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원도심 이야기」책자와 아카이브 전시
2018년도, 서산시문화도시사업단의 요청으로「서산 원도심 이야기」책자를 발간하기 위하여 충남 서산의 대표적인 원도심이며 한때 서산의 최고 번화가였던 번화1로와 번화2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경험이 있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서산의 원도심에 대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원도심 자료 보관소 겸 전시공간인 「남양여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남양여관은 1970년대 지어진 여관으로 10여 년 전에 폐업하고 건물만 도심 한가운데 흉하게 남아 있던 건물이다. 이를 리모델링하여 서산 원도심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각종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향토사 연구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아카이브 조사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이 일도 향토사의 한 범주에 포함된다는 생각에 선뜻 응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서는 경험부족으로 일머리를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기억이 몇 십년 지나면 명확하지 않았다. 동일한 질문에 사람마다 답변이 달랐다. 심지어 포강(작은 저수지 규모의 물웅덩이)의 위치도 제각각 달랐다.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 위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했다. 때문에 반드시 복수의 인터뷰 대상자를 두고 교차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터뷰는 반드시 향토사가 또는 그 지역에서 수 십년 이상 거주해서 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실례로 서산의 우시장은 현재까지 5번 위치를 옮겼는데 인터뷰를 하면 모두 서산우시장이라고 말하지만 인터뷰 대상자의 나이에 따라 그 위치가 각각 달라서 사업 수행자들이 혼선을 빚었다. 또한 인터뷰 시 본인의 직접 경험을 통한 인식과 추상적인 인식을 구분해서 들어야 한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내용은 명료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추상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전해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기를 본인의 얘기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나고 나니 이러한 일들도 「서산 원도심 이야기」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가능하다면 이러한 일은 없는 것이 사업수행에 좋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도시재생사업이 많은 도시에서 붐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부분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원도심 아카이브’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남양여관」
세상만물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오직 변한다라는 사실 하나뿐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인류문화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인류는 이 변화에 대응하여 최적의 적응을 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적응의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문화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정치도 하나의 문화현상이고, 경제도 하나의 문화현상이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회도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스포츠, 교육, 과학기술 등은 당연한 것이고 여기에 결혼, 부고, 상업성 광고 등의 내용이 첨가되면 그날의 신문 전체가 된다. 그러므로 신문 전체 내용이 신문 발간일의 문화현상들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사화 되지 못한 내용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이러한 제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지역문화를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화를 표기하면 한자로 문화(文化)라 하고 영어로는 컬쳐(culture)라 한다. 한자의 의미에서 글월 文자가 의미하는 바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현상(現狀:현재의 상태)을 의미 한다. 대자연에 사람의 인위적 노력을 더하여 현재의 상태로 되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서구적 견지에서 문화(culture)의 어원은 논, 밭을 경작하고 작물을 재배하거나 배양함을 의미한다. 대자연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 행했던 모든 일들과 그 결과물이 문화인 것이다. 여기에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화사회,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가 올 제4차 산업혁명 등도 포함된다.
이렇듯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도 큰 개념이어서 우리가 이를 단어 몇 개로 짧고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문화의 반대말인 자연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자연의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 바로 그것이 문화이다. 자연과 혼동하기 쉬운 단어 중의 하나가 환경이라는 것이 있다. 환경은 과연 자연의 범주에 포함될까 아니면 문화의 범주에 포함될까? 의외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환경은 문화의 영역 안에 있다. 산업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환경이라는 단어는 자연환경이 전부였기 때문에 대자연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가내수공업을 필두로 초기산업사회, 후기산업사회에 이르면서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와 공장굴뚝의 시커먼 연기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습득했고, 이로 인해 환경이라는 분야가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정착된다. 즉 최근에 문화의 한 분야가 된 것이다. 그래서 문화는 유기체적 특징을 갖는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광의로 문화를 정의한다면 대자연 속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행한 모든 행위와 그 결과물이 문화인 것이다. 그러나 협의로 문화를 정의하면 상식, 교양, 예절, 규범 등을 지칭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사회의 범주 안에 문화가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부문에서 이러한 협의의 의미로 문화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문화와 사회라는 개념을 비교하면 사회가 문화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인류는 대자연속에서 멸종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 진화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앞에서 언급한 환경처럼 인류가 만든 문화적 산물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文化)와 예술(藝術)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는 것처럼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와 문명의 차이를 이해하면 지역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지역문화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종종 다음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4대문명은 나일강 유역,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유역, 인더스·갠지스강 유역, 황하유역의 문명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를 지구 전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지구상의 어느 특정 지역을 의미하게 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문명은 지구의 어느 특정지역에 소재하며 발전한 지역문화인 것이다. 이 4대 문명의 발생지는 위도와 경도가 각각 다르므로 기후, 온도, 습도, 풍향, 강우량, 지형 등등 모든 조건이 상호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문명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 범위를 줄이고 또 줄여서 생활권 내로 축소시키면 우리가 말하는 지역문화가 되는 것이다. 동일 국가, 동일 문화권 안에서도 저마다의 지역적 특징이 있기 마련이고 이 특징이 지역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일정한 경향성을 띠게 한다. 바로 이것이 지역문화요, 지역문화정체성인 것이다.
지역 별로 산하, 지형, 산업의 형태 등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해당 지역주민의 생활방식에서도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를 찾아낼 수 있어야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다. 중앙의 역사가 영웅호걸의 역사라면 지역의 역사는 이름 없는 골목 평범한 지역주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앙의 역사든 지역의 역사든 간에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똑같이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작지만 그 일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소소한 일일지언정 지역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사초를 뽑는 것만큼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서는 소중한 것이다. 지역 아카이브를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지역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첫째, 지역의 자연 지리적 특징과 지역문화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문화란 그 권역을 생활권역까지 줄여서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공통된 생활양식이 그 지역의 지역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정구역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거나 또, 겹칠 수도 있다. 자연 지리적 특징이 지역민들에 삶에 영향을 미쳐 그 결과가 지역문화정체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느 지역도 이것에서 예외일 수 없다. 자연 지리적 조건은 그 지역의 역사와 그 지역민의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에 영향을 끼치며 서로는 항상 상관관계에 있다.
둘째, 아카이브를 구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대하고 충분한 양의 자료가 소장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소장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활용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많은 양의 자료도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활용에 많은 애로가 따른다.
셋째, 지역민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 해당 지역민의 삶이 녹아 있는 내용이어야 그 아카이브가 지역적 특색을 가질 수 있다. 그래야 콘텐츠의 활용이 가능하게 된다. 수원에 살든 서산에 살든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은 똑같기 마련이다. 수원 밥의 의미와 서산 밥의 의미가 구별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넷째, 민관 거버넌스 형태로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수행하면 효율적이다. 어느 사업에도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지역기록화 사업이라는 아카이브 구축사업의 예산은 관에서 지원하고 일은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하면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관의 행정력이 동원되면 섭외 등 많은 부분에서 과업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