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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조직/경영>
『처음 가는 마을』(봄날의책 2019) 『여자의 말』(달아실 2019)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을 위하여
고 영 직 문학평론가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어

순수함이 중요해
사람을 만날 때나 세상을 대할 때나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을 때
타락한단다 추락해가는 걸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지

_ 시 「되새깁니다-Y·Y에게」 부분

위의 시는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가 쓴 「되새깁니다」라는 시의 부분이다. 시의 부제에 등장하는 ‘Y·Y’라는 인물은 야스모토 야스에라는 신극 여성배우로 알려져 있다. 위 시에서도 간파할 수 있지만,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는 쉬운 일상어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소중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시와 삶이 일치하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고 확언할 수 있다. 나는 위 시에 등장하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을 때”라는 구절이야말로 이바라기 노리코가 시와 삶에서 여일하게 역설하고자 한 시적 메시지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특히 소수자 또는 약자(弱子)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자기 ‘바깥’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위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온갖 좋은 일의 핵심에는 / 떨리는 연약한 안테나가 숨어 있다 반드시……” 라고 쓴 표현에서 확실한 ‘물증’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바라기 노리코는 필생에 걸쳐 타자와 타자의 말들을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안테나’를 자신 안에 간직하며 살아간 것이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출세작이며, 전후 일본 현대시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시는 군국주의 일본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시로 큰 주목을 받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 그래서 난 그만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말았다.”(제2연) 다시 말해 소녀 시절에 겪은 전쟁 경험은 이바라기 노리코로 하여금 자신의 시와 삶에서 “이유는 잘 모르지만 /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어”(「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선언’하도록 재촉한 셈이다.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어’라는 진술은 시인이 시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선언하는 일종의 시론(詩論)이라고 보아야 옳다.

image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비롯, 다수의 시가 수록된 이바라기 노리코 시선집 「여자의 말」(달아실 2019)

그렇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와 삶에서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고자 한 여일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남편 사후에 한글을 배우며 한글/한국을 사랑하고, 윤동주 시인을 사랑했으며, 신경림·강은교·홍윤숙 같은 한국 시인들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활동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특히 윤동주의 시와 삶에 대해 쓴 수필 「바람과 별과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에서 ‘윤동주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시인이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되어 천황을 비판하며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와의 관계 회복을 바라고, 소통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독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일본 천황을 비판하는 「사해파정(四海波靜)」을 비롯해 「계보」, 「없었다」, 「피」 같은 내부비판 계열의 시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명의 미장이」라는 시에서 보듯이, ““사모님 시는 저도 이해할 수 있답니다”라고 말한다 / 이보다 기쁜 말이 있을까”라는 표현처럼 시인의 시는 일본에서 매우 폭넓게 읽혔다.
특히 천황을 직접 비판하는 「사해파정(四海波靜)」은 시인의 결기가 느껴진다. 이 시는 1975년 10월 31일, 방미(訪美) 후 귀국한 히로히트 일왕이 전쟁책임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그런 말의 수사(修辭)에 대해선 문학 방면에서는 그다지 연구한 바가 없어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변명한 데 대해 한 사람의 시인/시민으로서 신랄히 야유하고 비판한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천황 비판이 일종의 금기로 취급되는 일본 사회에서 선(線)을 넘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국민(國民)으로서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부(政府)로서 보편적 양심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의식이 없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내 주위는 온통 만세일계투성이다’라며 일제의 만세일계론 논리를 부수고, 무사도(武士道)를 야큐자와 다를 바 없다며 비판하는 「계보」와 「없었다」 같은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라크-독일-일본 군국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 「피」에 등장하는 “피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진정한 의도를 간파할 수 있으리라. 쉽게 말해 시인은 국익(國益) 따위를 말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주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바라기 노리코의 이러한 순박한 ‘결기’와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기대지 않고」라는 시는 좋은 증좌가 될 것이다. 이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은 어떻게 탄생하고, 한 사람의 ‘시민’은 어떻게 제2의 탄생을 하게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기성 사상, 종교, 학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분명한 시적 선언에 나타나 있다. 자기 혼자 세상에 설 수 있는 자립(自立)의 태도를 갖춘 독립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눈과 귀 /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으면서 / 그 어떤 불편함이 있으랴”라는 구절에서 기존의 권위 따위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당당한 태도를 확인하게 된다. 시인의 이러한 태도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순간 저절로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확장되는 것 아닐까 싶다.

‘시인’과 ‘시민’ 사이에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이(平易)한 시어 너머에 삶을 깊이 통찰하는 혜안이 행간에서 번득인다는 점이다. 시인의 내공이 깊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약하고 힘없는 존재들, 다시 말해 겨우 살아 있는 것들의 편(便)이 되고자 한 시인의 시적 태도는 매우 감동적이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소녀 시절의 이야기를 쓴 「화낼 때와 용서할 때」라는 시는 어떤 힌트를 제시하는 듯하다. “오로지 하나 분명한 건 / 자기 스스로가 그걸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 사실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시인은 ‘나 자신’을 주장하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소녀 시절부터 강하게 의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패전의 날 십주년을 맞아 쓴 「한번 본 것」에서 “여름풀 무성한 불타버린 폐허에 웅크리고 앉아 / 젊었던 나는 / 안구(眼球) 하나를 얻었다 / 원근법 측정이 정확한 / 차갑고 상쾌한!”이라고. 여기서 시인이 ‘원근법’이라고 쓴 비유는 나와 타자와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 거리가 너무 멀어도 안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된다는 점을 늘 의식하며 시를 쓰고 삶을 살았던 데에서 이런 시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유추할 수 있을 법하다. 다음과 같은 시는 득의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잘 안되는 것 일체를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가까스로 빛을 발하는 존엄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야지
바보 같으니라고

-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부분

시인이 남편과의 사별 이후 한글을 배우고 익히며 타자와의 만남과 교류를 계속 이어가는가 하면, 윤동주 시를 비롯해 한국시를 번역해 소개한 것도 ‘자신이 진짜로 살아 있었던 날’(「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날」)을 살고자 했고, “타인의 말을 조용히 / 받아들이는 힘”(「듣는 힘」)이야말로 나를 나로서 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연가 형식의 「세월」 같은 시에서 “단 하루의 / 번개 같은 진실을 / 부둥켜안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쓴 표현은 결국 시인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바라기 노리코는 소녀 시절부터 필생에 걸쳐 내 안의 ‘안테나’를 늘 의식하며 살았던 것이다. “안테나는 / 끊임없이 수신하고 싶어한다 / 깊은 희열을 주는 말을.”(「왁자지껄한 와중에」) 수신하기 위해.

이바라기 노리코는 자신의 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시민적 태도를 잘 보여준 시민-시인 혹은 시인-시민이다. 다나카 쇼죠(田中正造)의 아시오(足尾) 광독 사건을 환기(「반복의 노래」)하며 반복되는 일제의 문제를 성찰하고, 한글을 배우는 과정(「이웃나라 말의 숲」)에서 윤동주와 한글 그리고 한국에 가한 일제의 만행에 ‘사죄’하는 것 또한 타자와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한 양심적 시인/시민의 발로라고 할 수 있으리라. 즉 시인은 탈아(脫亞)를 주창하며 자신이 아시아 각국의 민중들에게 가한 역사적 상처를 회피하려는 일본 지식인 특유의 ‘전학생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장시로 쓴 「류리엔렌의 이야기」 또한 중국인 강제동원 노동자 류리엔렌의 기구한 삶의 행장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로서 동아시아 민중들이 진정한 마음의 연대를 촉구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는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영혼도 없고, 사회의식도 없는 소위 잘난 ‘전문가’들이 너무나 많다.

한 사람의 지식 혹은 역량은 자기 혼자 잘나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식의 공공성을 성찰하지 않는 알량한 지식과 역량은 먹고사니즘의 수단이 되거나 사회적 흉기와 다를 바 없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지식인은 죽었고, ‘쥐식인’들이 활개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식인 혹은 문화기획자의 역량은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선집은 시, 지식, 문화기획의 공공성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텍스트이다. 시인이 쓴 「유월」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 (중략) // 어딘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힘은 없을까 / 동시대를 함께 산다는 / 친근함 즐거움 그리고 분노가 / 예리한 힘이 되어 모습을 드러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힘은 결코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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