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학습과정에 있는 자기 생각의 전환을 만드는 사건을 만날 수 있고 그 사건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사건적 사람’이라 칭한다면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문화적 관점과 태도가 몸에 장착되는 것, 이것이 배움이고 그런 이들이 문화인력 아닐까.”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교장이자 지역문화인력양성과정 안양 총괄멘토인 김월식 작가와의 대화는 제도권에서 이뤄지는 인력양성사업에 대한 비평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 성장, 시스템, 개념과 방향 등 전체적인 시각에서 요즘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일일이 모든 이슈를 상세하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가 ‘김월식스러워진’ 사건들을 따라가 보면 나의 사건들이 겹쳐지기도 하고 생뚱맞은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간증’은 우리가, 각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어느 방향에서 보아야 할지 색인이 되어주곤 한다. [편집자 주]
임재춘 :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사람에 대한 고민, 예술가, 문화기획을 하는 이들이 좀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시작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김월식 : 내가 같이 일할 사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는 게 가장 컸을 거예요. 학연이나 지연으로 만나면 위계가 생겨요. 저는 그러한 것을 넘어서 가치 지향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그러한 전제로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사람, 설사 나이 등으로 위계가 생기더라도 함께 즐겁게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스톤앤워터와 리트머스에서의 작업이 그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거길 들어갔던 이유가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을 것입다. 그 시기에 쌓인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자신감이 쌓이면서 무늬만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었어요.
임재춘 : 혼자서 하기보다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찾아가는 과정, 그렇게 만난 이들이 함께 여러 일들을 벌이면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해요. 누군가가 또는 무엇이 의도적으로 길러냈다기보다요. 그럼 그때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가요?
김월식 : 저는 얼마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스톤앤워터와 리트머스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새삼 생각해요. 거기서 만난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문화기획, 문화정책 등의 영역에서 의제를 견인하는 활동하고 있어요. 그들의 역량이라는 것은 양성된 것이 아니라 동료로서 함께 경험한 시간과 사건을 통해 짱짱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남겨진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해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임재춘 : 문화예술교육 또는 그 이전에도 현장의 문화적 역량에서 사람의 문제는 꽤 진지하게 다뤄져왔고, 지역문화진흥법이 만들어지면서 사람에 대한 제도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표면화되고 있다고 보여져요. 지역문화인력양성 및 배치에 관한 사업이 대표적일 수 있죠. 경기문화재단의 다사리문화기획학교도 지역문화정책 안에서는 같은 포지션일지 모르지만 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이나 양성이라는 방식의 비평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방향성들이 느껴집니다.
김월식 :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학교에서 교과 선생님들이 정년이 가까워지면 상담선생님으로 전환을 시켜주는데 몇 시간 교육을 들으면 바로 자격증을 주고 상담 선생님이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제도에서의 그것들은 사기일지도 몰라요. 배움이 아니라 자격(증)을 위한 양성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용을 깊이 다루는데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점, 표준화한다는 점, 이를테면 커리큘럼이라는 방식이 사고를 표준화하고 정답이 있는 지향을 갖도록 강제한다는 게 과연 문화적인가라는 것이죠. ‘문화’가 붙은 것들은 어찌되었건 다양성을 어떻게 끝까지 살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객체성 같은 것들을요. 그런데 제도, 정책적으로 양성한다는 것은 표준화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다양성 측면에서 애초 안 맞는 조합이거나 시스템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아마 이 점이 사람을 길어낸다는 문화적 맥락과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 제도의 의도가 상충하는 부분일 것이다. 생각해 볼 점은 이런 의도의 부딪침이 제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지역의 문화기관, 시설의 기관장, 운영자들, 많은 문화예술인의 인식이나 태도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 말이다. 이를 테면, “설사 전체적인 것을 흐트러뜨린다고 해도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개별성을 허용하고 점차적으로 허용의 바운더리를 넓혀야 한다”는 김월식 작가의 생각과 그 사이에서 생기는 정책과의 긴장감이라는 것을 불편하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 가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시스템과 정책의 문제여야 하지 않을까. 그럼 정책은 사람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김월식 : 군대에서 소대장, 선임하사(소위, 30-40명의 리더) 한 명을 양성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예산을 투여해요. 국가안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비교할 일은 아니겠지만 문화에서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긴 호흡의 시간과 이에 적절한 예산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문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죠. 제가 참여하고 있는 안양 지역문화인력양성과정이나 다사리문화기획학교의 경우 앞서 말했던 다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시도하고 있는 게 선생님들이 ‘밀착해서’ 붙어 있다는 것이에요. 어떤 게 더 나은지 알 수 없지만 일관된 생각과 태도를 지닌 선생님들이 밀착해서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기 다른 태도의 선생님들을 통해 다양함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작한다’는 문화의 어원을 빌어 농사꾼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농사를 이해한다는 게 엄청난 거잖아요. 최소한 사계절을 다 보내며 씨앗을 뿌리고 추수를 해서 판매까지 해보는 경험, 그게 한번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매해 그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농사꾼이 되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에 비하면 제도에서 사람을 길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이 적은 예산으로 가장 쉽게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을 쓰다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청년, 경단녀 등의 말로 삶의 절박함을 이용하고 이들을 대상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임재춘 :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 이전에 김월식 작가 스스로 예술가, 예술활동가로서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스톤앤워터나 리트머스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월식 : 나는 그 두 곳에서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실험을 다했어요. 스톤앤워터는 나를 키웠고 나는 스톤앤워터를 키웠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웠어요. 내부의 논의체계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가능했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작업과정을 보면서 어떤 기준, 수준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김월식 작가는 그렇다고 해서 스톤앤워턴나 리트머스가 어떤 전형으로 잘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김월식이 처음에 스톤앤워터를 찾아간 것처럼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삶의 갈증, 관계에 대한 갈증, 문화예술에 대한 질문과 해답의 목마름을 적시는 물 한잔의 주고받음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갈증을 느끼는 사람과 그 목마름을 알아채어 물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만나 물을 재미나게 마실 궁리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그러한 사람과 그들이 만든 자율성이 보장된 문화적인 자리를 보고 다시 사람이 모이는 이 과정이 시스템인 셈이다.
김월식 작가가 말하는 다양함은 개별성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나는 문화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에서 명시적으로 언어화된 지식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술 외에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살아가는 각자의 ‘태도’가 문화적인 다름의 구체성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김월식 작가가 끈질기게 강조하고 주장하는 다양성이, 문화기획 교육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태도적 미디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허용케 해야 한다는 그의 방향성에 동의한다. 이러한 일에 관계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당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사업의 내용이나 구조에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많다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지 않나요? 태도적 미디엄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는 선생님들과의 밀접한 스킨십과 그들의 생각, 작은 실천들을 문화적으로 읽어주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역량이 키워진다는 것은 자기 신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는 자기 생각이나 동기가 중요한데 이게 전적으로 자기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회의(懷疑) 없이 문화기획이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수단으로 기능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한편으로 필요하지만 철학, 방향성 같은 중요한 테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요.”
지역에서 이러한 화두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가를 묻자 그는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대화의 순서와 무관하게 김월식 작가가 나름 오랫동안 지역의 여러 기관, 시설, 현장들과 일을 해왔지만 문화원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예술가로서 오랫동안 제법 다양한 지역 현장들, 기관들과 함께 ‘사람’을 고민하는 일을 해왔는데 유독 문화원과는 인연이 없었어요. 왜일까요?”
문화현장에서 사람의 성장과 연결에 대한 이번 인터뷰 주제에 대해 듣고는 뜬금없이 되물었다. “잘 모르겠는데, 제 느낌일 뿐인데 문화원 나름의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이 있었다고 봐요. 문화원스러운 사람? 이런 게 존재할까 싶지만 사업의 유형이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소 보수적이고 근대적이고
착하고 공동체에 소속성이 강한 집단성이 강한 뉘앙스가 느껴져요.”
문화원이 지역 전반, 전체의 문화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없다. 허나 지역에서 다양성을 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낯선 노력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 김월식 작가는 올바르다는 기준의 정의를 다시 내려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프레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청년들은 줄을 치고, 부녀회는 부침개를 부치고, 노인들은 앉아서 막걸리를 먹는 그런 풍경을 지울 수 있나요? 그 프레임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윤리적 그림을 바꾸어 지역문화를 조금 흔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욕을 좀 먹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