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신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2017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만난 어느 작가의 작업이 퍽 인상적이다. 평범한 가죽신발 작품을 파는 작가가 있었다. 가격은 변동가격(flexible price)으로 모두 세 단계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구매자의 생활수준에 따라 가격을 정한 것이다. 생활수준을 알 수 없는 경우 구매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격을 정했다. 그래서 같은 신발(작품)을 저마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을 하는 다른 생활수준의 사람들이 다른 가격으로 구매한다.
이 작업은 자본주의 시대의 비합리적 가격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상품은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수준에 따라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빠진 채 ‘상품’으로서만 가격이 매겨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또 하나 의미를 두자면 이 작품은 구입한 ‘사람’들에 의해 마침내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신발을 건네받은 순간부터 다양한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작품을 신고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옮겨지는 순간부터 그들이 옮기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이 작품에 새로운 기록이 될 것이다. 때로는 신발장에 가만히 놓여 있겠지만, 그 역시 그 사람의 삶의 기록 중 하나이며, 그 순간을 작품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신발이 닳아 신발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신발과 함께 했던 이야기를 써서 나에게 보내면 새로운 신발로 다시 교환된다.”
작가 ‘irena haiduk’의 ‘yugoexport’ 프로젝트에서 판매하는 신발 [사진출처: http://thewhynot.de]
최근 5년가량 경기도 지방문화원의 사업을 살펴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향토문화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문화사업이다. 2∼3년 간 진행된 문화원 내 토론회 및 각종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들여다보면, 향토문화 사업의 경우 재원 부족과 시민의 외면으로 잊혀져가고 있음을 하나같이 토로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생활문화사업은 광역재단 및 기초재단과 생활문화센터의 등장으로 문화원의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러나 과연 기초재단 및 광역재단과 생활문화센터의 등장이 문화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가? 그리고 향토문화유적과 문화원의 자료들은 왜 시민이 외면하는가?
향토문화는 그동안 수집, 보존, 연구에 초점이 맞춰진 고여 있는 물과 같았다. ‘문화원이 지역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거 문화원이 지역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문화원이 지역의 어른으로, 지역문화의 주인공으로, 즉 문화원이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원이 지역문화의 매개자로, 혹은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올바른 파급과 성장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진정한 지역의 어른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지역의 유관기관, 지역 주민들과의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 ‘2017 지역문화 커뮤니티 활동가양성사업 {품앗이안 프로젝트}’에서 의정부문화원 활동가가 시민들에게 경전철역명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경기도 문화원들은 현재 가장 큰 문제로 문화원의 인력 부족을 실감하고 있다. 그 해결 방안으로 지역 유관기관과의 네트워크 형성과 함께 지역의 시민활동가 양성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최근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 문화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발굴, 조사, 정리, 보존, 보급하는 일이 문화원이 해야 하는 당위적 차원의 일이라면, 이제는 자유롭게 쓰이고 활용될 수 있도록 내어놓는 것 역시 문화원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람’, 즉 지역 사람들을 활동가로 양성하는 일이어야 한다. 과거의 것이 향토문화, 향토 사료로서 가치를 가진다면, 현재의 생활문화는 내일의 지역(향토) 사료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의미화하고 맥락화 하는 일이 필요하다. 시민과 기획자들이 어울려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지역의 자료로 만들어내며, 활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지금의 지역문화를 읽어내고,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며, 기록·보존하여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문화원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문화비전2030}에서는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원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과 자료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방법으로 창의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업의 확장이 가능하다. 이제는 문화원 내부에서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사업이어야 한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삶에 기반 한 생활문화를 자유로운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과정들이 문화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지역(로컬)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문화로 성장하고 기록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문화원이 할 일은 시민활동가를 양성하고, 문화원의 자료와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우리 지역을 어떻게 각자의 삶에 비추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판’을 벌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것이 지금의 지역문화, 향토문화를 내일로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자유롭게…….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인간이 주어진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충실한 ‘타율적 신민(臣民)’에 머물렀다면, 정보사회의 인간은 자신의 꿈을 앞으로 던져 실현하는 ‘자율적 주체인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가 ‘동일성’의 경쟁으로 양적 기준을 만족시켰다면, 후자는 ‘차이’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는 과거의 전사(戰士)형 인간에서 예술가형 인간들로 다시 태어날 것을 요구한다. 문화원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자료들을 예술가의 작품처럼 모셔두고 의미 있음을 소리쳐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문화원은 박물관과 다를 바 없다. 이 자료들을 지역 주민들 스스로 사용하고, 재해석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읽어내려는 시도가 있을 때, 문화원이 지역문화와 시민을 매개하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자율성이 주어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마치 신발을 만든 예술가가 이 신발이 어떻게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마다 자기 방식대로 지역문화와 자료를 읽어내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 행위만이 예술이 아닌 것처럼 시민이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고 해석하는가, 그것을 나의 삶에서 어떻게 의미 지을 수 있는가가 생활문화이며 지역문화일 것이다. 위기(危機)라는 말에는 ‘기회’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문화원이 겪는 지금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지역에서 예술가형 인간으로 태어날 시민문화활동가들을 찾아 문화원이 지역문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지역의 이야기들이 다시 문화원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