넘칠 때 이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새로운 괴물을 출현시킨다. 제우스는 티타노스, 기간테스 같은 괴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신들의 도시 올림포스를 건설한다. 그리고 이들 괴물들을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봉인해버린다. 마치 원전에서 나온 위험한 방사능 오염물질을 탱크에 넣어서 수천미터 땅 속이나 해저에 묻어두는 것처럼.
인류가 지상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카드모스는 거대한 용을 퇴치하고 테베를 건설했다. 테세우스는 황소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아테네를 구해냈다. 헤라클레스는 미케네를 위협하는 여러 괴물들을 퇴치함으로써 미케네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권력을 공고히 해주었다. 게다가 엘리스 왕이 기르던 3천 마리나 되는 소떼의 악취 나는 분뇨를 근처에 흐르는 강물을 끌여들여 말끔히 청소해주기도 했다(아마도 영웅이 수행한 도시 방역의 최초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신화에는 올림포스 신족이나 영웅이 퇴치한 괴물보다 더 끔찍한 괴물이 등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공포스럽고 두려운 존재들이다. 증오, 질투, 분노, 기근, 질병, 가난, 고통, 노화…. 바로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밖으로 나와 세상에 퍼진 그 재앙들이다. 이들 가운데 질병이 숨어 있었다. 질병이야말로 인간이 신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제우스가 생각해낸 신의 한 수였다. 질병을 보내면 인류는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증오, 질투, 분노, 가난, 기근, 고통, 사망 같은 것들은 질병이 퍼지면 줄줄이 따라올 것들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431년 아네테에 역병이 발생한다. 그리스의 민주정을 꽃피운 페리클레스의 통치 시대였지만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이어 역병과 기근이 휩쓸고 간 아테네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429년 페리클레스는 죽기 전에 아테네인들에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피하고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등장한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인들의 불안 심리를 해소할 분출구로 시켈리아 원정을 주도했다. 결국 이 전쟁에서도 아테네는 참패했다. 이렇게 서서히 해체되어가는 아테네의 상황을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아테네의 역병을 경험한 소포클레스는 그의 비극 작품 『오이디푸스 왕』을 아테네의 디오니시오스극장에 올렸다.
테베에서 추방되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1843 by Ernest Hillemacher)
이 비극 예술은 오이디푸스가 역병이 엄습한 테베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 아들들아, 그 옛날 카드모스의 후예인 내 자손들아, 이렇게 양털 실을 감은 올리브 가지를 들고 탄원하며 앉아 있는 까닭은 무엇이냐? 온 도시에 향을 태우는 연기와 병의 회복을 비는 기도와 죽은 자들을 위한 애곡 소리가 가득 찬 것은 또 어찌된 일이냐?’
역병은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초래된 것인가? 누가 신의 노여움을 살만한 부정을 저질렀는가? 그 부정을 어떻게 드러내고 정화시킬 것인가? 정화를 위한 제의가 필요하다면 누구를 희생으로 바쳐야 하는가? 신탁은 역병의 원인을 테베에서 일어난 어떤 부정한 일로 지목한다. 그 부정은 선왕이 살해당한 일이고 그 살인자를 찾아 추방시키는 것이 이 땅에 만연한 역병의 유일한 치료책이다. 비극은 이와 같이 역병과 전쟁이 가져온 아테네인들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고 정화시켜주는 사회적 기제가 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온갖 불행의 감정들(욕망, 질투, 분노, 연민, 공포)은 비극 예술을 통해 정화된다. 이렇게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역병은 정치 사회적으로도 희생양을 만드는 논리를 정당화한다.
이제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 만천하에 진실이 드러난다. 오이디푸스가 바로 그 부정한 자였다. 그런데 그는 테베를 스핑크스라는 괴물로부터 구원한 자가 아닌가! 그가 비록 이 모든 사실을 모른 채 저질렀다고 해도 이 모든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지고 공동체 밖으로 추방되어야 한다. 그는 끝까지 원인을 밝혀서 진실을 알고 싶어했던 자로서 자신이 그 범인이었음이 드러나자 기꺼이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떠안고 ‘희생양’(scapegoat)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가 테베에서 추방되는 모습은 ‘죄를 뒤집어쓰고 낙인 찍혀서 사회에서 추방된 자’라는 의미에서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개념과도 통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테베에 나타난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이 괴물로부터 구해낸 오이디푸스! 테베 사람들이 진정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것은 스핑크스라는 괴물이었나, 아니면 스핑크스가 던진 물음이었나?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의 이전 괴물들처럼 가뭄과 기근, 역병 같은 자연의 재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인간의 지식이 이 공포스런 괴물을 물리쳤다. 이제부터 자연은 인간에게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어느 판본에서는 스핑크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전한다(이 소문은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포데믹이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유혹과 질문을 던지는 스핑크스는 몸에 날개가 있다.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가 떨어져 죽기는 불가능하기에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이 올림포스 신들의 권좌를 이어받아 인간의 시대를 열었지만 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그들이 세운 도시들은 잠시 번성하는 듯하지만 역병이 퍼지면 곧바로 무너진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오만함이 초래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스핑크스의 질문을 자세히 살펴보자. ‘네 발, 두 발, 세 발인데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이것은 무엇인가?’ - 바로 인간이다. 이 답으로 오이디푸스는 폭력적인 자연의 힘을 물리쳤다고 과신했다. 그런데 얼마 후 테베에 역병이 엄습한 것이다. 과연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던진 질문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네 발, 두 발, 세 발 –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 과정에 대한 묘사이다. 스핑크스는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로 다닌다는 인간의 이 정황성과 한계에 대해서 자기 인식을 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인간은 네 발의 시대를 거쳐 두 발로 걷는 시대로 진입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걷고 뛰고 도시를 건설한다. 작은 도시에서 출발한 로마가 그랬듯 정복을 일삼으며 제국을 확장한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인간은 마지막 단계인 세 발로의 변화로 들어가야 한다. 이른바 성숙의 단계이다.
빠른 성장에서 더딘 걸음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노년의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세 발의 시대로 가기 위해선 겸손이 필요하다. 스핑크스가 오만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일깨워주려고 했던 것은 바로 겸손이다. 네 발에서 두 발로, 두 발에서 세 발로 걷는다는 이 인간 조건에서 오이디푸스는 이미 자신의 운명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는 걷는 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모가 어린 그의 발목을 묶어서 버렸기 때문에 그의 발은 부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오이디푸스’(부어오른 발)가 된 것이다. 인류의 문명과 인간이 건설한 도시에도 스핑크스의 질문은 똑같이 유효하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는 왕이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의 내러티브를 보면 전염병과 재앙에 휩싸인 이스라엘의 참담한 광경을 바라보며 탄원하는 다윗의 기도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위대한 성군 다윗의 영광스런 은퇴를 기대했건만 그는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짓밟는다. 그의 통치는 영광과 축복 대신 어둡고 불행한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다윗의 치세를 결론적으로 요약하는 이 내러티브는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이 내러티브를 우리가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윗은 군대를 동원하여 인구조사를 한다. 다윗의 치세 때 이스라엘은 영토가 확장되고 급속한 인구성장과 경제발전으로 풍요의 시대를 구가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에 대한 자신감, 이것이 그가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된 배경이다. 인구조사의 초점은 전쟁에 나갈만한 자, 군사로 징집할 장정을 계수하는 데 맞추어졌다. 그리고 인구조사는 더 많은 세금 부과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것이 왜 ‘통계학’(statistics)이 인구통계에서 시작되었으며 국가를 뜻하는 말(state)에서 기원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다윗은 뒤늦게 이 행위가 죄악임을 깨닫고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보내어 세 가지 징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기근이다. 그런데 징벌의 기간이 다르다. 3년간의 기근, 3달간의 칼, 그리고 3일간의 온역.
다윗의 선택은 온역이었다.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자기의 운명을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3년간이나 기근이 계속되면 그의 왕국은 백성들의 원성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세 달간이나 대적에게 쫓겨 다니는 일도 평생을 사울에게 쫓기며 살았던 트라우마를 겪은 다윗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징벌이다. 그보다는 3일 동안만 견디면 끝나는 전염병이 가장 만만해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선택마저도 실패한 선택임이 곧 드러난다. 다윗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전염병이 시작되니 이스라엘 전역에서 7만명이나 죽었다. 죽음의 천사가 전염병으로 예루살렘을 멸하려고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신다. 멸망의 위기에 놓인 예루살렘을 보고서야 디윗은 그의 선택이 악하였음을 자복한다. 이 내러티브는 죽음의 천사가 서 있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다윗이 사서 거기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윗 치세의 역병(The Plague in the Reign of David,Guy Louis Vernansal I,1675)
다윗의 이 전염병 내러티브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추앙하는 다윗이 그리 이상적인 군주가 아니며 심지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경고다. 무엇에 대한 경고이고, 무엇에 대한 진노일까?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권력욕에 충동되어 인구조사를 하고 왕국의 확장과 정복전쟁을 위해 수많은 물자를 쌓아둔다. 그러나 그가 온역을 선택하면서 그의 백성이 삽시간에 멸절되는 사태를 눈앞에 목격하고서야 그동안 자신의 행위와 선택이 악하고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무엘서는 이 내러티브를 통해 이스라엘이 선지자를 따르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자 했던 그 의도가 악했으며, 그들이 성군이라 치켜세우는 다윗조차도 매우 이기적이고 현명하지 못해서 재난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하는 데 무능한 군주였음을 폭로하고 있다.
다윗의 내러티브는 우리가 함부로 우리의 권력을 위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정치권력의 선택은 다윗의 선택이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희생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정치권력의 손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된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종교계의 사회 인식 수준과 종교제도의 한계도 노출시키고 있다. 누군가 병의 확산에 책임을 질 집단으로 지목되는 경우 여론이나 권력은 이 사태에 대한 설명과 책임을 추궁할 방편으로 이들을 희생양으로 낙인 찍는다. 신천지는 개신교가 이단시해온 집단이다. 교회 내에 잠입하여 일정 기간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그들의 포교 방식은 코로나19의 특성과 매우 닮아 있다. 올해 2월 대구에서 이들의 집회모임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때 이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여론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특히 기독교계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교회의 예배행위가 코로나19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리고 주일예배의 자제, 예배중지 권고는 교회권력에게 존립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정치세력과의 결탁과 방조가 8월 광화문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종교계의 자세는 여전히 수동적이며 집회활동의 위축으로 손상될 권위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안식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기독교 본연의 가르침은 한국교회에 실종되었는가? 오늘날 위기에 몰린 기독교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대처했던 교회의 처신을 떠올린다. 일제의 폭압통치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치 치하의 독일교회들처럼 당시 많은 교회지도자들도 눈에 보이는 교회의 존속을 위해 일제에 부역하는 과오를 남겼다.
과연 코로나 시기에 교회의 예배는 어디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했을 때 다윗이 회개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장소는 기존의 예배장소가 아니라 죽음의 천사가 멈춰선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는 삶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예배는 본질적으로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가? 아라우나는 기꺼이 자신의 타작마당과 소를 내놓기를 원했고, 다윗은 그 장소와 재물에 대해 온전히 값을 치르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무엇을 기꺼이 내놓아야 하는지, 무엇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인류가 행사해온 지배와 착취, 풍요와 안락함에 대해,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이웃과 자연 생명의 탄식에 대해서 이제 그들의 응답이 남았다.
1348년 유럽에 만연했던 흑사병은 피렌체에 도달했다. 이 병의 가장 공포스러운 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와 신뢰를 일시에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질병이 오염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생각해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까지도 서로를 외면하고 모든 사람이 각기 고립된 섬으로 가서 그저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거리에 내다버린 시체가 부패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신을 넣을 관도 모자라 묘지 구덩이에 두세 구씩 시신을 한꺼번에 넣고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보카치오는 이 끔찍한 경험을 『데카메론』에 기록했다. 『데카메론』은 피렌체의 흑사병을 피해 모인 7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 젊은이가 10일 동안 한 사람씩 돌아가며 들려주는 100개의 이야기다.
공포와 죽음에 내몰린 도시민들은 증오, 분노의 희생양을 찾았다. 1349년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2천여 명의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느냐 화형을 당하느냐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절반의 유대인들이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유대인에 대한 제노사이드가 유럽 전역의 도시에서 일어나면서 유대인들은 도시 군중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죄를 자백하라고 강요받으며 고문을 당했다.
이와 같이 전염병의 창궐로 사회질서와 관습,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면서 가장 먼저 희생을 당하는 계층은 누구인가? 바로 그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집단이다. 가난한 계층, 이단이나 유대인 공동체, 집시 같은 유랑집단,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할 여력도 없고,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질병의 유포자로 낙인 찍혀도 그런 음해와 박해에 저항할 만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숨을 몰아쉬는 것만으로도 병을 퍼뜨리고 선량한 도시민들을 죽게 만든다고 여겨져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837), Franz Xaver Winterhalter. The Princely Collections, Liechtenstein
많은 해외언론이 우리나라의 방역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공적 마스크의 보급과 신속한 검사, 감염자들에 대한 동선 추적과 선별적 격리, 투명한 정보공개 등 우리의 대응 방식을 긍정적인 모델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그들의 평가에 취해 있다.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아직도 우리는 국가적 방역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국민국가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지역은 주체적으로 지역의료와 보건, 사회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지역마다 코로나19에 의한 타격과 피해가 다르다.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대도시냐 소도시냐에 따라, 그리고 성별, 계층, 세대, 경제 수준에 따라 그 충격과 수혜도 저마다 다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부유층이나 신분이 높은 계층,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은 전염병의 피해에 덜 노출된 반면, 빈민층과 영세 자영업자는 사지로 내몰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번 코로나19로 흑인과 유색인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 희생양 만들기를 반복하며 역사적으로 확산된 전염병들이 모두 아시아로부터 왔다는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키고 있다. 중세에 유럽인들은 흑사병이 중동 이슬람 세계에서 왔다고 믿었기에 ‘오리엔트 역병’으로 불렀고, 미국인들은 코로나19의 진원지를 중국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아시아는 더럽고 무지하고 열등하다는 편견과 차별의 낙인을 찍어버렸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코로나19의 위험 앞에 일반 주민과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는가? 이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와 홈리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는 어쩌면 현대에 나타난 스핑크스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테베에 나타났던 스핑크스처럼,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괴물이 나타나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코로나19를 관리하는 국가 권력에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자유와 권리, 우리에 관한 정보를 내어주고 감시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비상적인 상황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과정에 대해 묻지 않고 권력의 ‘블랙박스’ 장치를 승인한다. 투입과 산출, 효율성과 편리성만 확인되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승인 버튼을 누른다.
K-방역의 성공 뒤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묵인하고 승인해온 하부 시민계층의 희생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추석명절 연휴를 앞두고 전국의 택배기사들이 과도한 노동부담을 호소하면서 택배 분류작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들의 행동은 더 이상 자기 운명을 기존 권력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정치세력화해서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한 도시의 번영과 성장은 그 도시가 위치한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자원을 교류하며 공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어느 한 도시의 거대도시화는 필연적으로 인접 도시들을 식민화하고 종속시키며 인근 지역의 자원을 고갈시킬 수밖에 없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를 보라. 페리클레스가 남긴 현명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시민들은 이미 제국의 길로 치닫는 도시의 속도를 제어할 수 없었기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투키디데스는 그런 아테네의 혼란과 멸망의 과정을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다면 도시가 이미 선을 넘어 성장의 극대화로 치닫기 전에, 다윗처럼 인구조사를 하기 전에, 우리가 분명히 우리의 의지로 ‘리셋’ 단추를 누르거나 일시 멈춤 단추를 누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