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영직, 차재근, 최영주
최영주 문화원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 중 하나가 전통문화와 향토문화입니다.
지역의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문화원이 지역문화의 중심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지역문화 네트워크와 거버넌스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문화원과 문화원연합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위원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차재근 우선 각 연합회는 협회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도 협회 중심으로 가면서 결국 규격화되고, 문화부 재원을 받아 전국에 공모사업 형태로 내려보내다 보니 각 문화원 사업이 유사해져 버렸습니다.
치명적인 단점이 관성에 갇혀버렸다는 것이죠. 차별성이 없으니 개별 문화원 입장에서는 사업이 재미없어진 겁니다. 협회가 연대의 역할은 하되, 개별 문화원의 역할이나 미션을 자유롭게 열어놓고 지방문화원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합니다.
꼭 재원의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느슨한 형태의’ 연대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통합 행사를 한다거나, 역량강화를 한다거나, 문화원의 방향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연합회의 역할일 수 있는데, 마치 정부의 사업 대행사처럼 되어버리면 중앙정부에도 이롭지 않고, 개별 문화원에도 이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합회가 중앙이란 권력 포지션을 가지면서 재원을 배분하는 형태는 지역분권 시대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죠. 이제는 지역분권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문화원연합회의 시스템 역시 지역의 개별문화원이 살아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역문화원의 강점은 향토사에 대한 기록과 아카이빙 자료인데, 이것은 어느 기관에서도 가질 수 없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강점이 지금까지는 아카이브와 기록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인문 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는 모든 보고가 사실은 향토학에 있습니다. 이것을 인문 활동의 도구로써 제공해주고, 향토문화 자산으로 연결시킨다면 지역문화에 대한 단서가 조금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늘 문화원을 보면서 답답했던 것이 활용 부분입니다. 문화유산도 박물관에 있거나 박제화되면 아무 쓸모없듯이 현재진행형 유산으로 활용이 필요하지요.
문화원 역시 수많은 지역문화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영주 박제된 자료들이 현재의 향토문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화원의 향토연구 자료들을 인문 활동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결합시킬 수 있을까요?
차재근 인문학을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귀결시키는데 문사철은 인문학의 일부일 뿐이고, 인문(人文/人紋)은 결국 문화(文化)와 일치되는 개념입니다.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다움,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다움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양은 기본적인 사유의 대상이 ‘나와 신(神, God)’이잖아요.
동양적 관점에서는 ‘사람 인(人)’자에 ‘사이 간(間)’자를 쓰기 때문에 공동체에서의 관계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죠.
결국 인문이라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단순히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인문적 관점을 가지고, 실존적인 행동들이 수반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의 몇 가지 요소 중에 나, 우리, 지역공동체, 지역사회, 국가, 인류 등이 있는데 이것과 문화원이 가진 지역의 모든 서사, 인물, 장소, 공간, 역사 등을 인문적 관점으로 끌어오자는 것이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원이 가진 기록적인 자산들을 인문 활동을 통해 지역에 실존시키는 것, 이런 것들을 문화원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영주 그렇게 전환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물론 있는데, 외부에서 보실 때 문화원이 제 역할을 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차재근 대체로 문화원장의 경우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시면서 역량이 있는 분과, 재원을 가지신 분 두 부류인 것 같은데, 지자체의 관심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인사권에 개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문화원이 정말 지역 주민 가까이에 있는 문화시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자체에서도 역량 있는 사람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부산의 경우에는 지난 7∼8년 전부터 진보적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문화원 사무국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이 친구들이 성과를 보여주니까 계속해서 문화원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고영직 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문화비전2030}의 경우 지역을 상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평(水平)적으로 보자는 것이 중요한 골자라고 보여집니다.
왜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이번 정책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지역문화 관련 정책의 변화라든가 지역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차재근 새 정부의 문화비전 발표에 실망한 사람도 사실 많습니다. 그 이유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역문화가 문화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강조했는데 그만큼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일 것입니다.
물론 의미 있는 부분은 시행령으로 되어 있던 지역문화협력위원회를 법으로 올려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는 것, 지역마다 지역문화위원회를 구성해서 지역의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 것,
지역문화협력위원회도 문체부 산하의 기관장과 각 협회장, 민간위원 4명해서 12명까지밖에 안됐는데 50명 정도로 확대·구성하여 각 지역에서 2명씩 지역문화위원으로 임명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습니다.
17개 시·도면 34명 정도로 지역의 파이가 커지는 것이죠. 물론 지역의 추진체를 만들어놓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예술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만드는 것을 전제한 것이거든요.
사실 예술을 뺄 경우 전반적인 문화정책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같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최영주 새정부 문화정책 추진단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상당히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까요?
차재근 전반적인 추진체계는 지방분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아직 분권안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고, 문화부의 위상이나 역할과의 충돌도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지역문화를 전제로 한 독립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문화부의 위상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데…….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죠.
저는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세 가지 개념 혹은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일종의 전통적 관점으로 지역을 보는 ‘고전적인 지역주의’입니다. 중앙과 변방, 이분법적으로 보고, 지방은 중앙에 속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죠.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결국에는 중앙권력에 속해 있는 것이 바로 고전적 지역주의죠. 그 다음 단계가 ‘변증법적 지역주의’입니다. 비로소 지방을 대신해 지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죠.
변방이라는 용어보다는 하나의 문화다양성을 가진 지역으로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행정적 추진체계 자체가 중앙정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하는 단계인 거죠.
저는 90년대 후반부터 문학 쪽에서 제기되었던 ‘비판적 지역주의’에 주목합니다. 지역을 문화다양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정책적으로 이제는 실현 가능하다고 봅니다.
중앙을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글로벌로 타 지역과 교류할 수 있는 것이죠. ‘로컬(local) to 로컬(local)’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지역정책도 이 비판적 지역주의에 근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영직 물론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한데 지역에서의 준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로컬(local) to 로컬(local)’ 원칙이 발현되기에는 지역에서 아직 그럴 만한 여건이 안된 것 같기도 하고요. 문화원도 당장 인력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차재근 개별 문화원 또는 문화원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해 왔던 성과 중에 틀림없이 글로컬 개념의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인문적 가치를 투여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글로컬 :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에서 유래하는 조어(造語). 지역이 국가를 대신하여 독자적으로 세계화가 가능한 움직임.)
우리는 보통 다른 지역의 사례연구를 많이 하는데 연구가 사례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사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죠. 지역이 가진 주목할 만한 사례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함양의 서책박물관에 대장경 복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조그마한 사립박물관인데 이 역할이 대단합니다. 유럽에서도 중앙정부나 지자체를 통해 연락하는 것이 아니고, 박물관으로 바로 연락을 합니다. 이런 사례와 성과에 대해 가치부여를 해주고, 확산시켜주는 것,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최영주 현재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런 문화정책을 통해 향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상되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차재근 현재로서는 비전 자체만 놓고 보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 말고는 아직 구체적인 플랜들이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재배치한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본다면 중앙정부가 구체적인 플랜을 담기보단 지역에서 만들어갈 것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사업의 ‘재구조화’는 필요합니다.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지역문화, 인문 영역들이 거의 겹치고 또 차별성이 없죠.
이젠 통합문화이용권, 지역순회문화향유 지원사업까지도 한 테이블에 놓고, 혼돈되는 것은 정리하고 중복되는 것은 재구조화해야 지역에서도 그에 맞는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주 지역협의체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 같은데 중앙정부에서는 지역이 협의체를 통해 주도적으로 원칙을 세워나가고 운영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들이 있나요?
차재근 지역문화협력위원회가 지역별로 구성된다면 중앙에서 예술위원회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예술의 파이는 따로 떨어져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장단점은 분명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가야 합니다. 문화의 영역에서 예술이 함께 다루어져야 합니다. 정부에서 지역문화협력위원회를 지역별로 만드는 것을 법제화하도록 TF팀을 만들고, 지역문화진흥법을 개정한다고 하니 그 점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역 차원에서 중앙정부에 요구하면서 같이 가 줘야하는 것이 ‘예산’ 부분입니다. 지역 참여의 핵심은 예산이라고 보여지는데, 지역이 정책사업을 설계하고, 지역이 설계한 정책사업에 대한 예산을 중앙에서 지원하는 구조로 가야죠.
시민참여 예산제 방식대로 지역이 설계하면 중앙정부가 매칭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영주 지역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어찌되었든 지역 내의 욕망이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수준에서 가능할까요?
차재근 문화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분권이 되면서 가장 큰 문화판의 우려는 지자체장의 자질에 따라서 한쪽에 치우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우려하는데 그것은 지역 내부에서 거르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당분간 문화부에서 내려주되 꼬리표를 다는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다만 지금처럼 사업 설계까지 다 해주면 안되고, 예산을 통으로 내려주되 해당 예산에 대한 설계권을 지역에 주는 것이죠.
고영직 이번 {문화비전2030}에서 강조하는 것이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 세 가지인데 위원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자율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드러났지만 다양성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 같고, 또 정부에서도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인력이 큰 문제잖아요. 문화원에서도 지역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데 어떻게 인력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까요?
차재근 쉽지 않은 일인데……. 사실 지역문화인력을 길러내는 것은 중앙이나 기관에서 하는 것보다 민간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실효적이고 퀄리티가 있어요.
문화원이 장기적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재로는 역량 있는 민간그룹에 역할과 기능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공이 그 역할을 담당하면 향후 능동적 의지나 현업화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지요.
전국의 사례를 보면 민간의 성과가 평가할 만합니다.
최영주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도 작년부터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을 경기문화재단과 협력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문화관광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이 사업이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청년 일자리사업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시민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계획도 혹시 있으신가요?
차재근 주요 정책사업의 재구조화는 사실 성찰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은 사실 초고속 성장의 패턴으로 14년을 맞이했죠.
우선은 공교육예술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하고, 이후에 시민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자리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올해 초 아르떼에서 문화예술교육 비전을 수립할 때 ‘삶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유아에서 어르신까지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정책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할 때도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상을 만들 것인가가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재근 사실 문화예술교육 초기 시범사업부터 정책을 설계 했을 때는 가치를 중심으로 설계 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다 사업 중심, 정량적 성과 중심, 인력 사업으로 가다보니 변질이 된 것이겠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단이 필요합니다.
저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용어보다 ‘문화교육’이라는 용어가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화교육으로 해야 인문적 가치의 관점에 더 주목할 수 있다고 봐요. 예술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면서 개념이 혼란스러워졌다고 볼 수 있죠.
문화•예술•교육이 되어버리니까. 어차피 예술은 문화 안에 속한 개념이니 문화교육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영직 예술을 통한 교육이냐, 예술을 위한 교육인가 고민이 될 때가 있고, 현장에선 더 혼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술(교육)이라는 범주가 문화에 비하면 하위개념이기도 하고, 예술을 통한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죠.
생활예술도 마찬가지에요. 생활예술을 강조하는 흐름도 범주를 너무 작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문화교육이 맞다고 봅니다.
고영직 아까 말씀 중에 사례 공유가 아니라 고민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려면 문화원뿐만 아니라 각자의 사례를 만들어야 하겠지요.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례라는 말이 너무 오·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은 사례를 소비하고, 유통시키고, 폐기하는 데 급급한 것 같아요.
차재근 그런 면에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집단화된 공동체예술이든 각자의 단계 혹은 과정을 주목해주고, 결과물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A동아리와 B동아리가 특정 시점에 보면 구분이 잘 안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을 넉넉히 두고 보면 다른 점이 보이거든요.
가령 합창 동아리라고 생각했을 때 처음엔 본인들이 좋아서 시작합니다. 조금 지나면 퀄리티를 찾게 되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다양성, 차별성을 찾습니다.
각 합창단별로 하나의 특색을 갖기 시작해요. 어느 동아리는 통일, 민족 이런 키워드를 갖기도 하고, 어떤 동아리는 대중가요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자기 차별화를 하기 시작하고, 그 이후에는 이웃과 나누는 활동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튈지 몰라요. 작년에 제가 핀란드에서 헬싱키의 한 합창단을 만났어요. 이 팀은 세계합창올림픽에서도 그랑프리를 차지한 팀인데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었지만 실력들도 있고,
지역에서 필요한 공연을 하거나 직접 음반 제작까지도 합니다. 이 팀이 지금 꿈꾸는 것은 헬싱키 원도심에 있는 빈집들을 찾아내 시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서 예술학교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의 아마추어 동아리가 과정을 더해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성을 스스로 발견해 나간 사례거든요. 꼭 누가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는 거죠.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최영주 일정 부분 기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차재근 전체 과정을 관찰하고 의미 부여를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런 곳이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연구하면 그 시점 아니면 누가 만든 아카이브 자료만 가지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을 말씀하셨는데 중앙정부의 그런 기조가 있다면 대단히 세밀하게 설계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5개년 계획이 200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초등학교 합창단 2000개 만들기’라는 계획이 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이죠.
왜냐? 사람의 음감(音感)은 10대 이전에 형성되기 때문이고, 합창이라는 공동체 예술에 의해서 나 혼자 잘하면 안된다는 것, 조화와 양보, 소통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교감……, 이런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것이 예술을 통한 교육인데 예술의 보이지 않는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생애주기별 교육을 한다고 하면 인류학자라던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영주 고민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지역 단위의 문화에 대한 고민들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지역문화협의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할까요?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서 재단이 주도적으로 지역문화협의체 구조를 만들어가는 모양새로 보입니다.
재단도 상당히 관료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광역재단이나 기초재단에서 그 구조를 끌고 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차재근 저는 지역문화추진체계에서 광역재단이든 기초재단이든 추진체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일부에서는 광역재단을 지역문화추진체계의 핵심 파트너로 삼아 기초재단 등에 내려주는 방식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려가 됩니다. 광역재단, 기초재단, 문화원, 문화의집, 생활문화센터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것을 동등하게 인식해야 하지 하위개념으로 봐선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에 아마 문화부에서도 재단 중심으로만 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영직 그렇죠.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권력구조가 생기는 거니까요. 이번 대담에서 가장 다가온 말씀은 ‘연구가 사례를 만들지 않는다’인 것 같습니다.
최영주 위원장님 말씀을 들으니 새정부 문화정책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든가 지역에서 준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정리가 좀 된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