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와 함께 지역에서 향토문화를 담당해온 지방문화원(이하 문화원)이 있는 지역에서 지자체가 지역문화재단(이하 문화재단)을 설립하고자 하면 ‘문화재단과 문화원의 사업을 보면 유사한 것이 많은데 굳이 문화재단을 설립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또 문화재단과 문화원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서는‘견제와 갈등을 보이고 있는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업무가 중첩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문화원과 문화재단이 그리 살갑게 지내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컨대 지역문화예산 ‘파이 나눠먹기’나 ‘옥상옥(屋上屋)’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기도 하는데, 그러나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법적 지위와 목적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사업의 유사성으로 인한 불필요한 기구의 설립이라는 지적이 반드시 타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화원과 문화재단 간의 차이를 꼽자면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이라는 법적 지위와 출연금과 보조금이라는 다른 예산경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다고 하여 문화원과 문화재단은 결코 협력할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 기관의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행복한 마리아주(mariage)’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요?
독일의 산림기사 출신 페터 볼레벤은 그의 저서 『나무수업』에서 수령이 400-5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를 찾아보니,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들의 지원을 받았던’ 탓이었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이런 이웃 간의 교류는 뿌리 끝을 감싸며 자라 그 뿌리의 영양 교환을 돕는 균류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직접 서로의 뿌리가 뒤엉켜 하나의 뿌리처럼 결합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같은 나무 종의 개체들이 대부분 그런 시스템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는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 영양분을 나누고 이웃이 위험에 처할 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며, ‘이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나무들의 우정’을 사람들의 삶에 빗대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합니다. 돈으로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반면에 온정, 배려, 환대, 질투, 눈물, 사랑, 자비, 증오 등의 감정과 돈과 관계 없는 일상의 자잘한 행위가 어우러져 공동체 속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무들의 우정’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사람들의 공동체적인 협력 경험을 지속 가능한 즐거움으로 만드는 것’이 그리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원과 지역문화재단이 왜 손을 잡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저는 단순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기관이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종의 개체’이고, 서로 연결되어 영양분을 나누는 네트워크를 이루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며, 모두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지역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므로, 주저할 것 없이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해야 할 관계라고 말입니다. 철학자 미셀 드 몽테뉴는 “내가 고양이와 놀고 있으면서, 사실은 그 고양이가 나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저는 이 물음을 우리에게 ‘상호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문화원과 문화재단은 공통의 지향점이 있습니다. 발을 디디고 있는 자신의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시민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역에서 향유하고 있는 문화, 즉 ‘지역의 전통문화(문화유산), 지역민의 생활문화, 예술문화’ 등을 포괄하면서‘지리적 공간 및 행정권역의 관점에서 본 지역에 기반을 둔 문화’를 지역문화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활공간, 경제공간, 심미적 공간, 생태공간 등의 특성을 반영한 ‘지역에서의 삶의 총체’를 지역문화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지역문화는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하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과 더불어 ‘누구와’와 ‘무엇을’이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문화원과 문화재단은 지역특성이 반영된 존재 근거,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파트너십과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과정을 통한 협력은 ‘함께 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각 기관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되 ‘서로 손잡기’가 가능한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천문화재단, 부천문화원, 부천민예총 참여, ‘모두와 함께하는 문화청책포럼’
‘손잡기’는 무엇보다도 만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출연금을 받는 기관으로서의 문화재단은 지역문화 생태계에 있어서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타 지자체도 그러하겠지만 부천에는 문화원, 예총, 민예총과 다양한 생활문화동호회, 생활문화협동조합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비보이대회 등이 있으며 조직과 예산이 각각 독립되어 있습니다. 부천문화원은 문화원 고유사업에 더해 국가보조금이나 지방보조금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각 조직들은 각자의 시계추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그래서 기관장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서로의 결핍, 서로의 몰이해, 서로간의 이해관계, 혹은 오해 등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대화가 진척됨에 따라 공동 워크숍을 통한 타 기관의 이해, 공동홍보를 통한 시너지 효과, 행정적 어려움에 대한 공동대응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습니다. 기관마다 수행사업의 목적과 지향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부천문화재단은 각각의 축제가 갖는 특성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시민향유 및 예술(가)지원 사업을 적절하게 배치, 연접시키도록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원들은 중장기 발전계획을 위한 연구수행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지역의 전통문화 발굴과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연구와 교육,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인력 육성과 문화원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만큼 문화정책 워크숍,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 연구개발, 지역문화매개인력교육 및 활용 등의 사업은 문화재단과 협력하는 사업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법적·제도적 장치의 미비로 인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문화사업의 특성이나 영역에 따라 시설 공유를 통한 시민 접근성 향상, 전문 인력풀의 확보 및 활용 등과 함께 문화원의 재정 자립도 및 재원 확충을 위한 회원 확보, 회비 납부율 증대를 통한 자체 수입의 안정 등에 대한 문화원의 적극적 노력, 그리고 문화재단과 함께 지정기부 활성화 등을 통한 후원 통로 개발 등은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문화재단이 있는 지역에서는 문화재단이 관여, 사업수행을 하고 있는 문화적도시재생, 문화특화사업, 법정문화도시지정사업 등의 문화체육관광부 사업과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이 주민 생활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도시일수록 전문역량을 갖춘 향토사료 연구와 아카이브가 요구되며, 오히려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문화재생 사업이 늘어나서 문화원의 참여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문화원형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발굴하여 문화사업의 경쟁력을 증진을 위한 문화원의 참여 요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관심과 참여 요구가 커지는 만큼 문화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 전환과 문화원 내에서의 공동체 의식의 형성은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의 영입과 더불어 문화원 직원들에게 전문교육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며, 보조금 사업을 수행할지라도 내부 기획력에 기반을 둔 사업실행 형태가 요구될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당대에서 요구되는 문화원의 역할과 기능이란 지역의 향토사와 향토문화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향토문화의 ‘기록자로서의 역할’ 수행, 연구와 발굴을 통해 드러난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수행하는 ‘전승자로서의 역할’, 문화원이 운영하는 공간 제공 및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 등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역할의 수행을 위해서는 문화재단의 정책수립 과정부터 참여, 현장 밀착형 사업을 수행하면서 주민들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손을 잡는 것’, 이는 만남에서 출발, 상호이해를 위한 공동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가동하고 협업에 의해 성과를 공유하는 것, 다시 말해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우정’이 생겨야 ‘도움을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