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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책/이슈>
[대담] 살아있는 민속을 ‘아카이브’하기 위하여
때 : 2019년 11월 17일
곳 : 이목구심서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12)
대담자 : 전 고 필 (이목구심서 대표)
정리 : 오 다 예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연구원)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이번호 주제는 ‘아카이브’이다. ‘아카이브’라는 뜻에는 기록 보관, 체계적인 정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담양 죽녹원 근처, 객사에 자리 잡은 동네 책방 ‘이목구심서’는 향토서적의 보관소이자 향토사 정보가 공유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공공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화원이 부족했던 부분을 되짚어보고, 무엇을, 어떻게 아카이브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는데 참고하기 위해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를 운영하는 전고필 대표를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향토사 전문 책방, 이목구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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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인예술시장 총감독으로 활동하실 때 선생님을 뵌 적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담양에 책방을 내고 책방지기로 일하고 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면서 향토사 전문 책방이라는 간판을 봤습니다. 담양에서 향토사 전문 책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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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을 ‘노마드’라고 하죠. 저는 광주 대인시장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대인시장 사업이 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그중에 5년을 제가 맡았습니다. 너무 오래 했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 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5년간 사업이 연장되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한다면 그 자체가 권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미련 없이 나왔습니다.

이곳, 담양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원래 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담양도 지역별로 문화권이 다릅니다. 경기도 화성에서도 동탄은 다른 동네와 다르다고 생각하듯이 담양에서 제 고향은 창평 권역이고 여기 책방은 읍내 권역이에요. 전혀 달라요. 그럼에도 이쪽을 택한 것은 여기가 담양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죽녹원 근처라 수많은 방문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려면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은 곳이어야 하죠. 또 담양이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건 다 있는데 책방이 없다는 게 걸렸습니다.

향토사 전문 책방으로 열게 된 것은 제가 향토사나 인문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특별히 자극을 받은 계기가 있습니다. 일본 서점들은 첫 번째 서가가 다 지역사로 채워져 있었어요. 우리나라 서점에 들어가면 첫 번째 서가에 베스트셀러만 모아놨잖아요. 두 번째 서가는 스테디셀러이고요. 일본은 첫 번째가 지역사회와 관련된 책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오키나와에 ‘울랄라’라고 하는 헌책방을 갔었는데 오키나와에서 발간된 책들만 전부 있는 거예요. ‘뭐 이런 게 다 있나’ 흥미롭게 보았더니 같이 간 제 친구가 이 서점 주인이 책을 냈는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라고 한글로 번역도 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책을 한국에 와서 보니 이 책방 주인이 대단한 여성이더라고요. 삼십 대 중반쯤 된 여성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쯤 되는 서점에서 일하다가 오키나와에 지사를 오픈하기 위해 오키나와 책을 모으다 보니까 오키나와와 관련된 책이 너무 많더랍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아져 있는 곳이 없으니 본인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고지가 아님에도 오키나와에서 향토사 전문 헌책방을 운영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헌책방이 유행처럼 열리는데 향토사 전문 책방은 없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향토사 관련 책만 해도 4천 권 정도 되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 좀 두드리면 책이야 얻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헌책방을 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책방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보려고 ‘울랄라’ 책방에 한 번 더 다녀와서 실행 단계로 옮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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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원 자료의 접근성 문제

책장에 꽂혀진 책들을 둘러보니 문화원에서 발간한 책들이 눈에 띕니다. 평소 문화원 자료가 지역문화 활동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신 걸 들었습니다. 지역에서 일하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문화원이 발행하는 향토 연구 자료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문화원의 자료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문화원의 존재 자체를 몰라 접근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려면 일단 그 지역을 알아야 합니다. 지역을 알게 되는 관문 역할을 문화원이 합니다. 문화원을 가보면 그 지역의 땅 이름, 지리적 특성, 사람살이의 과정, 역사, 오늘 현재의 모습들, 이런 것들이 다 있습니다. 역사적인 중요한 순간들도 기록되어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이 뭔가 희망했던 일들이 전설이나 설화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걸 읽고 나면 그 지역에 살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내가 그 지역 사람으로 빙의가 된 것처럼 그 지역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쭉 훑어내면 기획과 관련된 키워드(열쇳말)들이 나오죠. 그렇게 되면 일을 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집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전혀 모르는 지역에서 축제를 하거나 마을 만들기, 도시 재생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문화원에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을 풀어가는 게 쉽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문화원 자료는 저에게 있어 모든 기획에 첫 번째 통로,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차원에서는 유사성이 발견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망부석과 같은 전설이 장흥 억불산의 며느리 바위라고 하는 전설과 유사합니다.

부잣집에 중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이 부자가 시주를 안 하고 똥을 담아준다든지, 시주박을 깬다든지 문전박대를 합니다. 그런데 착한 며느리가 스님을 달래며 쌀을 몰래 줘요. 그리고는 곧 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나서 너희 집이 물에 잠길 것이니 저 산으로 피해라. 그런데 절대 뒤는 돌아보지 마라. 그 후에 정말로 홍수가 나서 아기를 업고 피난을 가려는데 시아버지가 자꾸 걸려 뒤돌아 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뒤돌아보는 순간 굳어서 바위가 돼요. 이 전설이 소위 말하는 ‘장자못 전설’의 유형인 것입니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도 이 유형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 집의 며느리도 뒤를 돌아봤다가 미륵바위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바위의 모습이 딱 아기를 업고 있는 며느리 모습 그대로입니다. 억불산과 태백 황지연못의 비교문화적인 측면들, 이런 유사성도 문화원의 자료가 아니면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물론 국문학이나 다른 데서 정리한 것도 있겠지만, 문화원에서 조사했던 자료들이 문화판에서 일하는 제게는 굉장히 실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별히 제 전공이 관광이라서 이런 내용을 공부하면 남들에 비해서 훨씬 더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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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문화원 자료 찾으실 때 어떻게 찾으셨나요? 주로 직접 방문해서 보셨나요?

일단 관심사가 있으면 그 관심사와 관련해서 나와 있는 자료들을 검색해 봅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으면 검색이 가능한데 옛날 같으면 직접 가야 합니다. 제 여행 수칙 중에 하나가 어느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향토 사학자나 문화원을 찾아가는 거예요. 문화원에 가서 향토사에 대해 들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역사가 나와요. 동학농민운동하면 전라도가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하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동학과 관련된 책들을 발견합니다. 이건 직접 문화원에 갔을 때 가능한 일이죠. 이런 식으로 문화원에 방문해서 정보를 얻거나 문화원에서 나온 책을 보다 보면 맥락이 보입니다.
요즘에야 문화원과 가까우니까 쉽게 자료를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정말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문화원에서도 외부인에게는 책을 잘 안 주려고 했죠. 그럴 때는 내가 이 책을 가지고 가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설득해야 했습니다. 2000년 초반에 담양 소쇄원의 누정 연구를 하기 위해서 산청문화원에 가서 누정집을 받으려고 갔는데 책이 별로 없어서 못 준다는 것을 “제가 누정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논문도 문화관광 자원에 관한 것들을 했었고 거기에 누정이 큰 역할을 하고 제가 소쇄원에서 1년간 살았는데 최근에 소쇄원과 관련된 책도 한 권 냈습니다. 경상도 권역의 누정을 연구하면 서로 빛날 것 같으니까 저한테 주시면 제가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십 여분 이야기하고서야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책이 없어도 디지털화되어서 다운로드가 가능하지만 그때는 책 한 권 받는 게 고맙고 소중한 일이었죠.

말씀하셨던 것처럼 문화원의 존재를 잘 몰라서 어떤 자료가 있는지 모르기도 하겠지만 자료의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도 원천콘텐츠 발굴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원 자료를 전수조사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지만 계속하고 있지만 정작 문화원에 자료 요청을 하면 어떤 자료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또 도서관처럼 열람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다 보니 찾아가서 열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문화원의 향토자료들이 기획자나 주민들을 상대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원은 지역에서 지식의 보물 창고다’라든지 어떤 큰 캠페인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문화원이 가진 다량의 축적된 자료들과 깊은 역사를 보여줄 수 있게끔 하는 것이죠. ‘우린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지 여러분 앞에서 이 자료들을 함께 공유할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이렇게 책방을 운영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개인이 이렇게 지역사회 자료를 모아놓고 있는데 국가는 뭘 하고 있는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한 달에 책 몇 권 팔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왔다가 갑니다. 아직까지는 그들도 이것을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이러한 일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부 다 파쇄되어서 재활용 휴지가 되거나 소각되는 것 밖에 안되잖아요.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생산하기까지는 엄청난 공력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원연합회와 문화부의 지역문화정책과가 나서서 문화원이 프로그램만 하는 기능, 발굴만 하는 기능이 아니라 연구 기능과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기능도 병행하는 곳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문화원의 열람실을 활짝 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향토연구에 대한 인식; 자폐성, 폐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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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떤 지명이나 위치를 가지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고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있고, 일부 집단에서는 문화원 자료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화원에서 발간된 책들이 비교적 정확한 자료라고 보시나요?

그런 문제는 쉽지 않죠. 제가 그것까지 감별하기엔 저의 전문성이 없습니다. 단지 이러한 설이 있고 저러한 설이 있다고 하는 거죠. 예컨대 목포라는 지명을 가지고도 이쪽에 그 목포지역의 사람들은 골목 할 때 목처럼 유달산에서 보면 영산강으로 내려온 길자락이 한눈에 잘 보이는 포구라고 해서 눈 목자를 써서 목포라고 사용하는데, 외부 사람들은 영산강의 나무가 영산강 물을 따라 내려와 포구 쪽에 걸려서 목포라고 이야기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쪽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이렇게 주장한다 하고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일부에서는 자못 심각하게 이런 문제를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네. 작년 신동호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의 다랑쉬 오름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A라는 설이 더 정겹다’라고 표현했다고 말씀해 주신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맞아요. 관련해서 재미난 일이 한번 있었어요. 재작년 일인데, 여기 충효동이라고 하는 마을 앞에 말 무덤이 있습니다. 그게 공원 안에 있어서 표지판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흔히 말 무덤이라고 하면 어느 장군이 타던 말의 무덤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동네 부녀회장이 여기는 그 말도 말이지만 나쁜 말을 묻어버리는 무덤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전까지 모든 조사에서 그런 해석은 없었어요. 나쁜 언어의 무덤을 ‘언총’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설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게 생성된 거예요. 그래서 표지판에 이걸 쓰려고 하는데 공원 관리과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써도 되냐고 묻길래 내가 이 분야에 박사면 결정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제 지도교수가 국문학, 민속학자셔서 전화해서 여쭤봤더니 ‘여러가지 설을 다 쓰면 된다. 민속은 죽어있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걸 다 썼습니다. 장군의 무덤, 마총, 언총, 그 다음에 마을의 조산, 인공산 이걸 다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이 ‘민속은 죽어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거다. 지금 현세의 사람이 그렇게 주장하면 그 말까지 기록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그런 것처럼 수용성을 가져야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히 배타적이잖아요.

문화원도 향토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지역의 역사를 조사하는 흐름이었다가 최근에는 경기도 문화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조사하고 구술 작업도 하면서 지역의 현재를 조사하는 사업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화는 결국 삶의 표현이고 삶의 흔적입니다. 문화원은 스스로 뭐랄까 자폐적인 현상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폐라는 것은 그동안 너무 오만하거나, 자만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미에서 쓴 표현입니다. 우리만이 문화를 한다고 하는 자신감인 거죠. 또 하나는 폐쇄성입니다. 끼리끼리의 동무의식이 있다 보니까 지금의 향교나 서원이 그러하듯이 나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처럼 자기 위치 정립을 해버렸어요. 그리고 문화원 원장은 반드시 지역에서 어느 정도 급이 있는 사람처럼 되어버리면서 오늘 살아 숨 쉬는 문화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아버렸죠. 그 담을 쌓음으로써 현재 문화원들이 고립무원화 되어버린 거죠. 문화원을 문화원이라고 인정하고 활용하는 곳은 문화부의 지역문화정책과 일뿐이지 일반 시민도 문화원을 잘 모르고, 지역의 문화와 관련 있는 각종 기관들에서도 문화원을 동류의식을 가지고 만나는 집단이 아니라 외골수 집단처럼 생각하고 제외하는 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방금 말한 자만감이나 자폐성을 깨부수지 않으면 문화원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문화부에서 예산 지원을 하고 지방문화원 특별법이 있다고 해도 오늘날 변화하고 역동하는 삶의 현장, 문화의 현장에서 문화원의 존재감이 없다면 빨리 태세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문화 현장과 소통,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문화원의 지역조사 범주와 논의의 범주, 그에 대한 정책적 대안들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단계가 문화원에 대한 처우 개선이라든지 지역에서의 사회적 역할 이런 것들의 재정립입니다. 문화원 국장 월급이 재단 직원 초봉보다도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이의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문화원 스스로도 자신들이 해왔던 역할을 알리고, 의미부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도시재생구역 평가할 때 도시재생구역 중 한곳을 아카이브 공간을 만든다고 해서 ‘담양 문화원이 그동안 발간한 책이 지역사와 관련된 것이 육십몇 권 된다. 이것들로 파생되어서 만든 것들도 엄청나다. 이것들만 모아도 자료가 한 가득인데 다시 주민들이 아키비스트가 되어서 발굴해 나가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오겠나. 이런 자료가 모여드는 곳이 문화원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문화원이 그동안 자료를 축적해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잘 활용하면 지역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원의 역할; 생활문화 양식의 보존

자폐성과 폐쇄성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화원이 자원 활용이나 아카이브 측면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문화원의 메커니즘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원장부터 유급제로 갔으면 좋겠어요. 문화원장에게 무급제로 지역에 헌신, 사회공헌을 이야기하니까 문화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문화원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없어요. 그래서 문화원장들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해도 물론 좋은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측면을 봤을 때, 전문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부터 직원들까지 다 전문직화하고, 공개채용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존에 있었던 분들을 우대하는 것들은 당연히 필요하겠죠. 전문직으로는 향토사 발굴 그리고 아키비스트로서 발굴한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 시키는 사람과 발굴된 것들을 가지고 직접 현장에 적용해 갈수 있는 활동가들이 필요하죠. 특히 아키비스트와 활동가가 있지 않으면 전통문화는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굉장히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산양식과 주거양식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논농사에서 파생됐던 수많은 농경세시기와 놀이들이 기계화 되는 생산양식의 변화로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더해서 품종 계량으로 인해 볏단이 길어야 되는데 짧아졌어요.

그럼 줄다리기에 줄을 묶을 때 볏단이 긴 것은 줄다리기 줄이 힘을 받는데 볏단이 짧아지면 줄다리기에 힘이 받지 못하니까 제대로 된 줄다리기를 못합니다. 그럼 제대로 된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키 큰 벼를 생산해내는 생산 공동체부터 복원하고, 시스템화 해서 보존하는 것이 문화원의 역할일 수 있습니다. 경기지방에 회다지 놀이가 있습니다. 회다지는 무덤에 관을 넣기 전에 단단하게 해주는 건데 요즘 장례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무덤을 쓰지 않으니까 이 놀이가 필요 없어집니다. 그럼 몇몇 집은 무덤을 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양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삶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구축하고 지키면서 살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축적된 노하우와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원입니다. 이런 걸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도시화, 산업화, IT화로 인해서 우린 이렇게 살아왔다는 아이덴티티가 다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봅니다.

민속예술제나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문화제들을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양식의 보존보다는 형태만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만도 고마워요.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서 ‘우리 마을이 줄다리기 마을이야’, ‘우리 마을은 회다지 마을이야’, ‘우리 마을은 농요의 마을이야’ 라는 자부심들도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포항에서 별신굿 하는 분이 있는데 포항에 굿이라고 손가락질 받아서 부산에서 굿을 하니까 아예 부산에서 문화재 등록을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포항 별신굿이 아니라 부산 별신굿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안성에서 웃다리농악 하시던 분이 평택으로 가버렸잖아요. 안성군에서 무형문화재 등록하려다 안돼서 평택 웃다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뿌리에 근거한 것이 멸시받거나 천대받아 타 지역으로 이동하며 문화재가 되어서 산천에 근거한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워지기 전에 문화원이 정말 지역 문화재를 전통적으로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조사나 자료가 축적되면 그것이 컨텐츠로 재생산되기도 하고 활용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자료의 축적이나 정리 보다 컨텐츠가 더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인식되기 때문인지 문화원에서도 컨텐츠 생산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자료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컨텐츠화 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콘텐츠의 질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문화원에서 과연 컨텐츠를 생산해 내는 게 맞는가, 전문적인 자료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역할은 문화원에서 하되 콘텐츠의 영역은 외부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자료조사와 콘텐츠를 분리 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문화원 여건을 생각하면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까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컨텐츠를 연구하는 사람이 분리되면 좋겠지만 문화원이 너무 연구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현장과의 괴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자치단체가 내려준 숙제가 너무 많아서 연구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적절한 배분이 되어야 합니다. 대게는 컨텐츠로 활용하는 정도가 형평성에 맞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객관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담양도 담양 읍내와 창평의 문화권이 다른데 담양 인구 46,000명 중에 14,000여 명이 읍내에 살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창평은 인구가 6,000명도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자치단체에서도 읍내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화원도 같은 비중으로 가게 되면 창평 지역의 고유한 문화들이 깨집니다. 지역사회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인문지리적 특성, 사회학적 특성, 이것들에 준해서 객관적으로 컨텐츠의 발굴과 활용이 같이 병행되어야 하고 한쪽에 치우쳐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문화원에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원이 지금까지는 향토사 발굴과 관련된 전문 연구원이나 향토사 연구소가 있는데 연구뿐만 아니라 실행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조직이 훨씬 더 경쟁력도 있고 또 문화원의 전문성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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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이 이슈가 되기도 하고, 지역의 경계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문화를 지키고, 발굴하고 원형을 보존하는 일들이 지금의 청년세대나 이후 세대와 만나기 위해 문화원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할까요?

지역문화는 자기 삶의 뿌리이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도시화가 된다 해도 내 안에 흐르고 있는 기질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들을 확인해나갑니다. 한민족이다, 배달민족이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 국토가, 이 산하가 키운 나 자신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가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동질감을 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 안에서 내재된 지식이나 경험들이 향후에 새로운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실험해보고 행동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문화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아까 말씀드렸던 전통문화를 원형으로서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반드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자리로써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용인의 민속촌이 오랫동안 전담하는 연희패들이 운영했던 방식에서 지금은 새로운 위탁자단체가 들어와 대학이나 시민들에게 열어놓으니까 훨씬 더 탄력을 받아서 실습의 장이자, 놀이의 장이자, 학습의 장이기도 하고 향후에 자기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마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역에 있는 문화재가 그러한 마당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문화원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문화원이 자폐성과 폐쇄성이 아닌 유연성과 포용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민속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방문화원의 성과를 홍보하고, 의미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긴 시간 내주시고, 많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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