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문화원 ‘역사문화대학’
‘틀리다-다르다’
‘불평등’
‘중용’
흰색 보드에 어지럽게 판서되어 있는 글자 중에 한쪽에 차례로 내려오면서 적혀있는 글이 눈에 띄었다. 11월 중순, 양주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역사문화대학 취재를 위해 강의가 있는 날 방문하였다. 보드 한 켠에는 법고창신-온고지신과 연계하여 idea-ideologue에 관련된 열강을 한 흔적이 보였다. 이를 지켜보는 어르신들은 강사선생님 보다 훨씬 연세가 있어 보였다. 3학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하반기 테마 강좌가 진행 중(강사 홍정덕) 이었다.
양주문화원(원장 박성복)이 역사문화대학을 시작한 것은 2001년 3월부터이다. 1기 45명의 수강생으로 시작, 2011년 11기생 43명의 수강생이 입학하였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210명이 수료하였다. 수료생 중 15명이 양주 홍보대사격인 문화관광해설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사문화대학은 3년 과정동안 학습과 답사를 격주로 진행하며, 1학년은 기초교양과 양주중심의 역사를 배워가는 학습과정으로 구성되며, 2학년은 심화과정, 3학년은 실습과정으로 구성되어있다. 3년의 학사과정 졸업이후 수강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연구반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국장 박재홍).
기초과정에서 조상의 슬기와 정신을 배운다. 심화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강의뿐 아니라 진보-보수, 불교-기독교, 命 등을 주제로 한 강의가 진행된다. 그것도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한국사회를 지나온 어르신들과 함께... 어디서든 정치와 종교얘기는 피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원활한 관계맺기 공식(?)으로 통했었다. 3년의 내공이 예민하지만 제대로 알아야하는 이런 주제로 강의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살아냈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라면 ‘나처럼 살기’를 바라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처럼 살지 말라고 공부시킨다는 말을 오히려 많이 하셨을 것이다. ‘잘살기’ 위해 고생을 거쳐야할 관문처럼 살았고, 배부른 미래를 위해 빈곤한 오늘을 기꺼이 살아냈던 어르신들은 지나온 당신들의 삶이 보잘것없는 일상의 축적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과거의 손때가 묻은 물건은 버려야할 고물이고, 일상의 경험들은 하찮은 과거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거창한 사건과 사상이 아니라 생활의 습속과 경험으로 시작되었고, 시대적 상황이 문화를 만들어갔으므로 좋고 나쁨이나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것은 책상머리 교육 이전에 내 삶에 대한 긍정적 수용으로, 그래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삶이라고 기억되었던 일상들도 현재를 만들어가는 주춧돌임을 알아가는 것, 나를 비롯해 옆 사람까지도 이 세상에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이 실로 어마어마한 일임을 몸소 전율하는 기회, 이것이 역사를 통해 알아가는 사유의 힘일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있어 역사문화대학이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매개로 서로 공감하고 교제한다는 것, 과거를 바탕으로 현실을 논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을 키울 수 있다는데 있다. 조상은 어디서부터일까. 나의 삶도 결국 후손들에 의해 계승되어야 할 조상들의 삶으로 명명되어질 것이 아닌가. 내 삶은 비루하고 조상들의 삶은 슬기로운 것인가. 나의 삶은, 나아가 내가 살았던 동시대 역사는 보잘 것 없는 일상들만 남아있는가? 이런 되물음의 시작이 2년의 역사 학습과정을 거쳐 3학년의 마무리 과정에서 성찰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마련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홍정덕 강사는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익히려는 어르신들이 이왕이면 생활사의 전문가가 될것을 요구한다. 10년 20년 후 잿물 내려 빨래할 줄 아는 어르신이 얼마나 계시겠는가? 우리지역의 종가집 제례가 제대로 전승될 것인가? 역사해설에서 머물지 말고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사료를 수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나의 삶을 포함한 역사문화대학은 관념의 역사에서 실제의 역사로, 과거에서 현실을 불러내는 활동을 엿보게 된다. 어르신들의 지나온 삶은 자연스럽게 긍정의 역사로 재구성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사는 역사라는 나무 가지 끝에 피어나는 무수한 나뭇잎과도 같다. 지나온 일상이 혹은 개인의 역사가 단지 개인사로 취급되어 묻힌다면, 그래서 개인의 삶에 대해 사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의 삶이 관여되지 않은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삶은 전체성이므로...
일상에서 얻어지는 사소한 통찰력!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 시작되는 지점임을 알게 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