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뿌리깊은나무에서 발간한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은 제암리학살 사건의 증인 전동례의 한평생을 다룬 구술 자료집* 이다. 이는 전 20권으로 발간된 민중자서전 시리즈의 1권으로 한국에서 구술 자료를 이용한 첫 출판물로 알려졌다.
민중자서전 1권과 3권
* 전동례 구술, 김원석 편, 1981,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 제암리학살 사건의 증인 전동례의 한평생」, 뿌리깊은나무.이 시리즈는 “어떻게 하면 똑똑한 제자 한 놈 두고 죽을꼬”(3권), “장돌뱅이의 돈이 왜 구린 줄 알아”(5권), “베도 숱한 베 짜고 밭도 숱한 밭 매고”(6권), “사삼(4·3) 사태로 반 죽었어, 반!”(14권) 등 구술자의 구술 느낌을 그대로 살려 민중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기존 역사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재발견하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보리 출판사 대표였던 정낙묵은 “민중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책 … 민중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말로, 스스로 드러낸, 맨 처음 책”이라고 평했다(????한국일보????, 2004/02/21). 한국에 구술사(oral history)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던 1980년대, 구술 자료는 이미 ‘민중 읽기’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중의 목소리를 재조명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의 구술사 발전은 폭력적인 과거사와 함께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등과 같은 고통의 역사를 구술 증언으로 기록하는 작업이 구술사 확장의 토대가 됐다. 한국에서 구술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구술 자료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이 시기의 특징은 연구·사회운동 등의 목적으로 개인·단체가 소규모로 행하던 구술 자료 생산이 국가 기관으로 확장되면서 그야말로 구술사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정보예술관, 2004년 국사편찬위원회, 2005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6년 5·18기념재단, 2009년 한국학진흥사업 현대한국구술사연구 사업 등 다양한 기관이 구술 자료 수집·아카이브 구축을 진행했다.
각각 기관에 맞는 주제사를 중심으로 한 구술 자료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수집을 넘어 연구·활용의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 과거사나 기관 목적 사업에 맞는 구술 자료 생산이 진행되는 가운데 지역사 관련 연구, 구술 자료 생산도 지속적으로 확장돼왔다. 최근 현대사 관련 연구들은 지역에서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에 주목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구술 자료는 지역사를 재구성하는 ‘살아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윤택림, 2012). 지역 구술사와 관련해 기존의 많은 연구나 자료 생산은 특정 역사 경험과 기억을 중심으로 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지역민의 생활문화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지방민이 주체가 되는 역사와 지역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지적 창조과정”(염미경, 2006: 249)으로 구술사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큰 전환점으로 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80년대 ‘민중의 재발견’이 지방사를 지역 주민의 처지에서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김태웅, 2008: 188)했다면, 지방자치제의 부활은 이를 구체화하고 지역정체성을 형성·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구술사는 중앙보다는 지역, 지역에서도 마을 말단의 생생한 삶의 숨결을 담아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지역 마을사를 만들어갈 때 구술사의 유용성은 어떤 것일까? 먼저 필자의 마을조사 경험을 사례로 들어 보겠다. 필자는 2017년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역사·문화, 현대사 백서」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매향리는 1952년~2005년까지 54년 동안 태평양 미 공군사령부 산하 주둔 제7공군 소속의 미군 전용 폭격장(쿠니 KOON-Ni)으로 쓰였다.
매향리 미군기지 관제탑 건물
1988년 본격적인 주민 투쟁이 시작된 이후 폭격장 폐쇄까지 1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긴 투쟁기간 만큼이나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고, 매향리 관련 보도, 방송국 탐사프로그램, 주민·시민사회 단체들이 만들었던 투쟁 관련 자료 등,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 사실 리 단위의 마을에 그 정도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매향리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화성시의 요청은 단순한 투쟁사가 아닌 매향리의 ‘역사·문화’에 더한 현대사(투쟁사)였다. 매향리의 근현대 자취와 생활문화사를 포괄한 백서 집필이 필요했다. 문헌·자료 조사와 더불어 연구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연구 방법은 구술사적 접근이었다. 마을 단위의 구술사 연구는 ‘마을로 들어가기’, ‘적절한 구술자 찾기’, ‘마을 내 미시정치에 대한 이해’ 등 많은 어려움을 수반한 작업이었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향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첫째,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기존 통념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매향리 주민에 대한 외부인의 시각은 미군 폭격훈련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군과의 어쩔 수 없는 공존 속에서도 매향리 주민들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갔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척박한 환경을 자신의 삶터로 만들어갔던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삶의 애환이 녹아 있었다.
둘째, 매향리를 중심으로 한 주면 마을에 대한 구술 조사를 통해 삶의 터전인 갯벌을 둘러싸고 수십 년간 만들어져 온 마을 간의 갈등과 투쟁, 타협 등 지역사의 미세한 결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산업화로 인한 바다 생태의 변화, 그에 따른 주변 마을 주민들의 생활세계의 변화를 생애사적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가며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셋째, 지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민의 일상, 생활사 관련 자료 수집이다. 이러한 자료는 관이나 기관에서 주민들에게 제출을 요구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구술 면담과정은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면 스스로 만들어왔던 다양한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단적인 예로 필자는 매향리 주변 석천4리 구술 면담에서 마을 지도 한 장을 구할 수 있었다. 석천리는 1962년 피란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90여 가구가 처음 이주 정착해 만든 마을이었다. 초기 이주했던 강○○(현재 87세)은 구술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을 형성 초기 손으로 그렸던 정착촌 마을 지도를 꺼내들었다. 달력 뒷장에 손으로 그린 이 지도는 당시 마을 형태와 주민 거주 상황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구술 면담은 구술자의 삶과 그 자취들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정인 것이다.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지도 일부
마을 단위의 ‘역사 쓰기’는 공식 역사와 기억에 대한 재조명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자신의 삶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가는 구체적 삶의 방식과 생활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술사적 접근은 이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구술 자료가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꿰어야 보배'다. 그렇다면 구술 자료 생산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첫째, 한국에서 구술 자료 생산은 아날로그 테이프, 디지털 녹음, 영상으로 빠른 매체 변화를 보이며 발전해왔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구술사가 먼저 발전했던 서구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구술 자료 생산에서 꼭 영상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물론 구술 자료 생산 기관의 목적, 현장 상황 등에 따라 구술 자료 목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영상은 구술자의 구술성, 구술 상황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자료의 활용도를 고려할 때도 영상 기록의 생산이 중요하다.
둘째, 구술 자료에 관련된 각종 서식의 구비다. 구술 자료를 충실히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서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활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서식은 각 기관의 구술 자료 생산 목적에 따라 응용해 활용할 수 있다. 기본적인 구술 자료 유형과 서식은 [표 1]과 같다.
자료구분 | 구술정보 메타데이 | 권리관계 메타데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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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① 구술 자료개요 ② 구술자 신상기록부 ③ 면담자 신상기록부 ④ 예비 질문지 ⑤ 면담일지 ⑥ 구술 자료 상세목록 ⑦ 시청각 자료 서식 ⑧ 문서 자료 서식 ⑨ 물건 자료 서식 |
① 구술동의서 ② 구술 자료 공개 및 활용동의서 ③ 구술 자료 검독확인서 ④ 구술 자료 비공개 내역서 |
셋째, 구술 자료의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술 자료를 토대로 구술자료집이나 책자를 간행한 후 구술 자료의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술 자료가 1회성 활용에 그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망실되는 것은 예산 문제를 넘어 어렵게 생산한 소중한 지역사 자료를 잃는 것이다. 따라서 구술 자료 생산 기획 단계부터 생산된 자료의 사후관리와 보존 방침을 세워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230개의 지방문화원이 있다. 이중 경기지역에 가장 많은 31개가 있다. 문화원의 사업내용 중에는 ‘지역문화의 계발·보존 및 활용’, ‘지역문화(향토자료를 포함한다)의 발굴·수집·조사·연구 및 활용’이 있다. 구술 자료 수집·연구·활용도 이러한 사업 내용에 기반할 것이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구술사 관련 사업이 기획될 수 있다. 모든 사업이 그렇겠지만 구술 자료 생산에 관련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문화원이 해당 사업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업 담당자가 구술사에 관해 풍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술사 연구 및 구술 자료 생산에 관련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자문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업의 기획부터 결과물까지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구하면서 담당자도 구술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구술 자료 생산에 관련한 과정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구술 자료를 기획 생산할 경우 기획 단계부터 보존·활용에 대한 기본적인 방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료가 잘만 관리된다면 지역문화원은 지역민의 목소리를 직접 생산·관리·보존하는 1차 기관으로 지역 정체성 형성,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만일 지방문화원 차원에서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특별시, 광역시와 도에 있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 또는 국사편찬위원회나 국가기록원 등과 같은 기관에 위탁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윤택림, 2012: 231) 자료의 망실을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술 자료를 포함한 마을 기록을 만들어 가는데 마을 주민, 혹은 지역사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주민기록자가 되어 현지조사를 하는 것은 기록 주체의 민주화 과정으로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기초적인 교육부터 현장 교육까지를 망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문화원 차원에서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개별 문화원 차원에서 어렵다면 지역 문화원연합회 차원에서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다.
주민기록자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갖는 주민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구술 자료는 구술자와 면담자의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구술자들은 이념 혹은 정치적 우려, 기록에 대한 불신과 몰이해, 혹은 소극적 태도 등 다양한 이유로 구술 면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구술자가 면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료 생산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이는 구술 자료 생산에 관여하는 여러 주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몫이다. 지방문화원의 경우 외부인들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수 있다. 구술자 스스로가 구술 자료 생산의 적극적 주체임을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문화원과 지역민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관계망을 만들어 가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나 이 또한 주민기록가를 양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태웅, 2008, 「해방 이후 지방지 편찬의 추이와 시기별 특징」, 「역사연구」, 18.
염미경, 2006, 「지방사연구에서 구술사의 활용현황과 과제」, 「역사교육」, 98.
윤택림, 2012, 「지방지(地方誌)와 구술사」, 「구술사연구」, 제3권 2호.
전동례 구술, 김원석 현, 1981,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 뿌리깊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