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31]은 2017 제4회 페스티벌31에서 진행한 지방문화원 담론 형성을 통한 심포지엄, <아젠다31>의 섹션별 진행과정을 녹취 및 윤색한 기사입니다.
최영주 (경기도연합회 사무처장, 이하 ‘최’) :
경기도에 있는 지방문화원들이 사업의 영역을 31개 키워드를 뽑아 봤습니다. 키워드 내에서 올해 4개정도 키워드를 가지고, 관계자들만 모아놓고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봤습니다.
오늘 전체적으로 각각의 이야기들을 녹취를 해서, 이후의 자료집을 발간을 하려고 자료들을 간단하게만 하고, 특별히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지방문화원이 ‘내년도엔 어떤 일들을 하자’하는 아젠다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번 네 번째 섹션에 ‘지방문화원의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2017년에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고 답답한 일일 수 있겠지만,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지금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좌장으로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관장님이시고, 경기도 문화 재단 내에서 문예진흥 작품을 하시면서, 재단 내에 피어라 커뮤니티와 관련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잇는 역할로 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분을 좌장으로 모셨습니다. 어린이 박물관 관장을 맡고 계시는 양원모 관장님입니다. 저는 토론이라기보다는, 관계자들이 서로 중심이 되어서 깊은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전념해주시고 마지막에 좋은 아젠다가 도출이 돼서, 내년도에 이 결과를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양원모 (경기도 어린이박물관 관장, 이하 ‘좌장’) :
안녕하십니까? 안성의 멋진 아트홀이 12월 7일에 오픈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문화원 분들이 뜻있는 자리를 갖게 돼서 기쁘고 초대해주셔서 반갑습니다. 저는 안성에서 1996년도부터 4년 동안 살았습니다.
안성에 보면 믿음의 마을이라고 이대건 신부님이 성당 안의 마을에 칩거하면서 4년간 살았는데, 그때가 제 시절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안성에서 품을 넓혀 주셔서, 시골집에서 이제 장인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외지인으로 그 마을에 녹아들어 가는데 3년 걸렸습니다. 그때 마을에서 제 처에게 꽃을 코스모스 심으라고 하고, 저는 효도관광으로 온천 따라가서 등도 밀어 드리고 하면서 삼년이 지나니까, 마을 분들께 받아 들여 졌습니다. 마을 분들께 받아들여진 그때부터 이 마을에서 활동해도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도산 저수지 중심으로 활동들을 많이 하신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기독교 농민회 같은 농민회가 있었습니다. 농민분들이 추곡수매 할 때 백만 원씩 떼서, 한 3억 정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젊은 날 의료 봉사하러 왔던 대학생들이 나중에 의사가 돼서 3억을 만들어, 농민들이 만든 3억과 합쳐 6억을 만들어서,의사 분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베이스가 원체 예술 쪽 베이스인데 어떻게 오셨냐고 그러니까, 안성에서 처음으로 ‘안성무료생활협동조합’과 ‘안성 농민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드시면 되지 저를 왜 찾아오셨냐 했더니, ‘안성무료생활협동조합과 농민병원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가입을 하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예술제를 열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경기도 일대에 있는 제 네트워크에 있는 작가 분들을 이십 여분께 연락해서 ‘활생 미술전’이라고 전시회를 열고, 당시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성시이지만, 그 당시에는 안성군이었는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군단위에는 안내려온다고 하시는 걸,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공연장을 빌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공연을 하면서, 농민병원이 출발한다는 것을 알리는 공연을 했습니다. 그 문화제의 이름을 ‘활생예술제’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농민 협동조합이 안성은 물론이고, 제가 지금 도민 미술관 일을 하는 안산에도 있고, 수원에도 있어서 굉장히 잘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례들이 어떻게 보면, 공동체라고 이야기 하는 상호 의존적인 집단, 특히 서로와 서로가 챙길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자기 보존을 위한, 자기 개발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하나의 사례들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서 문예진흥 사업도 확대되고, 문화원도 함께 하자는 느낌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 오니 굉장히 반갑고, 사랑방 모임같이 오붓한 분위기라서, 제가 나중에 패널로 발제하신 분은 따로 인사를 드리겠지만, 이제 서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병권 (시흥문화원 사무국장, 이하 ‘이’) :
안녕하십니까? 시흥문화원에서 온 이병권입니다. 오늘 패널로 와서 이야기 할 것은 많이 없고, 인사는 이정도 하겠습니다.
서영진 (의정부문화원 사례발표자, 이하 ‘서’) :
안녕하십니까? 저는 의정부 문화원에서 온 서영진입니다. 사실 저희 원장님께서 어려운 자리가 아니다, 그냥 가도 된다 해서 왔는데, 이렇게 어려운 자리인지는 몰랐습니다. 발표를 잘 할 수 있을지, 좀 실수하더라도 유치하더라도, 좀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좌장 :
두 분이 사례발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경화 (의정부문화원 사례발표자, 이하 ‘고’) :
의정부 문화원에서 고경화입니다. 저도 발표자로 왔습니다. 저희 의정부를 소개해 드리고 방문을 하실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추옥 (의정부문화원 참여자, 이하 ‘참여자’) :
안녕하십니까? 의정부 문화원에서 참가자로 참석한 김추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가겠습니다.
박정근 (의정부문화원 사무국장, 이하 ‘박’) :
안녕하십니까? 저도 의정부 문화원에서 왔습니다. 의정부 문화원 사무국장인데, 사실은 전 타임에 패널로 왔었는데, 이곳에 저희 가족분들이 오셔서 그냥 참석했습니다.
손채수 (작가, 이하 ‘참여자’) :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원에서 행동레이전시에 작가로 있는 손채수라고 합니다. 오늘 열심히 공부하고 잘 듣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희 (인천남부학산문화원 사무국장, 이하 ‘희’) :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천 남부학산문화원 사무국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좌장 :
학산에서 마당극 놀래라고 생활예술동아리를 만들어 왕성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중추적인 일을 맡으신 분입니다.
조두호 (관인공동체&문화재생연구소 예술감독, 이하 ‘조’) :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는 곳은 오산이고, 개인적인 일은 용인에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의정부를 살짝 비켜서 왔는데, 포천에 관인면이라고 있습니다. 농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철원 경계에 있는 지역인데, 거기서 제가 일주일의 반을 거주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두호입니다.
좌장 :
조두호님은 수원시 미술전시관에서 큐레이터로 계셨고,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붓하게 좋은 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이제 저희가 논의해야 부분들이 ‘아젠다 31’ 이렇게 되어있는데, 아마 31개 시, 군 문화원과 관련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 문화원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공식의 테마로 나왔습니다. 저희가 제 4섹션인데, ‘지방문화원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특히 시민문화 활동가 양성을 통해서 지방문화원 사업의 성격을 변화시켜야하지 않을까 하는데, 이것은 아마 대 전환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 단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 광복이 된 직후 미군정 때, 검토로 문화원이 설립이 되어서, 해방 이후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저도 젊은 날 문화원에서 하는 향토 문화 학교라든지, 이런 것들로 도움을 많이 받고, 지금도 굉장히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는 곳이 문화원입니다. 사실은 문화원이 둥지가 돼서, 예술단체들도 거의 형성돼서 나오게 됩니다.
오늘의 주제가 사실 좀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의 공급자 중심의 문화원의 활동에서 앞으로는 시민사회에서 요구되는 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라든지, 바람이라든지,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든지, 이런 것을 조금 호흡 맞추면서 하려고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린인데, 아마 의정부의 사례발표를 듣고, 그 이후에 토론을 나눈 다음에, 아젠다 추출을 위한 논의도 있을 예정입니다. 제가 좌장을 맡아서, 시작할 때 소개도 하고 같이 하는 것이 피어라 커뮤니티였습니다.
경기도는 의외로 전국단위의 광역도시와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 전국에서 다양한 분들이 올라오셔서 이미 알고 계시듯이, 서울보다 더 인구수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양성을 특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특성으로 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섞이고 또 나름대로 상부상조하고 있어서, 저희는 이종교배라고 하는데 혼종이 일어납니다. 혼종이 일어나면 사실은 생물학에서는 접종 강세라고 있습니다. 의외로 혼종이 일어났을 때, 두뇌 감성 쪽으로 기본적으로 정보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잡종 강세로서 역동성을 갖는 지역인데, 그래서 보통 경기도를 이야기 할 때, 다양성, 혼종성, 그 다음에 역동성, 실험성이라고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사실은 저희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정조 시대 때 문예 진흥이 일어날 때에도 당시 실학자들이 거의 경기도에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경계와 경계가 만나는 곳, 새로운 문물과 문물이 만나는 다양성과 개방성이 존재된 곳에 문화예술이 응축되는데, 경기도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학 때도 그렇듯이, 지금도 그렇다고 봅니다. 그게 아마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역 재생, 마을 만들기 이런 것의 베이스가 됐던 부분들이 공공 예술이라든지, 공공 문화 예술 이런 것들을 전국에서 가장 발 빠르게 실험하고 확산시키고, 결이 다른 다양한 문화 단체들이 서로 호의적 관계로 풀어온 곳은 아마 경기도만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데라면 문화단체들이 서로 경쟁적 관계인데, 경기도는 한편으로는 경쟁하지만,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관계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피어라 커뮤니티를 검토했던 부분들은 공동체에 대한 문제제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사회에 대해서 얼마 전에도 중앙일보에서 여론조사를 한 것을 보니, 제일 일순위로 올라왔던 부분이 의외로 ‘자연을 살리자’였습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정년을 앞두면서, 그분들이 자신이 어렸을 때 개천에 뛰어 들어가 멱도 감고 놀 수 있었고, 한강 같은 데서도 배타고 가족들이 야유회하고, 그런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도 아주 좋았고, 공기도 좋았고, 구태여 물 안 사먹어도 되는 좋은 자연, 그래서 ‘자연을 살려 달라’는 것이 일 순위였습니다. 이 순위가 ‘공동체를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이웃끼리 굉장히 정감 좋은 관계를 가졌고, 한국 사람들 정이 많다 그랬는데, 다정다감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계모임부터 품앗이 이런 걸 하면서, 국가가 사회 안정망이 부실해서 책임지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온 지역사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것을 형성해서 이웃과 함께 이웃사촌같이 지냈습니다. 그러한 공동체를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요구가 뭐였냐면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도 잘 살 수 있게끔 배려해주고, 더불어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나오는 데, 그것도 두 번째 나왔던 공동체 부분입니다. 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있고, 소멸되어가는 공동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새로운 공동체는 어디로부터 맺어지고 갈 것인가? 어떤 분들은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외국의 사회학자는 공통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태학자들은 공생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들은 어차피 혼자 살 순 없고 더불어 살게끔 그렇게 진화해 왔고, 더불어 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검토 안할 수 없어서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살리기에 가장 적합한 문화와 예술 활동이 무엇일까? 라고 검토하게 되니, 공동체 기반 예술이라는 것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기반 예술은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시골에 가면 풍물패 두레패라고 하죠? 공동체 기반의 예술 활동과 민화도 다양한 공동체 기반의 예술과 문화입니다. 그래서 2014년 6월부터 12월까지 3개 기초 문화 단체 기초 문화 재단과 손을 잡고, 경기도를 투어하면서 실천적인 업적을 가렸습니다. 그 자료집이 이것으로 엮어져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논의와, 공동체 기반 예술에 대한 이야기와 기반과 문화 예술을 하기 위한 기획자에 대한 소양이나 능력개발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문화원에서 이제 수요자 중심으로 시민사회 시민에게서 올라오는 것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셨는데, 이번에 보니, 더 진전되어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품앗이라는 것을 양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것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사례발표부터 들어보면서, 이것이 내표한 가치나 의의를 나누고 커뮤니티에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가졌던 의미, 뜻 이런 것들도 상호 연계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발제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시흥 품앗이안 프로젝트 문화원, 시민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 에 대한 이병권 시흥 문화원 사무국장님께서 발표하시겠습니다.
이 :
반갑습니다. 문화 품앗이가 저희만 해당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정해 드리겠습니다. 문화품앗이는 현재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지방문화원 몇 개 문화원들과 협력해서 하는 프로젝트로, 지역문화원을 상징하는 명칭이 품앗이안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사례발표라고 생각하진 않고 왔는데 사례가 됐네요. 시흥 품앗이안 프로젝트가 우리 문화원과 시민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 그런 주제로 접근하다 보니 사례라고 하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1~2년차 진행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한 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을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초창기에 저희 문화원에서 시작을 할 때는 연합회 내에서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문화 품앗이를 영어 e로 해서, 문화체육자원봉사 및 체제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전국에 확산시키려고 하다 보니, 그게 1365라는 자원봉사 시스템을 통해서 하는 온라인 구축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터넷으로만 구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조직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다 문화체육 쪽에서 이걸 다 진행할 수 있는가? 실제로 그것에 대해서 사무국장들이나 많은 분들이 토론을 하면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특히 지원 내에서 이걸 꼭 해야 하는가 하는 필요성, 인센티브개념 이런 것들이 추가되지 않으면 이 문화자원봉사 시스템이 활성화 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회에서는 국고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성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광역 단위로 해서 전국의 몇몇 광역 문화원연합회를 통해서 성과사업을 진행을 했는데, 경기도에서는 시흥 품앗이안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연합회에서 일정부분을 기획을 하고, 협의체라는 조직을 마련하여, 저희가 파일럿 사업을 시행할 지방문화원으로 2016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단 사업 명칭을 정할 때, 이 사업을 방향을 어떻게 잡으면 좋겠는가? 지방문화원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 사회적인 요구이고 변화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사업 명칭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품앗이, 우리 전통개념에 있어서 품앗이는 노동의 상호교류 형태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문화자원봉사 모임을 좀 강화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품앗이안 프로젝트’로 명명하게 되고, 이걸 통해서 일단은 지역에 활동하는 커뮤니티 활동가들이 많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사람들이 단순하게 문화 활동만을 하는 것에 한정을 두진 않았지만, 각각의 활동들을 통해서 커뮤니티 활동가들을 좀 전체적으로 좀 보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각자가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자. 그 고민에서 계획이 나오고, 그 계획을 통해서 실행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으로 가자고 해서, 처음 진행을 할 때의 핵심은 우리 협의체를 통해 방향을 잡은 것들에 대해 지역 내 커뮤니티 활동가들을 모아서, 이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려면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님을 통해서 파일럿 워크숍을 진행을 했고, 실제로도 파일럿 워크숍을 통해서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문화를 통한 자원봉사는 또 어떻게 대할 것인가 라는 생각, 그리고 내 개인이 자원봉사라는 것에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 내지는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루는데 있어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었던 좋은 워크숍이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지역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모이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활동비를 크진 않지만 10만원 정도 지원을 해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대한 결과물을 제출해서 결과물을 얻었는데, 그게 자료집에 보시면 2016년 시흥 품앗이안 활동과 2017년 2차 시흥 품앗이안 활동들이 내용들은 제가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서 낸 결론은 아니고, 어쨌든 제가 이분들과 직간접적으로 같이 활동을 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나름대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이 시흥 품앗이안 활동은 일단 첫해년도 파일럿을 시행할 당시 개념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개념을 잡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이동준 국장의 자원봉사에 대한 개념, 그리고 품앗이안에 대한 개념을 파일럿 워크숍을 통해서, 이 커뮤니티 활동가들이 시흥 품앗이안을 하면서 문화 활동가로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홍숙씨 같은 경우인데, 이분은 큰돈도 아닌데 10만원을 가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쓰이지 않는 공간을 활용을 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놀이방을 활용한 작은 축제형태까지 기획하고,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작은 단위의 마을 축제까지도 만들 수 있는 사례가 됩니다. 그것은 저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고, 이걸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첫 번째는, 저희가 품앗이안을 하면서 계획을 갖고 한 결과에 대한 것을 받아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보통 자기가 관심을 갖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통해서 활동을 잡고, 계획을 하고, 활동 문화를 이어 가는데, 이런 유홍숙씨 사례 같은 경우엔 단순히 재능을 넘어선 기획까지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들이 2017년에 가서는 유홍숙씨 사례처럼 큰 사례는 안 나왔지만, 점차적으로 파일럿 워크숍을 통해서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일단은, 이 문화 품앗이안 자체가 문화체육자원봉사 시스템은 1365에서 매칭한 것인데, 단순히 1365를 끌어와서 하려고 했던 것을 탈피해서, ‘문화 자원봉사는 일반 자원봉사와는 다르다’라는 차별화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어떤 모습이 다르냐?
우리가 기존의 순수한 자원봉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의 자원봉사는 주체성 자발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자발성 때문에 주체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완전한 주체성을 갖는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자원봉사를 한다고 하면 양로원이라던가, 환경 정화와 같은 활동들만 생각 하는데, 그런 것들은 주체적인 생각의 발로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에 의해서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자원봉사 품앗이안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것은, 본인이 직접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을 따라서 실행까지 이어지니까 매우 주체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하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문화원에서 하는 사업이지만 꼭 문화원에서 할 필요는 없다. 문화원에서 할 수 도 있지만, 공간의 제약이 없는 점 등, 이와 같은 특징을 갖게 되니까, 그동안 우리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공급자 중심의 문화정책 문화 사업들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문화 사업도 가능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우리지역 같은 경우는, 문화원이 이런 일들을 많이 안 해 줘도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삽니다. 시흥시민들은 시흥시가 평생학습도시이기 때문에,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고, 거기다가 우리 시장님이 또 박원순 시장님을 아주 사랑하고 계셔서, 박원순 시장이 하고 있는 사업들도 많이 하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는 일도 꽤 됩니다.
참이슬 아파트 마을 사업도 있는데, 경기도지사까지 다녀 갈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의 마을 사업이 활성화가 되어 주목받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참여한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계획도 하고 실행까지도 다양하게 이어져왔습니다. 그 영향으로 2016년과 2017년 각자 개인들이 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본인들이 이제 본인의 재능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향후 우리 문화자원봉사 측면은 단순하게 일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정말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나눔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생각하고, 각자가 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이 돼서, 그것이 수요처가 발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요처가 욕구를 가지고 이러 이러한 활동들이 있으니 여러분들이 접속하셨을 때 할 건지 말건지에 대한 자발성만 요구 합니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본인이 본인의 관심과 본인의 뜻에 따라서 수요를 만들고, 그 수요를 만듦을 통해서 나눔과 공동체적인 활동을 발현해 나갈 수 있다는 특징을 통해서, 이젠 우리가 많은 화두를 가지고 있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문화자원봉사는 일반자원봉사랑 좀 달라야한다 라는 차별화, 그런 것에 많은 시선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지역사회를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에 이런 것들이 녹아지게 되면, 그거 하나로도 우리 삶의 가치라던가 방향이 많은 곳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 시흥 품앗이안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민들이 어떻게 변화 했는지 실제 시민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본 관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좌장 :
문화자원 매칭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에서 출발하셔서 지금 시민들이 자발적인 자기실현 욕구를 드러내는 건강한 사례까지 끌어오셨는데, 거꾸로 이런 발표를 하시는 것 보니 문화원이 작업을 더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문화원에 많은 자원들이 있지만, 특히 저 같은 경우에 역사에 특화돼 있다 보니, 문화 행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간섭보다는 문화 방임주의 쪽으로 많이 서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서 스스로들이 할 수 있는, 정말 우리 문화원이 공급자 중심보다는 플랫폼과 같은 형태 특히 우리가 협의체를 통해서 개념을 확장할 때 많은 도움이 됐던 것이 처장님이 아이디어를 내셨는데, 생활문화랑 많이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생활문화적인 시스템이 정말 우리 문화 사업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까 이 ‘품앗이안’이라는 것이 앞으로 문화원의 사업에서도 전부일 순 없겠지만, 정말 시민들이 문화원을 필요로 하고 문화원이라는 곳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쪽으로 우리가 많은 아이디어나 생각을 모아간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꼬리표 없는 조건 없는 시드만이 종자돈을 가지고서 나름대로 자발적으로 해주셨는데, 그 이후에도 사업을 하시거나 확장해 가시려면 스스로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든 물적 자원이든, 기획하고 조직하고 어떻게 해 나갈 건지에 대한 아주 좋은 선례가 나타났습니다.
품앗이안 이라는 사업이 시흥, 안성, 의정부, 화성 네 군데서 시범적으로 진행된 거라고 하시는데, 의정부에서 오신 두 분께서 실제로 활동한 품앗이안 프로젝트에 대해서 사례발표 해 주시겠습니다.
서 :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의정부에서 온 서영진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사례발표가 아닌 활동가 발표라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시면 편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안성에 태어나서 오늘 처음 왔습니다. 그래서 안성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주문한 사람에 뜻에 맞춰 잘해준다고 해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성에는 유기가 유명하듯이,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에도 굉장히 유명한 게 있습니다. 바로 부대찌개입니다. 혹시 의정부에 와서 드셔 보셨나요? 오셔서 꼭 드셔보세요. 10월에 오시면 저희 문화원에서 주체하는 회룡문화제라고 하는 전통 축제가 있으니, 와서 문화제도 보시고, 부대찌개도 드시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를 ‘알고 타는 의정부 경전철 역명이야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활동했습니다. 제가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사람은 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제 이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는지, 저의 아버님께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저의 이름을 서영진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의 이름에도 나름 어떤 의미가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도 가지고 있습니다. 땅의 이름은 지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지명도 사람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지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의정부의 역사를 알게 되어 지지 않을까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명공부를 해왔고 또 과거 의정부엔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또 어떤 사람들이 그 사람들 속에서 자연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을 말하는 것을 가지고 의정부 시민들이랑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는 의미에서 주제를 ‘의정부 경천절과 함께하는 역명이야기’라고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명공부를 하다가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 주소입니다. 원장님께서 보셨던 그곳이 신곡동입니다. 제가 신곡동에 살고 있는데 추동이라는 도로명 주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곡은 왜 신곡이고 추동은 왜 추동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신곡은 신촌이라는 곳과 발곡이라는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신곡동 안에는 신촌과 발곡 뿐만이 아니라, 많은 여러 마을이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고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곡동이라고 묶이면서 자신들의 마을이 신곡동 안에 묻혀버린 것입니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됐을까? 하고 찾아봤더니, 그 안에는 같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1914년 일재시대 때 자신들의 행정 편의상 이렇게 지명을 바꾸자 통폐합을 시킨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많은 문화재도 소실 됐습니다. 그런데 지명도 그 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추동이라는 것도 살펴봤습니다. 과연 이 추동이 뭘까? 추나무 또는 다래나무라고 이야기 하는데, 사실 이 나무는 잘 모르시는데 여기 샘플을 가지고 왔습니다. 추나무의 열매가 있는데, 이쪽에 있는 것은 호두고 이쪽에 있는 것이 열매입니다.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지압용으로 많이 쓰셨던 열매입니다. 이 다래나무 추나무의 특징이 재질이 굉장히 단단해서, 스님들의 밥그릇 발우 혹은 바리때라고 하죠? 그것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됐습니다. 그래서 과거 저희 동네에는 추나무가 굉장히 많고, 추나무를 재배해서 바리때를 만들어서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도로 명 주소를 정할 때, 그 마을의 특색을 잘 이야기 해주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을엔 이런 유물이 있었어. 이 마을엔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이 마을엔 자연환경이 이랬어. 라고 하는 걸 정말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곡동이 일본에 의해서 이름이 사라지거나 존재감이 없어졌다면, 도로 명 주소는 자신들의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꺼내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명공부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됐던 책은 의정부 문화원에서 낸 책으로, 여기에 회룡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의정부의 지명 하천, 산, 동네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자세하게 잘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저는 이렇게 판넬 작업을 하였고, 판넬 작업을 한 것을 가지고 의정부 경전철 회룡역에서 활동 했습니다. 의정부 경전철이 두 칸밖에 되지 않는데, 사이즈는 굉장히 작아 열다섯 정거장입니다. 가운데 보시게 되면 물줄기가 보이시는데 중랑천입니다. 중랑천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 서쪽에서 동쪽으로 순환하는 아주 가벼운 전철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기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곳인 회룡역이라고 되어있는 곳에서 저희가 살고 있는데, 활동을 동영상으로 보시겠습니다.
(동영상 시청)
잘 보셨습니까? 저 날 날씨가 굉장히 추웠는데, 재미있게 잘 마쳤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하고 나서 나타낸 성과는 시민들이 지명에 관한 관심도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설명해 드리면, 아 그래요? 그런가요? 하셨고, 그럼, 그 다음 역은 어떻게 되나요? 물어보시거나, 제가 어디서 내리는데 그 역은 왜 그렇게 지어졌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꽤 많았습니다. 어르신들은 환경에 관한 지명에, 학생들은 역사에 관한 지명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의정부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 의정부가 왜 의정부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잘 모르시분이 많아서, 의정부만이라도 그 의정부가 이래서 의정부입니다 라고 확실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다음은 문제점입니다. 첫 번째로 사실 판넬을 가지고 다니면서 설명해 드렸는데, 전시하기에는 좀 작았다는 데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의정부의 배차간격이 4분에서 5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명의 시간이 짧았습니다. 그래서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몇 시까지 해요? 또 언제해요?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굉장히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이걸 다 기억할 수가 없다. 대신 사진을 찍어가도 되겠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원문제였습니다. 설명하는 사람, 반겨주는 사람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향후 계획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해서 의정부 경전철 역명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정형화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월 1회나 2회 순회를 하는 것, 또 역을 좀 돌아보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두 번째 사실 저는 의정부 문화원에 소속된 문화 관광 해설사로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사회 수업으로 우리고장 바로알기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 고장의 역사에 대해 탐방하고 공공시설을 탐방하는 것에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3학년만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요즘 자유학기제라고 해서 중학교 고등학생들이 시간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부를 많이 탐방합니다. 외부가 아닌 바로 우리 문화 고장 마을 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코스를 선정해서 ‘우리 마을 바로 알기’라는 사업을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발표는 마쳤고, 저의 마지막 소감은 제가 이 프로젝트를 해서 좋았습니다. 저는 의정부에서 태어났고 5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의정부에 대해서 정확히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고 의정부를 사랑하는 그런 애향심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도 살고 계신 주소를 한번 검색해 보시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되고, 이렇게 무사히 잘 마치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장 :
문화 관광 해설사로서 축적된 저간의 지식이나 경험에 대해서 드러난 것 같은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선생님께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해보시겠다고 기획을 하신 거고, 함께하신 네분도 그렇습니까?
서 :
사실 활동가로서 저하고 한 분 유정 선생님이 같이 활동 했는데, 보조로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분이랑 3명이 같이 하다가, 나중에 한 분이 더 오셔서 4명이 같이 했는데, 4명이 하니까 잘 돌아갔습니다. 3명이 할 때는 제가 설명이 끝나도 기다리고 계시면 설명을 해드리는데,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래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장 :
경전철에 초점을 맞추신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까?
서 :
네. 사실 의정부 경전철에 대한 선호도는 조금 안 좋습니다. 러시아워 시간 이외의 시간엔 바쁘지 않다 하는데, 프로젝트를 하는데 경전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의정부 경전철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했습니다. 또 마을의 이름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를 잡아 보자 해서 경전철을 했습니다.
좌장 :
문화원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활동가가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서 :
네. 저하고 유정선생님은 지명공부를 계속 해 왔는데, 두 분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했고, 저는 이 회룡문화가 굉장히 잘되어 있어서 시민들에게 이것을 가지고 좀 연습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좌장 :
프로세스가 의정부 문화원에서 이러한 것을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 기획안을 제출받아 기획안을 보고서, 괜찮은 기획안을 지원해 주신 것입니까? 아니면 시드머니만 갖고 알아서 기획하신 것입니까?
박 :
전자가 합쳐져서 있는데, 원하시는 거, 개인 기획자로서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싶으신 분들 모여라 해서 모이신 거고 그분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사업은 이런 것입니다. 하고 설명을 드리고 그다음에 원하시는 기획서를 작성 그러니까 어느 분을 선정 안선정이 아니고 작성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 가신거고 저희는 시드머니만 전달 된 것입니다.
좌장 :
좋은 이야기 해 주신 것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의정부 지역에서 고경화 선생님께서 참여자로 활동하신 내용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고 :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문화원에서 관광해설사로, 예절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년 문화 품앗이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다 오시지는 못했지만 함께 활동 하신 분들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진옥, 김춘옥, 정갑자 이렇게 4명이 함께 활동을 했고, 앞에서 의정부 지명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많이 들으셨다면, 이번에는 저희 의정부 우리 고장에 있는 문화재를 설명해 드릴까 합니다.
저희는 한복을 곱게 입고, ‘차와 함께하는 노강서원 이야기’를 프로젝트로 잡았습니다. 의정부에는 서원이 딱 하나가 있습니다. 노강서원인데, 조선시대 서원은 교육기관입니다. 교육 기관 중에서도 사립학교, 중등교육 기관에 해당됩니다. 이곳 노강서원은 조선 숙종때 문신이셨던 박태보 선생님은 기리기 위한 사당 형식의 간략한 서원입니다. 서원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박태보 선생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태보선생님은 숙종 임금이 왕후인 인현왕후를 폐위하자, 이에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앞장서 작성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노한 숙종 임금이 박태보 선생님을 잡아다가 심한 고문을 하고 진도로 유배를 보냅니다. 가는 도중에 노량진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때가 숙종 21년이었는데, 그 후 5년 뒤에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면서, 죄인으로 몰렸던 박태보 선생님은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열공 이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숙종 21년에 노량진에 박태보 지사라는 것을 짓고, 정조 15년 1791년도에 노강이란 사액를 받게 됩니다. 원래 노강서원은 노량진에 있었는데, 6.25전쟁 때 소실되면서, 1969년도에 이 분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장안동으로 후손들에 의해서 옮겨져 복원 된 것입니다. 서원의 양식은 선현을 모실 수 있는 사당과 학생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기숙사에 대한 형태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방, 강당과 서적을 보관하는 장경각이 다 갖추어 있어야 했는데, 이곳 노강서원은 노량진에 있을 때는 학교에 규모를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만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사당과 동재, 서재 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원은 제사를 지내고, 잠을 자고, 공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강서원은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이 노강서원을 한번 여기 계신 분들이 찾아와 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정부 오시게 되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여행을 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강서원을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버스나 전철 타고 의정부 장안역에서 하차하시면,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서 올라가다보면 고즈넉한 곳에 노강서원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수락산 등산로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많은 등산객들의 왕래 잦은 곳이지만, 역사가 있고 가치 가 있는 노강서원을 찾는 방문객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평상시에 문이 닫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문화 품앗이 프로젝트로 인해 닫혔던 우리 고장의 문화재를 열어서, 많은 방문객들이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 고유의 한복을 입고 따뜻한 차를 나누면서, 방문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와, 방문객들의 여유와 쉼을 드릴 수 있는 이런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방문객들의 호응이 정말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에, 많이들 들어 오셔서 참여도 해 주시고, 호응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업에 참여한 저희도 보람을 느꼈고,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 사업이 계속 꾸준히 진행된다면 우리지역주민 뿐 아니라, 역사나 관심을 가지고 문화재 관심을 갖고 찾아오시는 방문객들에게 조금 더 우리 고장의 문화재를 알리고 방문객들과의 소통에 시간이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해서, 이것이 조금 더 꾸준히 진행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방문객들의 이런 반응과 관심 호응도를 찍은 동영상을 저희 활동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보니까 의외로 관심이 많으시고 일부러 찾아다니시는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의정부 같은 경우에는 닫혀져 있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이사업이 활성화 되어서 문화재를 알릴 수 있는 홍보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좌장 :
의정부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서 그런지, 의정부에서 마을 활동 하신 분들은 애향심도 두텁고, 지역민으로써의 자긍심, 이런 것들이 초점이 많이 맞춰져있어 보기 좋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초점 자체가 지방문화원으로써 문화원 사업의 성격이 바뀌는 게 가능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것이 시민문화와 관련된 활동가를 하시든, 기획자를 하시든 품앗이안이나, 이런 분들이 양성이 되면, 지방 문화원에서 가능하냐? 그래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인천에서 오신 박성희 선생님께서 본격적으로 이것에 대한 말씀을 해주실 것입니다. 인천의 사례가 학산 바닥에서 축적된 것이라 굉장히 방대한데 발제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희 :
간단하게 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좌장님께 저희 발제를 의뢰를 받았을 때, 며칠 안 된 상태에서 제목을 보니,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다른 전체적인 시스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학산문화원에서 지난 5년간 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발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할 일을 넘어 시민 예술 창작 공동체, 시민 예술창작센터를 중심으로 한 학산문화원, 저희가 2년 동안 했던 것입니다.
2012년에 준비한 오래된 미래 마당을 선택을 했고, 문화예술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중심으로 간단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공급자 중심, 수요자 중심 이렇게 말을 하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문화와 지역의 패러다임이 전세계적으로 공동체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이 되고 있고, 사람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활성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집단지성 사회로 변화되면서, 예술이 향유자를 넘어서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경계를 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공유자 중심에서 지식기반 창의적인 시대에서 문화예술이 통합 예술로써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주민 중심의 지역 문화가 문화기반시설과 상업 문화관광 이전에 주민들의 자체 역량들을 어떻게 확보해 낼 것인가? 그 다음에 지역주민들이 문화를 보는 안목과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런 전체적인 흐름들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민주주의, 문화 향유를 넘어서 스스로의 문화 민주화가 아니라 문화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그런 배경 속에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업입니다.
학산문화원이 다른 문화원과 달라서 그 배경을 좀 얘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2003년에 출발했는데, 출발 하면서 위탁 시설로 학산 소극장을 설립하고, 전체적인 축제 같은 것을 진행하면서 영화음반이나 영상 등의 위탁 시설을 받았습니다. 그런 위탁 시설을 설립하면서, 문화원 자체사업들이 조금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외형상의 발전은 굉장히 컸지만, 문화원 전체의 정체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한계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기의식 속에서 전략들이 수립되었습니다. 이 비전이 오랜 마당 예술 생태계 구축이었고, 전체적으로 참여나 주체나 형식의 면에서 구체적인 키워드가 공동체, 시민, 문화 예술 동아리, 이런 형식에 참여 주체 형식면에서 이런 목표를 소화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예술로 위상을 회복하고 지역공동체를 위한 문화예술 구심처로 가자는 것이 학산 문화원에 모토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저희가 했던 것이 마당문화 예술 생태계인데, 두 번째 보시면 ‘하는 이와 보는이의 경계 없이’ 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공급자와 수요자의 경계 없이 더불어 참여하고 어우러지던 공동체 문화예술에 상징이었던 마당을 모토로, 주민들의 문화를 향유 창작하며 문화예술을 하는데 문화원에 판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 저희 모토였습니다. 그래서 주민이 창작의 주체가 되고, 행사의 소비가 선순환 되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자. 그래서 지역 주민들과 체계를 만들어 보자 해서, 5단계 작업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지금 1번에 마당 예술학교가 진행되고 있고, 2번은 마당 예술강사 협의회가 진행 되고 있습니다. 전체를 모아놓은 동아리 축제가 현재 학산 마당에 진행이 되고 있고, 온라인 문화예술체, 지역 시민들이 만든 블로그. 지역 신문처럼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가 마을 공동체 만들기 체험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당예술학교, 학산마당 축제, 마을 영화, 세대,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전부 다 저희는 동아리들이 창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당예술들을 발견하고 조직하면서 주민 자치 활동이 전체적인 지역적 차원에서 진행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저희 남구가 21개 동입니다. 21개 동네 주민센터나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동별 거점공간과 연계하거나 만들어서 각 동에 마당 예술 동아리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동의 마당예술 동아리를 거점으로 하여 각 주민센터나 자치위원회와 네트워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둥아리 조직과 순환하는 구조는 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예술 마당 동아리, 전문 강사와 커뮤니티 활동가 중심으로 하는 마당예술 강좌, 축제 민간 거버넌스 형태 축제, 이것들이 지속 심화하는 과정도 전체에서 하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 드렸던 것처럼 마당, 문화 예술 모임, 학산 문화원이 중간에 매개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체적으로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공동 창작을 하는 과정과 방법론이라고 말씀 드려야 될지 모르겠지만, 동아리 공동 창작하는 과정이 밑에 보시면, 스토리를 발굴하고 주민들이 주제를 선정하고, 같이 공동 창작해 대본을 쓰고, 발표하고, 평가하는 전체적인 예술가가 있긴 하지만, 예술가는 그야말로 안내, 멘토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전체적인 소재와 발표 모든 과정에서 공동 창작의 과정을 거칩니다. 모든 동아리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창작의 주제가 무엇이냐면 공공, 공동, 마을 중심의 문제입니다. 마을의 화두나 남구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재개발인데, 마을에 공동, 공공의 문제, 소외계층의 고독사라든지, 편견, 지역의 역사 향토 유물, 일상과 삶의 편리를 사회 전반의 정부라든가, 국가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창작에 소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장르를 결합한 협의체 예술, 마당놀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공연 예술, 전통 이야기, 현대 장르, 시각, 영상 저희는 주안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시민 리포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영상까지 찍어서 이 모든 내용들을 총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술인 강사 협의회가 진행되고 있어서 여기에서 강사를 양성을 했으면 하는데, 문화원으로서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끝나고 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민 민주주의 되기라든지, 문화 예술 보기를 꾸준하게 하고 있고, 주민들이 전체적으로 네트워킹해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마을 기획이나, 공연, 예술 하는데 의견을 개진하고 기억할 수 있는 관계로, 전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이 형성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결과로 2013년에는 남구의 구립도서관이 7개인데, 도서관과 연대해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17년 까지는 각동 주민센터나, 지역의 복지관, 문화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동별 동아리나, 기관 동아리를 만들고, 테마가 있는 주제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일련의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남구 전체가 주민센터나 이런데 다 모여서 축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말하자면 민간 거버넌스가 되는 것입니다.
올해는 동주민자치센터 자치위원과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상설화시키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저희가 했던 동아리 과정으로, 2017년까지 했던 것이고, 세대별 동아리활동 창작 동아리 인형극을 순회에서 도서관 중심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 영화를 제작했는데 주민들이 직접 기획해서, 배우로 참여 하고, 마당극 같은 공연 예술도 같은 방식으로 공동 창작의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성과라고 하면 도심에서 옛날에 두레패 같은 활동이 공동 기반의 마을 축제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창작으로 문화적 자치를 형성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실천해 낼 수 있는 역량도 확보가 가능할 수 있겠다. 그 다음에 주민들이 문화 발신자로써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실제적인 어떤 민간이라기보다 지자체, 주민센터, 도서관, 학산문화원 민간 거버넌스의 형태로 지역공동체 예술을 해보는 그런 목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저희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런 마당 문화 예술 동아리가 동아리 사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구조와 시스템 안에서 남구 전체적인 지자체 차원에서 어떻게 저변을 확대할 것인가, 이런 것에 고민이 조금 있습니다. 주민센터 외에도 문화기반시설이라든지, 무엇보다 학교와 연계라든지, 저변 확대가 어떻게 이야기 돼야 하는지 그런 지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21개 동 말고도 어린이 청소년이라든지 기관별 1번하고 똑같은데, 이런 것들이 전체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확산시켜 낼 것인가가 저희 문화원에 과제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마당 예술 강사를 문화원 차원에서 계속적으로 교육하고, 양성하고, 지원 한다는 것이 재원적인 한계와 전문 인프라의 문제들도 있고, 그런 것들이 이제 당면한 문제이고, 그런 것들 속에서 구조적인 한계가 조금 있어서, 그것에 관한 논의를 조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보성 대전문화재단 실장님께서 작년에 학산문화원의 현재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평가해서 보내신 내용입니다. 학산문화원이 커뮤니티 아트, 민간 거버넌스 차원에서 공동체 예술을 잘 진행하고 있고, 그런 성과들이 잘 되고 있다. 이런 전제하에서 문화원이 가고자 하는 전체 방향이 현재 학산문화원이 전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재원이라든지 시스템과 기초문화재단 속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문화원 자체가 어떤 역할과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질문으로만 되어서 오늘 그 이야기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좌장 :
인천 남구에 있는 학산문화원에서 얘기를 했던, 마당예술 동아리 흔히 보면 생활 예술 동아리의 하나인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서 굉장히 다양한 결의 다양한 단체들이 많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스스로 지역 문화, 지역 공동체 문화에서 새롭게 영글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야기했듯이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문화가 아니라 필요해서 스스로 개척하고 개발하고 확산하는 자기 전환, 확산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발제자로 조두호 선생님 것을 듣고 토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두호 선생님께서는 관인공동체와 문화재생연구소 예술감독을 맡고 계시고, ‘시민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라는 발제를 가지고 말씀해 주시도록 하겠습니다.
조 :
반갑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 오후 2시 정도까지 관인에 있다가 왔습니다. 관인이 어디냐 하면, 관인은 철원군청보다 북쪽에 있고, 동송이라고 있습니다. 신철원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경기도 최북단의 마을입니다. 38선을 지나서 30분은 더 들어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철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처음 가자마자 물어봤는데, 1913년경에 연천군으로 병합 됐다가 연천 관내까지 가는데, 그 당시 기준으로 1박2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행정 처리를 하기 너무 힘들어서 그분들이, 관청이 가까운 다른 곳으로 기자고 했는데, 그러면 철원으로 가야 하는데, 강원도 감자 소리 듣기는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나마 경기도에서 가장 가까운 포천으로, 실제로 경기도 포천의 지도를 보시면 마지막 북쪽에 V 자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철원이 쑥 들어와 있고, 그곳이 톡 튀어 나와 있는 부분이 관인면입니다.
지금은 연천과 포천과 함께 한탄강 국가지질 공원으로 함께 지정된 땅이다 보니까 관인면 안에도 한탄강 국가지질 공원 2020년 직전까지, 그 지역에 대한 문화적 혹은 자연적 요충지, 환경들이 그 지역에만 해도 7-8개소 정도가 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도 저는 지나다니면서 매번 한탄강가에 있는, 아주 재미있는 주상절리와 천혜 환경들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시민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저한테 과제로 주신거라서 제목은 그대로 달아 있습니다만 무엇을 써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제가 엘리트 전문 예술 집단에서도 일을 해왔지만, 반대로 공동체 현장에서 현장 문화기획자로서 계속 활동했던 간단 간단한 에피소드 중에서, 제가 시민 혹은 주민, 지역주민공동체와 활동 혹은 제가 경험했던 것 중에 일부만 뽑아서 에피소드 형태로 일기 쓰듯이 써 붙였습니다.
일단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안양에 있는 석수시장입니다. 제가 주로 활동하는 곳이 도시의 원도심에 쇠락하고 쇠퇴한 지역으로만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소비구조나 자본주의에 약간은 반해서, 단순히 재개발, 재건축에 형태가 아닌 문화 예술적 시도를 통해서 이 지역들이 어떻게 어떤 형태로 문화를 보전하면서, 다음 세대로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석수 시장에 있을 때는 지금 현재 미술관에서 관람했을 때보다 더 난해한 형태의, 아주 실험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석수 시장이라는 아주 오래 된 재래시장의 빈 점포들에서, 시장 상인들과 예술가들과 예술적 실험을 시도를 했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시민 중심의 사업, 시민과 소통하는 지점에 대해서까지 생각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단적으로 그 기관에서 만들었던, 그 당시 활동을 했던 소식지를 가지고 야심차게 마을 시장 주민들한테 나눠 주려고 가지고 갔다가, 마치 잡상인 취급을 받으면서 거기 두고 가세요 하는 곳이 세, 네 집, 가다가 중도 포기를 하고 나왔던 웃지 못 할 현실에 대해서 써보았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정릉동 오르막길은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예술마을 가꾸기’라는 사업을 진행 하였습니다. 정릉동이 평창동과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평창동은 부촌인데, 언덕 밑에 있는 정릉동은 아주 쇠락하고 낙후한, 서울에서 첫 번째 만들어진 럭키아파트라는 다 무너져 가는 아파트 옆에 있는 동네였습니다. 그곳 역시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요구했던 바가 70%의 하드웨어와 30%의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주민참여 형태의 공적 서비스의 네트워킹을 해보자는 것이 저희한테 주어진 미션이기 때문에, 저희가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복지관 이라든지, 학교 공동체라든지, 거기는 동사무소라든지, 이런 주민자치 공동체들과 빠른 속도로 합의를 해서, 간단히 보면 주민참여 형태로만 진행을 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를 보시면 ‘오래된 폐허, 장흥역에서’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경기 북부에 있는 양주시의 일영, 송추, 장흥으로 이어지는, 저보다 좀 윗세대가 대학시절 MT를 많이 가던 곳입니다. 이곳은 서울 교외선이 중단되면서 폐허로 변해버렸던 곳이었습니다. 이 당시가 2011년, 2012년 이었으니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습니다. 이 때는 마침 관장님께서 경기문화재단의 사업팀장이셔서 현장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새로운 주문자라는 컨셉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역에 계시는 분들이, 과거에는 관에서 디자인하고, 기획자가 들어가서 설계를 하면, 거기에 대한 부분들을 에피소드 2 정도의 주민참여 형태를 통해서 공적 서비스를 진행했다면, 이것은 조금 더 주민들이 주체로 떠오를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시도 했던 사례입니다. 비교적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 속에 마을 이장님이라든지, 소위 빅맨 분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다행히 장소의 개발이나, 장흥역 오래된 공간에 대한 장소적 재생도 들어갔지만, 더 값지게 남은 것은 그 이후에 그분들께서 마을 기업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마을 이장님이 주축으로 해서 마을 기획자를 발굴하시고, 마을 기업을 만들고,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경제적 활동을 하시기 위해서, 공공조각공원 안에 있는 매점의 사업권을 따내서 매점을 직접 운영하여 재원을 확보 하시고, 사무실 공간은 시에서 오래된 모텔들, 장흥 지금 가보시면 모텔이 엄청 많은데, 모텔들도 노후가 되다 보니 사기업들이 매입하기도 하고, 오래된 모텔 중에 간혹 좋은 것은 시에서 매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텔 하나를 리모델링해서, 거기 있는 프로그램 하시는 집단이나 예술가들에게 장소를 할애하는 것 중에 한 공간을 할애 받으셔서, 지금도 활동하시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
반은 실패고 반은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 사이트를 저희가 뺏겼습니다. 그 사이트는 장흥역 앞에 있는 폐허였는데, 그곳의 쓰레기를 치우는데, 상가의 건물 두 배에 달하는 쓰레기가 나왔습니다. 쓰레기가 켜켜이 쌓이다 보니까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건물주가 쓰레기를 치워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한테 2년 정도 무상 임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나자마자 재계약을 해 주시지 않으셔서 사이트는 다시 폐허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공동체가 어느 정도 구축 됐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현재 지금 제가 2시까지 있었던 관인이라는 곳은 의정부나, 양주, 포천 시내에 계시는 분들조차도 생소해 하시는 지역일 것입니다. 해방이후 5년 정도는 이북의 통치를 받다가 한국 전쟁이후에 수복된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30-40%가 실향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실향민들을 소위 당시 미 40사단이 트럭에 싣고, 관인이라는 지역에 판자와 나무를 주면서 정착하게끔 만들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거의 군인 상권에 의해 초반에 적응을 하다가, 어느 정도 살아가는 시점에서 군인들이 있으면 이런 저런 폐해들이 생기니 미군부대나, 군 관사나 이런 것들을 밖으로 내모는 단계를 70년대에 겪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거꾸로 발목을 잡아서, 지금 현재는 70년대 이후로 신축 건물이 거의 없는, 40년 가까이 거의 그대로 완전하게 노쇠해 버린, 그런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심상가 같은 경우에도 상가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 100%에서 중에서 60%는 이미 주거를 하고, 공동화 현상도 15% 정도가 진행 되었고, 빈 공가가 많고, 폐가들은 이미 지붕이 내려앉아서, 제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지난 3개월 중에도 건물들을 헐어내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지역에 문화 재생 도시, 문화적 도시재생에 대해서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논의와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저희 포지션에 변화입니다. 제가 과거에는 디자인하고 설계를 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심지어는 거기서 주거를 합니다. 포천시 노인회장님 집에서 1주일에 2박3일 정도 주거를 하고, 저희 팀원들 같은 경우에도 최소 3박4일 정도를 함께 지역에서 같이 먹고 자면서, 인류학에서 얘기하는 참여 관찰이라고 하는데, 참여관찰 방법을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분들과 스킨십을 통해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 이야기에서 그분들이 공동체 그 기존, 기성에 있던 공동체 분들이 어떻게 다시 문화재생을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 와있습니다.
사실은 문화원 선생님들 와계시는 계시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는 약간 더 과거의 이야기고, 미래 이야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인면 같은 경우에는 불과 10년 정도가 지나면, 그 마을 자체의 생존 자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30년이 지나면 아마 소멸 단계에 갈 것 같습니다. 이것은 조금 빠를 뿐이지 우리나라 국가적인 모든 상황이 가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통계적으로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어지럽게 들리시겠지만 2050년이 되면 외국인 포함 한국 인구가 5,200만명에서 4,300만명 정도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2100년이 되면 2,000만명 단계로 줄고, 2150년이에는 1,0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2200년이 되면 한국 소멸 이라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라고 하는 것이 매일 듣는 그 이야기가, 관인 같은 경우에는 한 30년 후, 2050년이면 소멸단계에 이른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경기 북부 최북단에 있는 마을 지금 가보시면 굉장히 평화롭습니다. 거의 주축이 60대 중반이고 오늘도 난로 워크숍을 했습니다. 남양주에서 난로를 만드시는 팀이 오셔서, 난로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참여 워크숍 했는데, 30-40명이 모이셨습니다. 그 작은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모여서 난로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셨는데, 그분들이 백 살까지 살 수도 있겠지만, 한 10년 후에는 사라지고 난 후의 일이고, 그런 문제 때문에 제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주제에서 시민 중심이 아니고 이 필수불가결적으로, 시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뽑은 사업을 추진해야만 하는 조건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이 지점에 대해서도 제가 봤을 때, 대도시라고 해서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워낙 연성으로 글을 쓰고 연성으로 말을 하고 있어서, 공동체에 대한 시민 중심이 왜 되어야 되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그 이후에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좌장 :
발제만 하는 데도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갔습니다. 이모임은 발제 이후에 토론까지 주어진 시간 두 시간이면 마무리를 해야 되는데, 저희는 발제를 하다 시간이 다 갔습니다. 그래도 쉽게 만나는 것이 아니니, 만났으면 끝장을 봐야 합니다. 10분 쉬고 기타 의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좌장 :
행사가 ‘아젠다 31’ 이라고 아젠다를 추출하는 것이 최종 산출 목표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런 섹션에 ‘지방 문화원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면 시대적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것을 받아서 할 수 있는 고민이나 동력이나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어떤 성찰하고 점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건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시대 요청으로 이런 질문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것은 자각이 전제되지 않으면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자각이 전제된다고 하는 것은 절실함입니다. 절실함이 과연 얼마만큼 공감대를 형성 하고 있느냐는 것인데, 조두호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발제하신 것을 들어보면 관인이라고 해서 무엇인가 했는데 오늘 알았습니다.
관인이 지명 이름이었습니다. 아마 이 추세는 본격적으로 더 강화 될 것입니다. 이미 지도는 나와 있습니다. 경기도 전체에서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지역과 인구가 증가 하는 지역, 여전히 자기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 대한 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나와 있는데 그것을 보면 강원도 같은 경우에는 진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추세로 가게 된다고 하면 강원도 같은 경우에는 세수가 너무 줄어서 공무원 월급 주기도 힘들어지는 것이고, 공공부분의 기금을 조성 하여서 투입한다는 것이, 국고에서 지원 해주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계적으로도 이미 신자유주의의 끝을 보았습니다.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자체가 더 이상의 성장 동력을 가지고 이끌어 가기에는, 현재 몇 몇 젊은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의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조성 작업해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굉장히 씁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지구별 차원에서 본다면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아주 역설적으로 경기도는 DMZ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DMZ가 분단의 상징이지만, 거기 살고 있는 동식물 세계에서는 제 2의 천국입니다. 훼손되지 않은 천국이고, 생태계에서는 보물 금광과 같은 곳입니다. 문화적 이력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 같은 경우에는 보다 여유 있게 인간적 품위를 유지 하면서 또 인간적 삶의 질이 높아지고, 이 생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을 그것도 굉장히 놀랍고 귀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상황이 조금 바뀌고 있다면 큰 차원에서의 그림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지금 문화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학산문화원과 의정부문화원에서 품앗이안 두 가지가 발표 되었고, 관인은 문화원에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개별 프로젝트로 예시를 하고 있는데, 공동체기반으로 얘기되고 있는 예술 활동이나 문화 예술 활동 이런 부분들이 검토가 될 때, 1980년도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사회 기층을 이루고 있는 생산 일을 하는 공동체와 연계 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안성 같은 경우에도 농민회와 함께하는 농민 병원 이런 것을 하고, 인천 같은 경우에는 근로자들과 함께 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직장 공동체들과 연계 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90년대는 거의 시민 공동체였던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 여러 결의 공동체와 함께 했는데, 21세기로 넘어 갔을 때 공동체로 기반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는 차원 변경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지구시민 공동체, 지구시민으로서의 소양 이라든가 과제, 이런 것들과 연계 되어 있다고 보고 있고, 이미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쉽게 변화할 것 같지 않은 중국조차도 상하이에서 도시 엑스포를 하는 것을 보면, 씨앗의 정원, 씨앗의 궁전, 공중정원, 생태 전략들을 구상하고 있고, 문화 예술 쪽에 선례를 보면, 뉴욕 같은 경우에 뉴욕경영센터가 생태전략을 가장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지리산 프로젝트를 할 때, 성직자분들을 모셔서 빅스토리에 대한 검토들을, 생명평화, 기후 이런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순례길과 연결 되는 것들을 하시는 것들을 보았을 때, 징후는 뚜렷하게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공동체나 그로부터 비롯되는 예술문화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품이 필요하고, 숙성 되려면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금방 산파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아젠다, 과연 전환을 위한 아젠다, 지방 문화원이 시민 출발, 시민 주도적으로 자발적 참여 지역 활동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오늘의 마지막 끝장 토론을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도, 인류도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사례를 들어 말씀하셨지만 국제적인 석학들이 검토하고 있는 사례는 2030년이 변폭점일 것이라고 보고 있으니, 지금 2017년 이니까 13년 남아 있습니다. 13년에 따라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의 지속 가능하다는 표현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고, 지탱 가능한 발전인 것입니다. 지구별 받쳐 낼 수 있는가? 지탱 가능한 부분으로 방향을 잡으면. 앞으로 인류가 만년은 더 간다고 하고, 그렇지 못 하다고 하면 과학자들 얘기하기로, 현재 지금 태어난 아이들까지라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지막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인류가 될 것이다는 이런 상황까지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환에 대한 절절함, 공감대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에 따라서 자각이 있을 때만 자기 동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거의 갈무리 하는 발언으로 하시면서, 과제로 아젠다로 내었으면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면서 얘기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없습니다.
희 :
제가 문화원에 중장기 전략을 하면서 사실은 그것이 위기의식 이었습니다. 문화원의 역사가 70년인데, 그사이에 정책과 변화나 이런 것들이 많았는데 위기가 오면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합니다. 방금 자각이라고 하셨는데, 자각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문화원 전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타프로그램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문화원들이 많은데, 프로그램이 아니고 전체 지역의 구조적이고 시스템 차원에서 문화원이 어떤 정책을 가져갈 것인가 그런 논의가 한국 문화원 연합회나, 지역 문화원 차원에서 캠페인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문화 재단이 내년 지방 문화진흥법이나 기본법을 시행하면서 전국 단위의 기초 재단이 설립이 되었을 때, 거기에 역학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규정되어 줄 것이냐 이런 문제가 모든 문화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내부에서의 어떤 공통의 분모, 이런 것들이 파편적으로 되어 있어서 쉽지 않은 상태라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 프로그램 이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프로그램을 전향할 것이냐가 아니고, 전체적인 정책과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화원이 어떻게 가야 될 것인지 논의가 내년에는 집중적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문화의 구조나 흐름 속에서 문화원이 어떤 위치와 역할을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나 이런 것을 특히 원장님들끼리, 이사님들, 문화원 연합회 이런 모임들이 조금 더 활성화되고 집중적인 정말 끝장토론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조금 일찍 되었으면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최 :
지역의 커뮤니티 베이스에서의 사업들에 이런 구조적인 부분들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는 것이 마땅하고, 지금 이런 섹션들이 다른데서는 훨씬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당장 시흥 국장님 혼자 남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것이 현재 문화원의 현실인 것입니다. 경기도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도 그러니까 어느 한쪽에 집중 되어 있거나 관심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앗이안’이라는 것들을 하면서 조금씩 문화원이 한 개, 한 개씩 변화되고 있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가능성들이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열 걸음 뗄 수는 없는 것이고, 첫걸음을 뗄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그러려면 첫걸음을 떼서 가려고 한다면 내부에서 작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해야 한다면 갈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이 :
제가 마지막 발언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모두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품앗이안 프로젝트가 협의체를 통해서 수동적으로 참여했지만, 앞으로 우리문화원, 지방문화원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체제나 방식은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으로는 충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서 우리 문화원도 공급자 중심의 사업 형태를 떠나서 생활문화 같은 형태로 얘기를 하자면, 지방문화 플랫폼 같은 형태로 전면적인 개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이 이제 앞으로 아젠다로써 고민해야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지난 과거에는 우리가 수동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관장님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고 경험한 바로는 지난 과거는 계몽적인 시대였습니다. 따라와라 하는 시대였고, 지금부터의 시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개인의 욕구나 개개인에 동력이 매우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있어서 문화원이 지방문화원 진흥법에 의해서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언제까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것인가는 미지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원이 시민 속으로, 전에는 계몽적인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원이 진정으로 시민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플랫폼과 같은 형태로 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좌장 :
‘품앗이안’이라는 부분을 명명해서 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품앗이라고 하는 부분들이 들의 노동, 마을에서 했을 때 옆집에서 일손이 바쁘면 일손을 보태 주고, 우리 일손이 바쁘면 그 사람들이 와서 보태주는 상호 구조적인 형태를 가졌었는데, 지금 최근의 시장을 본다면, 예전에 동학을 이어서 원불교까지 내려오는 것인데, 내게도 이롭고 상대에게도 이로운 일들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계몽적인 시대에는 자기를 헌신하거나 희생하더라도 전체의 바람직한 것을 하기위해서 그렇게 하는 부분이 강조 되었다면, 자기비판에는 그런 것들에 헌신이나 희생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내게도 의미 있고 상대에게도 의미 있고, 내게도 가치 있고 상대에게도 가치 있는 것, 내게도 즐거움이고 상대에게도 즐거운 그런 부분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동력이 살아서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타인화하거나, 누군가를 대상화하지 말고, 더불어 함께 하는 이런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문화원연합회에서 요청을 해서 저널에 생활 문화란 부분이 갈수록 중요해 지는데, 생활 문화를 뒤집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활생 문화로, 활생이라고 하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것들입니다. 살리는 문화로 활생, 원화로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살리는 것, 뒤집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조사하면 아주 특이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는 이만 불 정도만 넘어가게 되면 타인 물질주의적인 문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과시한다거나 물질적으로 풍부한 부분들을 자랑하거나 이런 문화가 아니고, 거꾸로 한 인간으로서 공동으로서 의미 있는 가치를 지향하면서, 정신적인 영역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이제는 위, 아래 정도가 아니고 전체가 거의 다 물질주의 문화로 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 몇 평 사느냐? 어느 아파트 사느냐? 조금만 더 가면 무슨 자동차를 가졌냐? 먹방 스토리, 옷을 뭘 입었느냐? 전부 그런 것들이 한국적 특성, 한국적 특징입니까? 다른 나라들은 계급 혁명을 통해서 시민사회를 만들었는데, 한국은 봉건시대 때, 몽땅 90% 이상 스스로 계층 상승을 해서 양반이 되고, 지금은 100% 양반이 다 되어서 차도 가지고 다니는 굉장히 독특한 경우라고 합니다. 과연 21세기로 들어가는 이 골목에서도 그런 것인지 문화연구자들이 연구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레블루션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코에볼루션으로, 공진화로 가자 한국적 특성이라면 평화적으로 공진화해서, 몽땅 다 양반되듯이, 정도로 한국 사회가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한국적 전력을 채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경우에 어떤 곳으로 찾아 들어가야 할 것인지 검토해 봤으면 합니다.
조 :
사실은 공급과 수요의 전환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경기문화재단 쪽 사업을 주로 5-6년 정도 해오다보니까, 계속 한 10년째 고민해왔던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께서 지역에서 지역의 것들을 확장하셨다면, 저는 비교연구 형태로 갔습니다. 지역과 지역을 비교하는 형태로 하였는데, 왜냐하면 서울에 있는 제가 근무했던 원도심도 있었고, 6-7개 정도의 전혀 다른 성격에, 전혀 다른 공간들에서 비슷한 고민들이 관이나 혹은 프로그래밍, 국가적으로 의도하는 지점에서 항상 부딪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무슨 생각을 했느냐면 시민사회가 결국은 관이 디자인한, 국가가 디자인한 쪽으로 지원금 형태든, 국가적인 국가 기금이 형성이 되는 형태로 개념들을 바꿔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틀이 먼저 만들어지고 거푸집 안에 밀랍이 계속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느낌처럼 진행해 왔는데, 저는 지금 현 정권이 주제에 맞는 고민을 전국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가장 최근에 한 일이 관인지역, 여기가 어찌 보면 자연생태에서 DMZ가 50년 넘게 된 천혜 보고라면, 거기 사시는 분들에 대한 것을 얘기하면, 박물관에 박제된, 40-50년 동안 한번도 외부적 자극이 없었던, 그 지역 역시도 DMZ 같은 공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지역에 포천 같은 경우에도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정책. 그것이 기존에 진행되어 왔던 수많은 부처들. 국토교통부, 농림부, 문체부 등 뭘 하든지 아주 유사한 형태의 사업들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 지역에도 문화원이 있을 것이고, 연합회가 있을 것이고, 시청이 있거나, 시청에 관련된 관계부처가 있고, 예총이나 밑에 산하단체가 있는 것처럼, 비슷한 듯 다른 형태의 수많은 지원시스템과 시민을 발굴해내는 작업들을 해왔는데, 이제는 그것들을 동폐합해서 기존에 있던 것들을 언발에 오줌 누기 같은 형태로 치부합니다.
지금은 예산 규모도 기본이 백억 단위입니다. 55조를 5년 동안 문화 재생에다가, 도시 재생에다가가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경기도에서는 수원, 안산, 고양이 일차적으로 통과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한 포천 관인 지역은 서류에서 탈락이 되었습니다. 대도시 중심의 3개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그 전 단계에서의 포트폴리오가 풍부한, 가성비 면에서 그 지역이 제가 봐도 뛰어난 상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선택적인 입장에서 쇠락도라든지 이런 것들을 보면 관인이 1등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포트폴리오적인 부분으로 봤을 때는 지금 현재 수원만 해도 마을르네상스 센터가 생긴 지가 벌써 5년이 되어 갑니다. 아시겠지만 행궁동에서 수많은 살인사건 일어났습니다. 안산도 그런 강력범죄가 형성되는 그런 지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미 국가적으로 도시재생이라고 하는, 재건축 재개발 형태가 아닌 하드웨어적인 것과 소프트웨어적인 것들을 아예 전환시키는 대전환의 시기가 이미 올해부터 도입된 것 같습니다.
저는 10월에 서류를 쓰다 보니까, 그 지역은 내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젠다 형식으로, 절대 늦지 않고 국가적인 차원으로 봤을 때는 아주 시기적절한 때에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역 한군데 한군데에서는 관에서 디자인한 것들을, 아까 계몽의 때 말씀하셨지만, 나를 따르라 해서 따라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군대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새마을 운동이나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렇게 하면 정말 수요자가, 수요자라는 단어도 지금은 쓰지 않습니다. 이미 생산자로 국면이 전환 됐으니까.
과연 주민이 중심이 되고, 시민이 중심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젠다라고 생각이 되고, 그렇다면 이것들을 어떻게 문화원에서 포커싱해서 만들어낼 것이냐? 저는 이미 품앗이안을 보면서 한 팀, 한 팀 해서 얼마의 예산이 지원이 됩니까? 개인에게 10만원이면 가성비가 엄청난 일입니다. 문화재단 같은데서 3백만 원, 5백만 원 사업지원 하는데, 그것을 보면서 그걸로 뭘 하는데? 하고 얘기하는데, 시민 실천가를 양성하고 있고, 이러한 사업이 시도되는 자체가, 그리고 세 분께서 의정부에서 오셔서 사례를 발표하는 것부터가 문화원에서 이미 가는 방향성도 좀 앞당겨 놓고 있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나가면, 저는 관인에서 이런 활동들을 어떻게 끌어낼까 고민하고 있는 상태라, 이런 지역을 어떻게 접근 할 것인지? 이런 것들까지도 저는 긍정적으로 오늘 이 자리를 보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저는 상당히 기분 좋은 자리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좌장 :
말씀 감사합니다. 이어서 박성희 선생도 말씀 하셔야 되는데, 피어라 커뮤니티 공동체 기반 예술 할 때도 그렇고, 학산마당 놀래도 그렇고, 제일 중요한 부분들이 시민들에게 이야기 주권을 되찾아주는 것입니다. 문화라고 하는 부분은 발화자, 발신자가 있는데, 그 발신자가 현재 우리의 상업적인 문화 속에서는 기본적으로 문화 상품으로 공급해주는 사람이 있고 나머지는 다 소비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시민은 중심의 문화를 이끌어 내는 힘은 시민 스스로가 소속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발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야기 주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술로 조성이 되는 이야기이건, 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든 주권자로서 권리를 예술이나 예술에 기본이 되는 서사로 이야기를 돌려주자 하는 것입니다. 끝끝내 웃으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아마추어 예술 동아리인데도 창작 예술로 하시겠다는 분들이십니다.
희 :
주민들이 이제는 4년쯤 지나니까, 주민들이 스토리나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먼저 강사들한테 제안을 합니다. 그런 훈련들과 스토리가 어떻게 해서 무대 올라가는 과정을 느끼니까, 기획자로 성장을 하고 컨텐츠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최 : 지방 문화원 차원에서 생각보다 현장에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고, 저는 아무래도 연합회에 있다 보니까 광역단체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저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시흥문화원 혼자 와있지만, 시흥지역에서 다양한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도시가 문화를 중심으로 어떻게 변하는지 일련의 변화를 지켜보면, 일단 지역의 커뮤니티를 회복하는 일에 한개 지역을 변화를 시켜가고 있다. 의정부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가지 않으면, 경기도 31개의 문화원이 잘 하고 있다고 이렇게 가는 모양새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까 연합회 차원의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저도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어떻게 구도를 잘 짜서, 잘 맞춰서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전달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젠다에서 4개 섹션이 진행이 되었는데, 이것을 녹취해서 잘 정리를 할 것입니다. 정리한 것을 배포하면, 문화원의 장점이 생각보다 책을 잘 읽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눈 말씀들이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잘 구성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희 :
한 가지 제가 정말 아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는데, 저희가 지역에 문화원 말고, 복지관, 평생학습원, 자원봉사센터, 각 동에 주민센터 심지어는 지역아동센터 이런 문화예술교육과, 이런 것을 하는 마을 만들기 센터에서 전 기관과 시설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다 합니다. 사실은 그런 문화원이, 이런 모든 기관과 시설과 단체와 문화예술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 것들 속에서 전체적인 네트워킹과의 연대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문화원이라는 기관이 균형상 봤을 때 중심에 있다기보다는 상대적인 병렬 속에 하나로 위치 지어집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인식 속에서 그러면 문화원이 이런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만들을 것이고 어떻게 위치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이 구조적으로 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집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복지관의 예산이 문화원보다 10배쯤 훨씬 많습니다. 예산으로 보면, 인력이라든지 인프라들이 훨씬 많고 그래서 처음에 문화원 시작했을 때, 학산 마을 만들기 센터와 도서관 쪽에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TF를 구성했으면 좋겠다. 생활 문화 이런 것들이 그렇게 연대해서 지역 단위에서 같이 일어나고 프로그램이란 것도 같이 예술센터를 만들어서, 전체적인 공식적인 커리큘럼과 인증이 되면서 마을학교와도 연대에서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었는데, 문화원으로써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한계라고 했을 때 문화원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는 이런 제안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위치가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이 현재 있고, 다른 분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문화원은 그러면 어떻게 갈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조금 더 세밀하게 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 :
개별로 지방문화원 차원에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연합회 쪽에서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 들어가 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얼마 전 포럼에서 문화원을 규정할 때, 어떻게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책에 있는 말을 찾았습니다. 그 말이 딱 지금 현재 지방 문화원을 규정하는 한마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합리적인 아비투스로 구성된 연구주의 네트워크’, 현재 지방문화를 규정하는 것에는 굉장히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앞으로 해결해야 할지 연합회 차원의 노력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이런 노력들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경기도문화원 차원에서 어디까지 가능할까 계속 되어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를 보니까, 내년 아젠다 때 다시 한 번 모여서 다른 형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 :
경기도 연합회, 문화원 그래도 전국 사무국장들이 모이면, 경기도 문화원 연합회가 정책적으로나 이런 것들을 봤을 때, 한국문화원연합회가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 합니다. 답답하긴 한데 기대를 못하겠습니다.
조 :
저는 제 3자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화원 일을 하고 있으면 문화원이 사실 대한민국의 문화단체 중에 제일 맏형인 셈이고, 더 의미 부여를 한다면 종갓집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적 상황이 오면 저는 좀 다변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술관 같은 경우에도, 청년 미술관 구상을 따로 하고 있습니다. 여성 미술관 따로 구성 들어가고, 어린이 미술관 따로 들어갑니다. 그것 전체를 도립 미술관이라고 해서 품는 것입니다. 종갓집으로써 해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을 포기하더라도 한국문화원 안에, 각 지역 문화원 안에, 시흥문화원 같은 경우, 시흥 청년문화원, 시흥 여성문화원, 시흥어린이 문화원 이런 식으로 산하 부설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문화라고 하는 것은 적충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 세대가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옛날 99칸 집,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가도 원로이신 할아버지들이 모이셔서 노는 자리 따로 있고, 아버지들 세대 따로 있고, 일꾼들이 모여 사는 곳이 따로 있는데, 문화원도 그렇게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부분들이 적극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보기 좋은 선례가 학산 문화원 같은 경우, 놀래 극장이 만들어져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지역사회를 연계하니까, 원래 문화원으로서 향토사업을 연구하고, 지역의 정신문화를 보전하고 재해석하는 것 못지않게, 그런 것이 연계 되어 있으니 활기가 돕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원에 다변화 이런 것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최 :
그런 맥락에서 민간단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우리가 문화원에서 당장 청년문화원은 만들 수 없으니까 사회적 구조를 만들려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희 :
연계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하기에는 문화원 체질이 너무 허약해졌습니다. 전국 시, 군, 구에서 예산을 받다보니,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간다거나 의존 형태가 약간 매너리즘 같은 것들이 있어서, 그런 체질도 강화시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 :
멀긴 하지만 어쨌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좌장 :
수원에서 오신 손채수 행동레이젼시 작가는 의견 있으시면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여자 :
항상 제가 생각하는 것은 모든 생명들은 다 존중 되어야 하고, 특히 지금의 문화원 중심은 어떠한 부분에서 어르신들이 모이셔서 한다는 이미지가 맞습니다. 저도 문화원 프로그램에 한번 참여한 적도 있고 옛것을 전승하는데 이미지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여러 가지 시도를 하시는 것을 보고 ‘노력을 많이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열어서 지금 같은 경우는 문화원 그러면 소통의 구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수평적인 되면서 요새 얘기하는 프렌드쉽 같은,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로서의 어떤 부분으로 조금 더 생각을 바꿔야 이 부분들이 열려지지, 우리가 옛날에는 효라든지 예라든지 그것도 역시 중요하지만, 옛날식의 그 개념 가지고는 지금 이 부분들의 헤쳐 나가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것이 21세기 지구적 상황이 연결 되는 시기에 그럼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문화원에서 가이드를 해줄 수 있다면, 문화원이 가진 역할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공감대가 훨씬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좌장 :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제가 거칠게 아젠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뽑아봤는데, 보시고 본인이 얘기한 것을 조금 다듬어서 제출해 주시면 아젠다 채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해주시면 채택 하겠습니다.
최 :
나중에 녹취를 풀면 4개 섹션 중에 가장 밀도 있는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잘 정리를 해서 내년도 사업에서 세팅, 좋은 얘기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젠다 채택하고 추후에 갈무리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앞의 6개 항목을 아젠다로 하는 것에는 동의하십니까? 다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마무리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경기도 연합회가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전환에 대한 검토들을 저도 집중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우리가가 알고 있는 한살림 같은 곳에서도 전환에 대한 발표들이 요즘 나오고 있는 거 같고, 경기도에서도 경기 천년을 내다보면서 경기 천년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단순한 차원의 지역적 발전을 넘어서 문명 대전환에 대한 검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에 있어서도, 마을에서도 미래도시나, 사회구성을 하면서 사고의 대전환들이 되지 않는 부분이 쉽지 않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전환에 대한 논의들이 오늘 이 자리에 본격적으로 정리되면, 심포지움 같은 집중논의 되는 자리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