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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조직/경영>
돌연변이 그리고 진화 그리고 문화원
심 한 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스스로는 변화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고,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이는 대부분의 공공집단이 가질 수 있는 착시현상 또는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다. 특히 오래된 집단일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복제된 사유, 복제된 상상, 복제된 태도와 행위 등이 반복될수록 역동적 돌연변이가 탄생될 확률은 낮아진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으로만 치부되지 않고 그 깊은 소중함을 드러내며 현재적 시점의 언어와 문화와 일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래된 것들의 진화는 지금과 다음을 위한 생존과 공존의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를 위해서는 역동적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좀 오래되었거나 낡은 것 또는 변화가 없는 곳’이라는 보편적 인식의 주인공으로 ‘문화원’이 자주 등장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문화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전통, 향토, 보존과 계승, 어르신 등이다. 이는 문화원의 지향과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의 시점으로는 정지된 또는 역류하는 흐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이든 착시현상이든 간에 문화원 스스로 지켜야 할 것, 변화해야 할 것, 진화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통합적 진단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문화원의 본질을 지켜가면서 변화와 진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으로서 ‘돌변변이의 진화’를 말하고자 한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의 역사

A라는 독립된 개체가 B를 만나고 충돌하면서 C를 상상하게 하고, A와 C가 결합되어 새로운 D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품은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한국의 사회복지 또는 청소년복지에 대한 염증과 비판으로 뭉쳐진 사회복지 전공자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안교육, 문화와 예술, 마을공동체, 국제개발과 엔지오, 지속가능한 삶 등 다양한 시각과 실천들이 연결되어 마을 속에서 십대와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즉 사유와 실천의 돌연변이 과정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품이 지향하는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 그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은 매우 다양한 접촉과 진화들로 채워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진화의 중심에는 늘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순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와 실천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회적 유성생식 과정에서 진화된 사람의 힘이었다. 늘 하던 생각과 실천에 거대한 바윗돌을 던지는 사람의 힘이 작용하기도 했고, 늘 하던 생각과 실천 속에 있었던 주인공들의 끊임없는 변이과정들이 새로운 힘으로 작용되기도 했다.

image 23살 청소년축제와 연결된 돌연변이의 진화과정

십대들이 스스로 꾸려가고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에 집중했던 품은 십대들과 함께 고정된 일상들을 문화적으로 사고하고 해체해볼 수 있는 일탈로서의 축제가 아닌 일상으로서의 청소년축제를 만들어왔다. 올해로 23살이 되는 대한민국 최장수 청소년축제이다. 축제하나만을 보자면 축제만으로 십대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전부가 될 수 없겠지만, 축제를 만들었던 20여 년 동안의 과정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들은 오래된 관성과 습관에 멈추어 있는 품을 흔들었고,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십대들을 흔들었다.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 4-5년째를 넘기면서 축제를 기획하며 일탈과

일상을 넘어들었던 십대들이 20대로 넘어서기 시작했고 몇몇의 돌연변이들은 또 다른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십대에게 꿀맛 같은 즐거움이 되었던 문화적 일상들이 모여서 축제가 되고 그곳에서 삶의 주인공이 되었던 십대들이 청년으로 성장하며 전혀 또 다른 방식의 사고와 실험들을 하게 되었고 개인으로서 또는 작은 집단으로서의 서로에게 자극과 희망을 던지며 대물림되는 돌연변이의 계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품이 십대들에게 미리 깔아준 ‘판’들이 흔들거리는 진화를 거듭하며 십대와 청년들의 독립적인 그리고 새로운 ‘판’들이 이어저가고 있다.

image 청소년문화축제 ‘추락’

돌연변이의 대물림과 확장은 새로운 접근과 관계의 영역으로도 함께 진화되었다. 일상 속에서 가능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문화적 사고와 실천들은 조금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과정과 관계의 과정들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장르와 영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켜보는 <십대문화 아카데미> 그리고 마을 속에서의 배움과 실험을 위한 <마을마실>, <마을 속 인문학 교실>과 같은 시도들로 확장되어갔다.
그리고 이를 집약한 마을 속 대안학교인 ‘무늬만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다. 학교와 품을 왕래했던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의 배움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무늬만학교의 교사는 과거 십대 시절에 활동했던 청년들과 지나온 과정에서 연결된 마을의 주인공들로 채워졌다. 요즘 품에서 놀고 있는 십대들 중에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서 또 다른 삶의 선택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가질 수 있는 막연함과 불안감들을 줄여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들도 함께 늘어가고 있다. 그동안 이어져온 돌연변이의 과정들을 만나보거나 목격했기에 경험에 근거한 판단들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이들을 응원해줄 관계들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image 추락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활동

그 사이 청년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은 변화들을 거듭해갔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십대가 20대의 청년이 되고 다시 30대의 청년이 되어가면서 일상의 문제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생존의 문제들을 개인의 차원이 아닌 청년집단 또는 마을의 차원에서 궁리하면서 작은 연결과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어주고,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이어주고, 시도가 또 다른 시도를 이어주는 과정이 반복이 아닌 순환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관계와 네트워크가 진하게 연결되어졌다. 결국 이러한 접촉과 변이의 시간들은 한 집단의 정체성과 방향 등을 끊임없이 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

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

15살, 16살 청소년들에게 몇 가지의 검사(적성검사, 진로검사 등)와 몇 가지의 직업군을 성공사례로 소개하며 먹고 살 것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제안하거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10개월짜리 계약직을 남발하는 지금 <청년 인문실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즐거운 반란과도 같다. 정규직 보장 또는 월 200만원 수준의 급여지급과 같은 달콤한 생존의 약속도 내걸지 않는데도 개인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인문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작은 실험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환호할 줄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 인문실험>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정산이 없는 200만원의 활동 지원금과 성과로 드러나기 힘든 응원과 지지뿐이었다. 서울이나 대도시만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100팀의 청년들이 참여를 했다.

image 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

청년 연극배우가 인문을 읽고 나누기를 시작했고, 청년 디자이너가 자본의 도시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청년 작가가 마을 속의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특별하게 뽐낼 것이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일상 속 관찰을 통한 행복한 성찰을 시도했다.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도 인문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청년들의 <혼밥의 인문학적 대안 찾기>, 자본과 개발로 흔들리는 을지로의 시·공간적 역사를 다시 해석해보려는 청년들의 <이공일구 을지로 동네달력 프로젝트>, 찌질한 생존이 아닌 당당한 욕망의 일상을 시도하는 청년들의 <파자마 파티>, 스스로 만들어 낸 의무와 책임과 평가에 대한 저항으로 숨겨진 영혼의 욕망과 다양한 가치를 찾아가는 다중정체성을 탐색하는 청년들, 그 외에도 비혼여성, 평등, 책 읽은 코인 세탁방, 공정여행, 도시농업, 세대교감 등 생존을 넘어서는 실존의 사유, 탐색, 시도와 실험이 유쾌하게 발휘되었다. 청년 프로젝트에 ‘인문’을 조우하니 사유의 힘, 정신의 힘, 성찰의 힘이 드러난다. 그리고 청년만의 고립된 사유와 접촉을 넘어서는 다른 세대와 영역의 교감과 공존이 드러난다.

<청년 인문실험>은 ‘돈이 보여야 지원을 한다. 또는 지원을 받으려면 보여지는 결과나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라는 공식을 버렸고, 실제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100팀의 청년들이 조우했던 몇 번의 만남에서는 무거운 불안이나 두려움 또는 타자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생존으로 연결되는 취업설명회와는 다른 세계였고,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기는 기존의 공모사업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또한 <청년 인문실험>에서의 가장 소중한 과정은 일상과 사유와 실험을 담은 기록이었다. 과장된 성과에 집중해야 하는 결과보고서가 아닌 각자의 일상, 사유, 실험이 담긴 개인의 글쓰기는 개인의 실존을 드러내고 공유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저장되었으며 타자와의 진한 교감과 공감을 연결했다.

<청년 인문실험>은 공공영역에서의 시도였지만 행정과 시스템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보이는 결과와 성과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으며 실존에 대한 청년들의 동기와 의지와 욕망을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청년을 생존의 문제로 풀어가려 하는 우리사회의 대안적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원은?

# 오래된 것들이 다른 것을 만나며 또 다른 유전자를 잉태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원의 본질과 정체성을 소중하게 지켜가면서 새로운 접촉과 시도에 진지한 몰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장르의 결합이나 일시적인 실험이나 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적 변화와 시도가 아닌 ‘세포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원의 이미지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들에 대한 유연한 호기심이 자발적으로 작동되며 긴 호흡의 말 걸기와 손 내밀기를 끊임없이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 내적인 성찰과 통찰 등을 적절하게 성장시켜가며 자유롭게 여행하는 영혼처럼 문화원만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잉태해갈 수 있어야 한다.

# “네트워크 또는 자원의 발굴과 연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번호의 주제가 ‘적소적재 연결하기’라고 했지만 진정한 적소적재 연결이 가능하려면 괜찮은 사례를 따라가거나 효율적인 방식을 실험해보려는 과감하게 태도를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네트워크, 자원 등의 개념을 다시 해석해봐야 한다. 뿌리 깊은 접촉과 나눔의 과정이 생략된 네트워크와 자원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연기와도 같다. 당장의 효율성과 성과를 잠시 내려놓고 길게 깊게 관계하고 연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도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누군가를 찾아서 연결하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의 시도보다 먼저 스스로 가능한(Self-So) 돌연변이가 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문화원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찾기에 앞서 문화원이 누군가의 자원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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