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에 살다』 출판기념회(2017. 11)
공단도시, 다문화 도시로 널리 알려진 안산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이제 조금 지역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잘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지역을 이해하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현재 안산의 인구가 약 73만 명인데 이중에서 토박이는 2만 명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안산은 ‘이주민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만 본다면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최근 부쩍 늘어 가히 ‘문화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보니 자기 출신 지역의 문화를 이곳에 이식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단도시, 다문화 도시로 널리 알려진 안산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이제 조금 지역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잘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지역을 이해하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현재 안산의 인구가 약 73만 명인데 이중에서 토박이는 2만 명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안산은 ‘이주민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만 본다면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최근 부쩍 늘어 가히 ‘문화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보니 자기 출신 지역의 문화를 이곳에 이식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 공부는 중앙사, 국가사로 불리는 중앙의 역사만을 공부해 왔다. 왕과 귀족의 역사, 즉 지배자의 역사를 주로 공부해왔다. 그래서 역사는 나와 동떨어진 것이고, 내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지난 역사의 흔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수많은 전쟁과 사건들 속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민중들의 역사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저 민란이나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의 숫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것은 민(民)의 힘이 아닌가, 개인은 작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큰 힘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역사 속의 개인은 작은 벽돌 하나밖에 안 되는 존재이지만, 그 작은 벽돌들이 모여 큰 건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역사교육은 그 민중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반쪽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
비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태어나거나, 자라지 않았을지라도 지역이 가진 역사적 전통과 문화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나 아이들일수록 더 큰 영향을 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는 곧 현재 나의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늘 중앙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것을 생각하며 현재의 삶을 과정으로 생각한다. 즉 현재는 ‘스쳐가는’ 삶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나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탓할 수는 없지만 과연 그 삶에 종착지가 있을까? 현재의 삶을 종착지라고 생각할 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중요해진다. 지역을 알고, 공부함으로써 지역을 바꿀 수 있고 그것은 곧 내 삶을 바꾸는 일이 된다.
최근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용어 중에 향토, 지방, 지역 등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많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여러 주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의견을 중심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사용해온 ‘향토’에 대한 생각과 ‘지역’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향토’라는 개념이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언제부터 사용되어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정확하게 그 용어가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향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윤5월 28일 계미 5번째 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각종 역사 중지, 보충군의 입역 개선, 제언 수축 등에 관한 우사간 최순의 상소
一,民不土著則無以保其生矣。 今補充軍本居外方者十之七八,嘗在其鄕,完聚妻子,力農以生,尙或負債,僅不失業。 況離鄕土、棄妻子,齎糧番上,旅寓於京,而從役不暇哉?一至糧盡,則不堪其苦,逃役歸家,隨卽移文徵闕,以立役爲限,家貧不能自備,稱貸而納,因此失産者多矣。
1.백성들이 토착(土着)하지 못하면 그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데, 오늘날의 보충군(補充軍)은 본래 외방(外方)에서 살던 자가 10에 7∼8이나 됩니다. 일찍이 그 고향에 있을 때에는 처자(妻子)를 완취(完聚)하여 힘껏 농사하며 살았어도 혹 부채(負債)를
지게 되고 겨우 생업(生業)을 잃지 않았는데, 하물며 향토(鄕土)를 떠나 처자(妻子)를 버리고 양식을 싸 가지고 번상(番上)하러 서울에 여우(旅寓)하며 객지에서 역사에 종사함에 겨를이 없는 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4월 30일 정묘 2번째 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공법·입거·축성·의염의 법 등에 관한 사간원 우사간 변효경 등의 상소문
一,東西兩界入居之法,實邊良策,然本人等旣離鄕土,又於道路,扶老携幼,艱苦莫甚,以興怨咨。 時未入居者,意謂來秋入居,不務農桑,徒增鬱抑,以傷和氣,姑停是擧,以安民心。
1.동서(東西) 양계(兩界)에 입거(入居)시키는 법이 변방을 실(實)하게 하는 좋은 법이기는 하나, 본인(本人)들이 이미 향토(鄕土)를 떠나고, 또 도로(道路)에서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어, 고생이 막심하여 원망과 탄식을 일으키며,
아직 입거(入居)하지 않은 자도 오는 가을이면 입거할 것이라 생각하여, 농상(農桑)을 힘쓰지 않고 한갓 억울(抑鬱)함만 더하여 화기(和氣)를 상하니, 아직 이 시행을 정지하여 민심을 편안케 하소서.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서 ‘향토’에 대한 언급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실록에 언급된 ‘향토’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실록의 내용으로 본다면 ‘향토를 떠난다’는 것은 ‘고향을 떠난다’는 의미이다. 즉, ‘향토’의 의미는 ‘고향’이다.
‘향토사 연구’라는 뜻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을 연구하는 토박이 연구자들에게는 부합하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해당 지역 출신자가 아닌 연구자(고향이 아닌)가 연구를 한다면 ‘향토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방사 연구’인가? 여기서 근본적인 의미를 찾아본다면, 지방사의 ‘지방’이라는 의미가 ‘중앙’에 대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상하의 의미로 이해된다. 오랜 세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우리 역사에서 지방은 늘 차별의 대상이었고, 수취의 대상이었고, 지배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중앙과 지방이 균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방사’라는 용어는 거북하다. 또한 중앙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서울’도 ‘서울 지방’이 아닌가. 예를 들면 ‘서울지방법원’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방’이라는 의미는 사용하기 어렵다.
최근 연구자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지역사’라는 용어는 그나마 객관적이고, 각 지역을 균등하게 바라보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물론 지역사가 모든 용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지역에 대한 연구도 크게 성장하였다. 그 중심에는 각 지역의 문화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도 지역에 대한 연구와 지역문화 창달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지역에 대한 연구는 문화원이 최고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지역별로 연구단체가 많이 생겨났고,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등 관련된 여러 기관에서도 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각 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다른 기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차별성이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문화원 특성상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특히 예산과 인력 문제는 늘 발목을 잡는다. 물론 모든 지역이 다 그런 상황이라는 것은 아니다. 몇몇 앞서가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많은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인물을 찾아 선양하고, 지역을 특성화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많은 지역 축제가 생겨났고, ‘OO기념관’ 등이 세워지고, 지역 브랜드가 등장하였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고, 지역의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늘 새로운 아이템을 찾으려고 노력을 한다. 이러한 일에 지역 문화원과 향토사연구소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것은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연구와 축적된 자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쏟아지는 지역 관련 자료들이 있다. 지역연구 논문, 서적, 신문, 사건, 행사 등 많은 자료들이 그냥 버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체계적으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하고 있지 않는 일이다. 지금 당장 활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료를 분류하여 정리해 두면 훗날 다른 연구자가 훌륭하게 사용하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수고가 미래에는 열매로 나타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