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원 염상덕 원장을 만나다
지방문화원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바로 그 지역의 문화적 현주소를 읽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인터뷰는 지방문화원원장이 진단하는 현재 문화상황을 통해 지역문화의 현주소에 대한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편집자 주
수원문화원 염상덕 원장님
인구 100만을 훌쩍 넘는 수원시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선 사람으로서, 그는 문화를 권력의 상위개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무에 그리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순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공직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특히나 공무원이란 직업은 마음의 무게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질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거든요. 오랜 시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추를 바로 잡는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의 추를 바로 잡는 일! 그것은 오랜 세월 훈련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예전에는 문화가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문화원에 들어와 보니까 주부들이 방 한가운데 모여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더란 말이죠. 요즘 시대에 누가 바느질을 해서 옷을 입나요?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바느질을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얘기를 하고, 삶을 나누더란 말입니다.
요즘은 서랍장 가득 옷을 넣어놓고 수선해 입지 않아요. 쓰레기통에 버리죠.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어딘가가 헤졌다는 이유로...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문화원에 오지 않았다면, 나 역시 무감각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문화원이니까 저런 것이 남아있는 거지, 다른 곳에는 없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문화원장이 되어 몹시 다행스럽다는 표정이신데, 무엇 때문인가요?
은퇴 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사회를 위해 지역을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공무원 생활도 괜찮았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싶었죠.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도 방송과 관련된 공부를 했었고...
그때 생각하면 참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마음속에 ‘문화예술’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막 뛰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저는 그동안 수원에서 태어나고 자라 수원을 위해 일하고 봉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역 구석구석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문화원장이 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찌 보면 그리 거창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사소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소박한 꿈과 성실한 삶의 자세가 수원시민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일 테니까, 자랑스럽게 느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거창한 구호와 높은 지향만 난무하는 시대에 묵묵히 현재의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의 자화상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만...
수원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뿐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단연 역사문화의 도시라 말할 수 있어요. 이런 수원을 움직이는 힘이 문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미약하나마 나의 열정과 능력을 수원의 문화예술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생각에서 그칠 수도 있었겠지만, 운이 좋게도 이러한 생각이 실현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화원장은 무엇보다도 올바르고, 균형 있는 문화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가장 원초적 권력인 군사력이 세계를 움직였고, 남북시대에는 경제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었다면, 지금은 문화가 세계를 움직이는, 문화가 권력인 문화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이 외부로 발현되는 가능성, 그 자체를 내적인 힘으로 본 니체처럼 결국 현재 혹은 미래에 세계의 흐름을 움직이는 내적인 힘은 곧 문화가 될 것입니다.
문화원장은 이러한 문화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문화원을 통한 시민교육을 통해 문화시민을 양성하고 그런 시민들과 함께 열심히 활동하다보면 지역의 발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원문화원을 통해 보통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그것이 구현된 수원 문화가 경기도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커다란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시대의 흐름을 보면 수원문화원뿐 아니라 많은 문화원이 리스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는 각 시군구의 문화원을 중심으로 그 지역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조성을 담당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문화예술센터, 구민회관 등 문화를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곳이 무척 많아졌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원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인 거죠. 이러한 상황 속에도 문화원은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오랫동안 지역의 문화 일을 해온 노하우가 있으며, 다른 문화단체가 따라 올 수 없는 우수한 조직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점을 갖고 현대의 문화 흐름에 맞는 문화원 고유의 프로그램을 계발해야 하며, 문화회원이 갖는 힘을 바탕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새로운 모습의 문화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원은 인구 115만을 자랑하는 기초자치단체로서 광역시에 버금가는 큰 도시입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인문학을 표방하는 도시로 어우러지는 환경,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우리문화원에서는 철저한 고증과 전문적인 강사를 초빙하여 풍부한 문화소식과 함께 흥미 있는 문화예술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수원문화원에서는 매년 청소년들을 위해 3박4일간 진행되는 ‘정조대왕능행차길체험순례’를 비롯해 지금은 수원문화재단에서 하고 있지만, 그동안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정조대왕능행차 시연, 시민퍼레이드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어요. 작년부터 시작한 ‘짚신신고 화성걷기’ 역시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요.
이러한 성과에는 문화적 자산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이것을 우리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모두 함께 알고 지켜 갈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 수원문화원이 갖고 있는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은 민원상대가 중심이지만, 문화원은 단순히 민원을 해결해 주기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시민들의 고단한 삶의 바닥까지 접근해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문화원에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말씀도 잊지 않는 순박한, 그리고 온화한 얼굴을 가진 염상덕 수원문화원장. 한 번 더 강조해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 문화원에 들어왔을 때, 이렇게 전통을 살리려고 하는 곳이 아직 남아있었구나! 이렇게 전통을 지키고 소중하게 가꿔야 하는 곳에 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 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