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주 |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개념을 규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규정하는 것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목적과 방향설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개념 설정, 규정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한국문화원연합회, 광역시,도문화원연합회, 지방문화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문화란 무엇인가? 지역문화란 무엇인가. ‘생활’은 무엇을 말하는 개념인가. ‘문화’란 무엇을 말하는 개념인가. ‘지역’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또는 원론적인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원은 ‘생활’을 어떻게 개념규정하고 있고, ‘지역’을 어떻게 개념규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규정이 자의적,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객관적 추론에 의한 합리적, 논리적인 규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자.
- 문화원은 지역 주민의 문화생활을 지원하는가, 생활문화를 지원하는가.
- 지원하는 것인가, 지역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인가.
- ‘생활’이라는 개념은 문화원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 ‘생활’이라는 개념을 ‘활생’이라는 개념으로는 바꿀 수 없는가.
- ‘지역문화원’인가, ‘지방문화원’인가.
- ‘지역’은 무엇을 말하고, ‘지방’은 무엇을 말하는가.
- ‘향토문화’는 ‘지역문화’인가, ‘전통문화’인가.
- ‘전통’은 반드시 ‘역사적’이어야 하는가.
- ‘역사’는 반드시 ‘과거’이어야 하는가. ‘현재’는 역사가 아닌가.
- ‘전통’과 ‘역사’, ‘향토’와 ‘민속’은 어떻게 다른가.
-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 문화원은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문화원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혹시 답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합의하는 답은 아니지 않은가? 즉,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문화원에서 생각해야 할 수많은 개념들이 산재해 있는데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말하자면, 어느 하나 명쾌한 개념으로 정의한 것이 없다. 정의했다고 할지라도 그 정의는 개인적, 자의적, 주관적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개념에 대한 정의가 막연하다. 모호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문화원은 ‘지역문화의 중심’, ‘지역정체성의 중심’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가 다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일관된 내용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논리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 사례
2017년 11월 생활문화진흥원이 지역문화진흥원(원장 나기주)으로 명칭을 개칭했다.
언뜻 보기에는 ‘생활’을 ‘지역’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맥락을 읽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명칭을 바꾼 정책 관계자들의 의도를 얼마나 정교하게 파악하느냐가 향후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생활문화를 진흥하겠다는 것에서 지역문화를 진흥하는 기관으로써 자기 위상을 변경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난 2014년 1월 28일 신규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의 제2조(정의)부분에서 ‘지역문화’와 ‘생활문화’를 정의한 것에 따르면,
"지역문화"란 「지방자치법」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또는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12월 생활문화진흥원에서 지역문화진흥원으로 개편된 홈페이지에 올린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지역 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한 문화 분야 국정과제로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시대’를 선정하고 지역문화 및 생활문화 진흥을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생활문화진흥원은 설립 이후 ‘국민의 생활 속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사업추진을 통해 지역민의 자발적 문화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의 문화적 역량 증진 및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기능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생활문화가 지역문화 발전의 핵심적 요소임에도 종합으로 지역문화진흥을 포괄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지역분권과 자치, 협업이 강조되는 현 시대 흐름에 맞추어 지역문화가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협력 체계를 구축, 정비하고자 생활문화진흥원을 지역문화진흥원으로 개편하였습니다.
1) 지역분권과 자치, 협업이 강조되는 현 시대 흐름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시대가 바뀌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탱하던 철학이 수명을 다 했다고 나는 파악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국가 간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게 했던 논리였고, 자본 물신화의 완성 단계였다. 그것의 한국적 적용은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로 왜곡되어 드러났고, 가치와 정의보다는 실리와 이권이 중시되는 사회였고, ‘돈’이라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사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식민과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는데 동의한다면, 그동안은 한국사회와 사회적 의식구조는모든 것이 단위 중심이었다. 국가단위, 민족단위 등 말이다. 즉 그동안 개인은 없었고, 주목 받지 못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독립적인 개인이 아닌 민족의 틀 안에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는 하나의 부속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되었다. 어느 특별한 또는 위대한 인물이 푯대를 들고 앞장서는 시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2005년 문화바우처 사업이 시행되면서 등장한 중요한 의제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문화기획이었다.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이 갖는 의미는 제도권(국가 또는 문화기관 등)에서 국민을 위해 문화적 ‘혜택’을 주는 구조가 아닌 국민들의 문화적 수요와 욕구를 제도권이 ‘반영’을 하는 형태로의 전환을 말한다. 상급기관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역분권, 지역자치가 강조된다는 것은 그동안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지역으로 이관되기 위한 사회시스템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중앙의 주변이란 의미의 ‘지방’이 ‘지역’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고 중앙 집중형 개발이 아닌 ‘다시 지역으로’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방문화원은 지역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기관이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다. 이제는 ‘공평과 존중, 그리고 평등’의 원칙으로 각각의 기관, 단체가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각 기관과 단체가 공평한 권리와 평등한 관계로 서로 협업하는 시스템 구축. 그것이 현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방문화원이 더 이상 정신적인 상위기관이라는 ‘자부심’에 도취될 때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이미 서울특별시는 ‘거버넌스25’라는 이름의 협력시스템 구축을 시작했고, 민관협력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는 ‘단위 지향’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거시적 인식에서 벗어난 각 개인의 삶이 행복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미시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특성화’라는 이름으로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함의이다.
2) 지방문화원-연합회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생활문화에서 지역문화로 명칭을 변경했다는 것이 지방문화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지방문화원은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거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일련의 활동, 사업을 추진해 왔고, ‘지역문화’의 중심, 지역의 정체성, 지역의 역사, 지역의 문화예술의 중심기관임을 자부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지자체에 설립되어 있는 개별 지방문화원을 연결시키고, 힘을 모아내는 역할을 한국문화원연합회(이하 연합회)라는 구조가 담당하고 있다.
즉, 지방문화원-연합회라는 네트워크 조직을 통해 ‘지역문화’를 선도하고 이끌어 가고 있다는 구조인 것이다. 생활문화진흥원에서 지역문화진흥원으로 바뀐다는 것은, 향후 지방문화원-지역문화진흥원이라는 연결고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추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문화진흥원으로 개칭한다는 것은, 각 지역의 ‘생활문화센터’가 ‘지역문화센터’가 된다는 것을 뜻하고, ‘센터’는 ‘중심’이다. 그러므로 지역문화의 중심은 ‘지방문화원’이 아닌 ‘지역문화센터’가 담당하게 된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그 지점에서 ‘지방문화원’을 연결하고 있는 연합회는 굳이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론이 가능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연합회는 어떤 입장과 원칙을 가지고 향후 대응 할 것인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의 면모를 파악, 향후 어떤 사업들을 담당하게 될 것인가. 그 지점에서 한국문화원연합회를 포함한 지방문화원의 위치 규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협력 가능한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은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네트워크화 되어 있다는 것은 조직 구성원들이 있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대안,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은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합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앞서 언급한 미시적 차원의 접근으로 사고를 전환할 때 비로서 가능하다. 그것은 개별 지방문화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연합회에서 조직해 내고, 취합해 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떠한 일련의 움직임도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지방문화원이 가진 한계와 그 한계를 가진 조직을 연합, 네트워크 기구로써 연합회의 한계에서 노정되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자기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5월 생활문화진흥원이 설립되고, 한문연에서 담당하고 있는 ‘생활문화공동체’사업이 이관이 되었고, 현재 전국에 91개의 생활문화센터가 만들어져 있고 그 센터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3) 지방문화원 그리고 연합회 어떻게 할 것인가.
지방문화원이 향토,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 지역에서 요구되어지고 있는 것은 생활 문화적 측면이 훨씬 강한데도 불구하고 전통, 역사, 향토문화를 고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정체성, 역사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심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는 키워드에 따른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구도를 짜야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개인적 욕구가 있으면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만들어서 향유하고 즐긴다. 지금은 일부러 무엇인가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도 시민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낸다. 지방문화원의 일은 개인적인 문화 예술적 욕구를 그룹 차원에서, 지역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공익적 차원으로 연결, 커뮤니티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현실적으로 사업의 형태가 되었건 조직의 형태가 되었건 실현해 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방문화원진흥법’ 제8조에도 규정되어 있는 이른바 ‘목적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방문화원의 목적사업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에서 위탁하는 사업 때문에 본연의 일을 못하고 있다. 지방문화원의 대부분의 일은 법에 근거한 목적사업이 중심이 아니라 시에서 직접 집행하기 애매한 부분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업무로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탁사업은 안한다고 할 만큼 문화원에서 해야 할 일을 중심을 잡고 다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단순히 예산이 많으면 문화원이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즉, 중심은 없고 곁가지만 존재하는 꼴이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거나 원장이 바뀌거나 지역 정가의 압력에 의해 원장, 사무국장, 직원 등이 안정적으로 일할 분위기를 못 만들고 있다.
중심이 없으니 곁가지만 쳐 내는 모양새니까 말이다.
지방문화원 그리고 연합회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지역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