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중음악의견가.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기도 했다. [Red Siren]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연출/평가도 병행한다.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를 썼으며,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는 함께 썼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 인터뷰』, 『레전드 100 아티스트』, 『음악과부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한국대중음악명반 100』도 거들었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 이메일은 bandobyul@gmail.com |
세상은 노래로 가득하다. 이미 만들어진 노래도 다 못 들을 정도로 많다. 전 세계에서 날마다 새롭게 나오는 곡이 20,000곡이라고 했던가. 한국 대중음악의 경우 하루에 30장 이상의 신곡과 새 음반이 새로 더해진다. 누군가 애써 만든 노래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날아간다. 어떤 노래는 손에 닿아 내내 만지작거리는 노래가 되고, 어떤 노래는 심장에 꽂혀 핏줄을 타고 흐른다. 장르와 스타일, 이야기도 다양하다. 음악이 상품이 된 시대, 스마트폰 하나면 세상의 거의 모든 노래를 다 만날 수 있는 시대, 음악은 어느 때보다 우리와 가깝다.
그런데 요즘 음악에는 내가 사는 동네 이야기는 드물다. 우리 동네 큰 나무 이야기라든가, 동네 마트 김씨 이야기, 늘 보는 앞산이나 뒷강 이야기가 노래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초.중.고등학교 교가에는 남아 있지만 대체로 천편일률적이다. 음악이 민요처럼 창작자를 알 수 없는 만인의 손에서 전문가의 손으로 넘어간 뒤의 변화이다. 대중음악에는 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 홀로 감당하는 외로움과 자신을 밀고 가는 꿈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음악에 동네가 없고, 지역이 없다.
물론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 정태춘, 박은옥의 [정동진]처럼 특정 지역을 노래한 곡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안정애의 [대전부르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처럼 특정 지역을 오랫동안 대표해온 곡들도 있다. 각 지역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아는 노래들은 어느새 그 지역의 얼굴이 되었다. 표정이 되고 주름살이 되고 눈물이 되었다. 눈물 닦는 손수건이 되기도 했다. 깃발처럼 펄럭이는 노래들도 적지 않다. 지역 명물이나 특산품처럼 저절로 떠오르는 노래는 지역의 역사를 함께 짊어지며 애환을 달래고 지역을 지켰다. 더 이상 그 지역에서 살지 않는 이들에게도 이 노래들은 고향으로 가는 열차, 아니 고향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대부분 도나 광역시 단위의 큰 지역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그보다 작은 우리 동네이나 지역을 노래한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수의 지역 노래가 트로트 장르라서 젊은 세대의 감성에 잘 맞지 않기도 하고, 더 이상 없는 풍경을 기록해 새로운 세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여기, 바로 지금을 현재의 음악어법으로 기록한 노래는 적다. 노래에 지역은 이름만 들어가고 대동소이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로 채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듯 음악 안에도 지역이 고르지 않다. 다행히 최근에는 지역의 인디 뮤지션들이 지역을 주제로 음반을 내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난다. 싱어송라이터 이권형, 파제 등이 주도한 ‘인천의 포크 싱글 시리즈’ 작업과 경인방송이 제작한 [인천 - Sound of Incheon], 임인건의 [All That Jazz] 음반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을 노래하는 일은 지역 자치를 실질적으로 완성하는 일이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한지는 벌써 24년째 되어가지만 한국의 경제, 문화, 사회, 정치 등 대부분의 권력과 콘텐츠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은 서울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서울의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인인 동시에 특정 지역의 시민/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다. 서울을 중심으로 표준화할 일이 아니다. 사투리를 희화화하거나 여러 지역의 핫 플레이스만 쫓아다닐 일도 아니다. 식량을 자급하는 일이 중요하듯, 지역의 문화 역시 최대한 지역에서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마다 다른 상황과 역사와 삶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 지역 사람들도 서울만 바라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지역아카이브 및 지역문화콘텐츠 제작의 일환으로 [지금, 여기 우리들의 노래]를 만든 일은 시도 자체로 반짝인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 18개 지역 내의 향토사학, 마을지, 발간 서적,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음악을 1곡씩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18곡의 음악을 두 장의 시디에 담았다. 그동안 문화원에서 만든 자료 대부분이 책자 중심이다 보니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해지고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달라진 시대에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악의 힘이 강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향유할 수 있다. 광고/영화/드라마/영상물 등으로 활용하기도 편리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음악의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음악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여수밤바다]처럼 잘 만든 음악은 지역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나. 좋은 음악은 지역을 재생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지역문화원을 통해 지역 노래의 소재와 주제를 모으고 함께 기획했다. 그러나 지역의 이야기를 서울의 창작자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 방식으로는 지역의 문화를 튼실하게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알토란 같은 작사가와 작곡가를 찾아 작업을 부탁했고, 노래와 연주 역시 각 지역의 뮤지션들에게 맡겼다. 그래야 지역의 문화가 성장할 뿐 아니라 작업의 열매 역시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노래한다는 결과물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 역량이 일을 하고 경험을 쌓으며 콘텐츠를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더 의미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총괄 기획을 맡고, 프로듀서, 편곡자와 협력하여 음악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열여덟 곡의 새로운 노래가 태어났다. [지금, 여기 우리들의 노래] 음반이다. 광명을 노래한 [달과 바람에 실어], 광주를 노래한 [같이 걸을까], 구리를 노래한 [동구릉], 김포를 노래한 [다시 꿈꾸는 조강], 동두천을 노래한 [동두천 City Pop], 수원을 노래한 [화성 가는 길], 시흥을 노래한 [아침 저녁으로 부르는 노래_호조벌에서], 양주를 노래한 [유양팔경], 연천을 노래한 [내 사랑 연천 아리랑], 용인을 노래한 [처인성 연가], 이천을 노래한 [장호원난다], 파주를 노래한 [우리는 파주랍니다], 평택을 노래한 [평택은 들이다], 포천을 노래한 [금수정에 올라], 하남을 노래한 [도미 아리아], 경기도를 노래한 [Song3], [Two Steps Behind], [그러나 경기는 평화를 노래하고]가 세상에 나왔다. 곡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경기도 곳곳을 여행하는 것 같은 제목들이다. 노래를 듣고 노랫말을 찾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경기도 곳곳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음반을 위해 최경윤, 장현숙, 유영하, 홍동현, 정수자, 문혜주, 이바오, 박봉학, 구민상, 이석진, 박혜순, 최치선, 김형진, 이상진 등의 아티스트들이 작사와 작곡, 편곡을 맡았다. 파주의 노래인 [우리는 파주랍니다]는 지역 내에서 작사를 공모했고, 수원의 노래인 [화성 가는 길]은 지역 시인이 작시를 맡았다. 이 이름들은 서울 밖 동네에도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그 이름을 몰랐던 우리의 좁은 시선을 툭툭 건드린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현실은 더 쑥스럽다. 영화 [곡성]의 명대사처럼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현실이다.
열여덟곡의 음악은 제목만큼, 다른 지역만큼 다르다. 민회빈 강씨를 노래한 [달과 바람에 실어]는 한국 전통음악의 악기를 활용해 애절함을 더했고, [같이 걸을까]는 어쿠스틱 팝의 어법으로 노래하며 지금의 젊은 세대를 남한산성으로 이끈다. 경쾌한 색소폰 연주와 리듬감이 돋보이는 [동구릉]은 상큼함이 넘친다. 이 음악을 흥얼거리며 훌쩍 동구릉으로 향하고 싶어지는 음악이다. [다시 꿈꾸는 조강]은 강과 바다를 삶으로 연결하는 담담하고 서정적인 시선이 깊다. 음반의 깊이와 무게를 더해주는 좋은 곡이다. [동두천 City Pop]은 복고적인 스타일을 더해 음반을 감각적으로 부풀린다. 트렌드한 곡 덕분에 음반의 생동감이 배가된다. [화성 가는 길]은 피아노 연주에 실은 보컬의 간절함이 조화롭다. [아침 저녁으로 부르는 노래_호조벌에서]는 땅은 믿음이요, 땅은 생명이라는 신념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동네를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이치까지 설파하는 노래는 지금 이곳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이유를 웅변한다. 반면 [유양팔경]은 흥겨운 트로트 리듬으로 양주의 아름다움을 흐드러지게 노래한다. [내 사랑 연천아리랑]의 트로트 가락도 오래도록 동네를 지켜온 이들의 사랑과 그리움을 대변한다. 젊은 세대부터 장년/노년 세대까지 고르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장르의 품이 넓은 음반이다.
어떤 곡은 감상하며 듣고 어떤 곡은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들이 다채롭다. [처인성 연가]는 슬로우 비트의 록킹한 곡으로 호국기상이 뜨겁다. [우리는 파주랍니다]는 애향심이 뚝뚝 떨어지고, [평택은 들이다]는 싱싱한 여운이 감돈다.
평택의 들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표현도 재치 넘친다. [금수정에 올라]는 금수정에 묻은 추억을 해맑은 목소리로 호출한다. [도미 아리아]는 하남의 오래된 역사를 굳세게 불러내는 개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경기도의 노래, 경기도 곳곳의 노래가 완성되었다. 노래가 경기도 곳곳으로 바람처럼 단비처럼 흘러가기를. 노래는 삶으로 이어지고 지역을 북돋을 것이다. 지금 여기의 노래는 바로 지금 이 곳에 사는 모든 우리를 위한 노래, 우리들 자신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드문 일, 그러나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