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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문화도시와 시민의 자발성
손경년 前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나는 법

“사람이 백발백중 총을 잘 쏘니 에네케 새는 앉지 않고 나는 법을 배웠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성장, 다시 말해 ‘등 따뜻하고 배가 불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와 도로의 확장을 지켜봐 왔다. 그런 도시 속에서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전까지, 살긴 사는데 무언가 잃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전까지 문화는 교양을 대신하는 말이었고, 예술은 재능을 가진 사람의 전유물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잊거나 혹은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그냥 도시가 아닌, 현재의 결핍이자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 같은 ‘문화도시로의 꿈꾸기’라는 ‘나는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댄 핸콕스는 그의 저서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실망해 만들어 낸 것, 현실 세계의 수많은 불의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실망하고, 그래서 더 나은 것을 꿈꾼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코로나19가 지구인의 삶을 비틀어놓자, 그동안의 생각과 삶의 양식, 중요하다고 여긴 것, 옳다고 받아들인 것, 이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들었고,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꿈은 상실감이 클수록 현실로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지정 내용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 지정’의 근거를 얻게 되었다. 2019년 예비도시 지정을 시작으로 2020년 제1차 문화도시로 7개의 도시 지정과 함께 제2차 예비문화도시의 지정이 이루어졌고, 올 하반기에 제2차 문화도시 지정 및 제3차 예비문화도시 지정을 앞두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문화도시’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지금까지의 도시 양태를 넘어서는 문화도시로의 열망인가, 또는 문화도시 지정이 가져다주는 재원의 규모에 대한 욕망인가는 차치하고)은 예상을 넘어선 열기를 보여주었다.

▶ 지역문화진흥법 제15조 제1항
·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예술, 문화산업, 관광, 전통, 역사, 영상 등 분야별로 문화도시를 지정할 수 있다.

문체부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추진되고 있는 거점형 문화도시사업과 2014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등의 경험을 통해, 문화적 기반과 역량을 갖춘 도시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판단, 장기적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계획 전반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2018년부터 지역문화진흥법상 문화도시 지정사업을 추진해야 했으며, 2022년까지 30개 내외를 지정하여 성공 모델을 발굴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문화도시 지정의 조건은 ‘모든 도시는 특별하다’는 관점에서 출발, 문화도시 지정을 통해 지역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살리고자 한다. 법에 따라 문화도시 지정을 수행해야 하는 문체부는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및 지역 주민의 문화적 삶 확산’이라는 정책 비전을 통해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 문화를 통한 균형발전,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기반구축, 사회혁신 제고’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였다. 다시 말해, 기존의 대규모 시설 조성계획이 아닌 ‘지역문화발전종합계획’의 지원, 중앙 및 관 주도가 아닌 ‘지역 중심·시민 주도형 도시문화 거버넌스로 변화’, 그리고 단순 재정 지원 방식이 아닌 ‘효과적 추진체계 구축과 컨설팅 지원’으로 추진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러한 구상은 이전의 문체부 사업의 추진 방식, 가치, 인식 토대, 실행 프로그램 등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엿보이는 정책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문화도시의 기대와 평가

전국이 문화도시 지정으로 떠들썩해졌고, 혹자는 이런 식의 열기는 나중에 정책설계의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형식적인 시늉만 남게 될 것이라고 불편해했다. 주체성을 기반으로 참여한 주민이 책임감과 실천을 통한 이상적인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다행이겠으나, 실지로는 행정기관과 전문가 중심의 하향식 기획과 실행으로 ‘회수를 건넌 귤이 탱자가 되는’ 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대와 평가가 조급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법정문화도시사업은 지정만 했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민이 주체가 되는 과정, 즉 선택한 가치에 대한 책임과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문화도시’가 현실로 나타나기까지는 긴 호흡과 절대적인 시간의 확보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제1차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듣는 도시-생활문화도시 부천’

클로드-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책 『날것과 요리된 것(La cru et le cuit)』에서 ‘과학자는 올바른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올바른 질문을 묻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과학자를 문화기획자로 바꿔서 말해보자. ‘문화기획자는 올바른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올바른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부천이 문화도시 지정을 원한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질문’을 하는 사람, ‘올바른 질문’을 하는 문화재단이 되어야 했다.

지역문화진흥법을 통해 5년 후 문화도시지정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30여 년 동안 ‘문화도시 부천’이라는 일관된 문화정책을 시행해 온 부천시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다는 것은 꽤 합당한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출발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닌, 질문을 하며 그 질문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계속 성찰하는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결국 2020년 부천시는 제1차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면 ‘문화도시지정’이라는 중앙정부사업의 선정을 위해 ‘정답’을 향한 여정을 수행했던 것은 명백히 아니었으며, 문화재단과 시민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질문과 대화, 그동안 수행해왔던 숱한 문화예술사업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2015년부터 예비도시 지정이 있을 4년 뒤(2019년), 법정문화도시 지정이 있을 5년 뒤(2020년), 부천문화재단 설립 20주년 되는 해(2021년), 더 나아가 100년 뒤(2120년)의 부천을 상상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행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그려놓은 계획을 시민들에게 이해하도록 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문화도시의 상(像)’을 찾고 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시민력 구현’에 초점을 두었다는 뜻이다.

image시민발언대_100년도시상상

image말할수있는도시

올바른 질문과 실천을 위하여

‘수다 떠는 재주 덕분에 인간들은 40억 년에 이르는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마틴 노왁의 견해는 ‘문화도시 부천을 상상하면서 무엇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라는 우리의 첫 질문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84만의 부천 시민들이 모두 원하는 대로 말하고 있는가, 많은 말들은 자신, 타인, 사회에 보탬이 되는가, 누가 이 도시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곧 권리이며, 그 권리를 인식하고 누려야 비로소 문화도시의 첫 단추를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데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타인을 존중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을 가지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주체성을 가진 시민’이라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주체적 결정과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할 많은 과정을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상적인 상상은 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화도시는 허상 아닌가요?’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상이 무엇인지 논의합시다’라고 했다. ‘문화도시의 결과는 너무 과장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계획서 위의 과장됨을 지적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를 통한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라고 했다. ‘더 긴급한 사회 문제가 있을 텐데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문화도시를 왜 하려고 하며, 살기 바쁜데 문화도시사업을 한다고 주민 참여를 요구하면 어렵지 않나요?’ ‘현실적으로 타당한 질문입니다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주변을 살피고 일분일초, 하루하루가 쌓여야 내일이 되고, 삶의 큰 그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해야 할 일이 있어야 실천하고 그 실천이 오늘을 만들고 내일이 되니까요’라고 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기 어려우나 잘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은 질문하고 또 질문을 했다.
일상성, 현실성과 추상도가 높은 거대 담론은 결코 내 삶의 구성에서 따로 노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내가 듣고, 말하고, 조율하고, 배려하고, 합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나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전문가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과학적 지식과 자료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거나 혹은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화도시사업의 결과로 도시가 망가질 것인가, 멋진 도시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속적인 질문을 통해 스스로 찾아 나가는 과정을 획득함으로써 ‘주체적인 시민’이 된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었든 아니든 간에 ‘문화’도시로의 지향은 적어도 현재의 가치나 관점으로 볼 때 마땅한 방향인 듯하다. 정책 실현의 얼개를 보면 시민들의 열망과 의지로 만들어지는 도시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도시를 만들자’는 것은 특정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구호이거나, 하얀 지면 위의 서명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닌, 다음 세대를 고려하면서 서로 살아나가기 위한 절실한 행동이다. ‘당대의 결여’와 현실의 실망으로 인해 ‘시민권’ ‘문화권’ ‘시민주체성’이 더욱 절실한 꿈이 되었다. 그 꿈이 이루어진 아주 먼 미래는 ‘평등’과 ‘존엄’이 너무도 당연하여 폐기해야 할 용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문화도시 지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의 논쟁은 끝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논쟁의 과정을 통해 ‘논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문화도시를 기획하는 것은 한 점의 오류가 없는 과정을 기획한다는 것이 아니라, 허점을 발견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알아가는 과정의 이해를 뜻한다. 지극히 현실주의적 접근 방법을 내포해야 한다. 쟁점이 있는 곳에는 지지자와 회의론자가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어느 하나의 목소리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출발선에서 발을 뗀 법정문화도시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은 언제 어디서나 배우고, 이해하고,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역사가 쥘 미슐레(1798-1874)는 그의 저서 『프랑스 혁명사』에서 민중에게 능동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혁명의 힘 한가운데에 갖다 놓았던 대범함을 보여주었듯이, 문화도시사업이 과감하게 시민의 자발성을 끌어낸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우리 앞에 나타날까.

image인천광역시부평문화재단 부천문화재산 업무 협약 체결

image2020 문화도시 사업 중 꿈의패턴 시민워크숍

image지난해 10월, ‘2019 문화도시 시민 회의’ 중 열린 ‘아동위원회 정책포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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