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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업>
가평문화원의 문화가중계
두 번째 이야기


우리도 좀 논다! 그까이꺼 재즈!

 10월 26일, 한참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진행팀을 만났다. 올해 10월은 유난히 하늘도 맑고, 햇볕도 따스한 히 좋았는데, 하필 공연이 진행되는 날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다니 진행팀의 손길은 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비 소식으로 분주할 수밖에 없는 진행팀이 야외 공연이 가능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동안, 공연의 한 부분을 맡아주기로 한 생활음악협회 가평지부의 정택원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땅에 밟힐 정도로 포스터를 붙였는데, 군청에서 모두 떼어버렸다는 하소연이었다. 혹시라도 홍보 미흡으로 힘들게 준비한 행사에 오점이 생길까봐 염려하는 그들의 마음이 전화한통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 행사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활동에 지역문화 시설과 주민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향후 독자적인 문화활동의 가능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혹은 좋은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폔션들의 영향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가평을 찾지만, 실제로 가평은 문화소외지역이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만 봐도 이것은 가평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닌 외부인을 위한 행사이다. 가평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페스티벌은 가평에서 상주하고 있는 단체가 기획하는 것도 아니고, 가평주민이 참여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페스티벌 기간 중 반짝 들어온 외부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새롭게 써내려가는 가평주민의 삶의 이야기

 가평이 문화소외지역이라고 해서 가평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 스스로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타 지역 사람들보다 크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단체가 생활음악협회 가평지부이다. 기본적으로는 가평문화원의 제도적 도움으로 악기를 구입하고, 연습할 공간을 제공받고 있다. 이홍귀 가평문화원 사무국장 역시 생활음악협회 중심에 문화원이 있다는 것에 매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간혹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끝없이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도 비전도 발전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까지 지원한 게 아까워 다시 지원을 반복하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그런데 이 생활음악협회는 다행히도 문화원의 제도적 지원 아래 그들 스스로 발전하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더니 이제는 17개의 동아리로 확대되었다. 어리게는 고등학생부터 70대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만큼이나 장르도 다양하다. 색소폰, 난타, 기타, 밴드 등 장르별․세대별로 오밀조밀 모여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의 공연에 협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 팀의 장점 중 하나이며,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보니 어느 행사에서도 불러만 주면 OK이다. 거기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동네 친구이자 선․후배들이니 한 마음 한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다보면, 죽은 사람도 살려낼 모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그들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낼 힘이 부족하다. 그저 음악이 좋아 모인 단체일 뿐 전문적으로 기획을 배우거나 가르쳐준 사람이 없다. 그래서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지도 않다. 17개의 동아리가 있다 보니 무대에 설 기회만 생기면, 서로 무대에 오르겠다고 보이지 않는 눈치작전을 펼치기 일쑤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저 그들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공간, 그들의 음악을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그들은 힘닿는 데까지 최고의 무대를 선사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평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활음악협회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면, 이번에는 ‘글두레 문학회’의 이야기이다. 행사 당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하얀 고무신’이라는 노래가 재즈 선율에 멋진 여자 보컬의 목소리로 연주되었다. 서희네 분식집, 하나로 마트, 삼거리 건널목 등 가평주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길 이름, 가계 이름이 귀에 들려온다. ‘글두레 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영숙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단다. 18년의 시간동안 가평 지역을 ‘시’라는 문학적 언어로 만들어 왔다고 하니, 그들의 글 속에서 가평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삶의 이야기에 음악을 붙이니 그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자, 또 다른 시작이 되어 새로운 추억을 그리게 되었다. 아마 누군가는 이 날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갖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가평, 구 역사를 다시 만나다.

 2010년 새 가평역사가 선을 보이면서 그 이후 단 한 번도 구 역사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역사 내 화장실도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그런 공간이 이 사업을 위해 처음 오픈되었다. 

 구 역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을 누린 가평 주민, 비속에서 공연을 치루지 않아도 된 진행팀, 흔쾌히 문을 열어주신 코레일 관계자들 등 이 행사는 기적과 소통으로 가득 찼다. 
 전문가의 손길로 더 많은 혜택을 주고자 시작한 일이 오히려 진행자가 더 많은 걸 배우고 돌아가는 장이 되었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만들고 즐기고 함께 박수쳐주는 모습 속에서 서로가 큰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런 모양새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소통의 시간들을 거쳐 왔는지가 눈에 보인다. 

 최근 폐 가평역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갖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던 가장 중요한 것은 가평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속에서 만들어진 삶의 이야기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안에는 소통과 네트워크를 통한 대안적 문화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러한 점에서 폐 가평역이라는 대안적 문화공간과 가평문화원, 생활음악협회 가평지부, 글두레 문학회, 코레일 등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낸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편집자 주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란?
 문화예술단체가 동네와 마음에서 실행하고자 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여 지역사회 속에서 예술공감대를 확장하고자 진행되는 경기문화재단 공모지원사업, 동네와 마음을 기반으로 한, 지역 밀착형 예술 프로젝트, 혹은 동네와 마음의 문화기반시설 및 문화거점에서 실행되는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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