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 연 | 문화기획자
■ 마을학교축제로 시작한 세월초, 그리고 세월문화사랑방을 만들다.
본인이 양평 세월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2007년 양평지역 교육연극 교사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세월초등학교.
당시 세월리는 많은 농촌의 마을이 그렇듯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가는 마을이었고, 이 마을에 위치한 세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0여명이 안되어 분교, 폐교 논의가 몇 년째 반복되는 학교였다. 동문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장학금도 마련했고, 교회 목사님이 차량운행으로 등교를 도왔지만 재학생을 늘리기에는 한계였다. 그러던 와중에 양평지역 교사들 사이에 학교의 교육을 새롭게 만들어보자는‘작은 학교 운동’이 있었고(현 ‘혁신학교’의 전신), 세월초등학교는 양평지역의 첫 번째 학교가 되었다.
2008년 세월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 기획했던 행사‘세월마을학교축제-달님과 손뼉치기’는 일 년 동안의 교육과정이 축제에 묻어나고, 마을의 이야기가 축제가 되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에는 낯 설 수 있는‘마을학교’를 내걸었던 것은 몇 몇 농촌학교에서 ‘오케스트라’, ‘골프’등 특별수업 수강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 왔다가 학교 지원이 끝나고 나면 떠나가는‘기러기’같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촌에서 학교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전학을 오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마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계속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마을과 학교는 불가분의 관계라 여겼다.
2008년의 다양한 문화예술교육과 축제는 학교와 학부모, 마을 주민 모두의 노력으로 성황리에 끝났고 이 과정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세월초등학교 학생 수는 4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처음 교사들과 본인이 함께 이야기했던‘마을학교’ 의 실현은 쉽지 않았다. 외지에서 온 학부모들이 마을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매우 드물었을 뿐더러 마을에 그들이 머물 집도 부족했고, 잠시 마을에 살다가 10Km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에게 세월초등학교 학생들은 예전처럼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의 아이가 아닌 낯선 가족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예의 없는 행동들은 마을의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2013년 이 과정을 지켜본 몇몇 교사와 학부모, 본인은 학교의 과제를 넘어 함께 논의하는 모임 “세월모꼬지”를 만들었고, 학부모들과 함께 하는 ‘나눔장터’를 마을에서 진행하며, 주민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기도 하고, 옛날 영화를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마을회관 2층이 거의 비어있는 것을 보면서 이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학부모와 학생, 마을 주민의 교류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2014년‘세월문화사랑방’이라는 공간을 만들게 된다.
■ 세월리 생활문화 플랫폼 “세월문화사랑방”
△‘세월 문화사랑방’
세월리 강상면에서 일 천만원 지원을 받아 학부모들이 직접 공사를 진행하여 2014년 6월 세월리 마을회관 2층에 ‘세월문화사랑방’이 시작되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사람의 기부를 받은 책장과 책,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을 수 있는 작은 부엌, 손수 제작한 책상,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남긴 벽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빔 프로젝트 등으로 채워졌다. 13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초등학생들의 놀이터, 초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이 마을에 일찍 돌아와 머물 수 있는 휴식 공간, 학부모들의 모임, 마을 주민들의 배움터이자 회의공간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우리에게 “세월문화사랑방”은 세월리 마을 주민들과 세월초등학교 학부모, 아이들을 이어주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2014년 개관 초기에는 사랑방을 24시간 오픈하였다. 마을회관은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당시 이장님의 제안을 따른 것이었고, 개인이 물건을 잃어버려도 그것 또한 마을의 일이라는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세월모꼬지 인원을 중심으로 외부 프로그램 지원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 학부모 달인 프로그램, 마을 주민을 위한 천연비누, 천연치약 만들기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였고, 초기 시작했던 ‘달시장’을 정례화 하였다.
그러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수적으로 많지 않은 학생들과 마을주민들 안에서 수강 인원모집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공간을 함부로 이용하는 아이들로 인해 공간이 난장판이 된다는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운영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원봉사로 공간을 지킨다는 것이 주민들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생각에 공간이 좀 더 유연성을 갖기를 희망하였다. 이러한 생각 끝에 고안한 방법은 사랑방에 번호키를 설치하고, 주민들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이제 개관 이후 4년이 되면서 ‘세월문화사랑방’은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시간 진행된 학부모와 주민의‘우쿨렐레’, ‘가죽공방’수업이 동아리가 되어 주 1회 모임을 갖고 있고, 학부모들이 만든 ‘손바느질’동아리까지 일주일 중 3일은 학부모 동아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매 주 금요일에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번개 간식방’을 운영하면서 세월초등학교 아이들이 ‘세월사랑방’을 맛난 간식을 먹으며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월 1회 마을 이장 및 운영진들의 마을회의가 이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진행된다. 이 회의에 함께 참여하는 본인은 학교의 소식들을 전달하며 마을과 학교의 다양한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세월초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은 이 공간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간식을 만들어먹기도 하며 조금씩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세월 문화사랑방’모임
■ 농촌 마을의 생활문화 플랫폼 ‘사랑방’
2015년 생활문화정책이 확장되면서 생활문화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플랫폼은 유형일수도 있고 무형일수도 있다. 본인이 경기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지원 사업으로 펼친 ‘강상 산중마을 징검돌’프로젝트는 지역의 예술가 및 생활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역의 예술가들이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무형의 플랫폼 역할을 하였다.
한편, ‘세월문화사랑방’은 ‘생활문화 플랫폼’정책 이전부터 마을과 세월초등학교 학부모들의 관계가 밀접해 질 수 있도록 지역의 공간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면서 자발적 모임으로 출발하였다. 때문에 외부환경을 새롭게 구축하기보다 현 상황에서 유연한 운영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유형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끔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세월문화사랑방’을 시작으로 마을과 다양한 소통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으로 2015년 세월리의 ‘행복마을 만들기’사업과 맞물리면서 마을 청장년들은 아이들을 위한 썰매와 썰매장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2016년 콘테이너를 개조해 제작한‘달빛 갤러리’를 에서 팔순이 되신 짚풀 할아버지 임경재옹의‘짚풀공예전’을 개막전으로 시작해서 ‘세월 옛 사진전’을 열기도 하고 지역예술가 작품, 주민 작품, 아이들의 작품 등을 전시해오고 있다. 또한‘달리는 피아노’사업단의 찾아가는 공연을 초청하며 후원 되어진 ‘공유의 피아노’를 마을회관 앞 정자에 놓아 주민들과 아이들이 종종 지나가며 연주를 한다. 그리고 2016년 마을 주민들의 자전거 및 버려진 자전거들을 수리하여 ‘세월 달시장’에서 저렴하게 판매를 하기도 하였다. 매년 ‘신나는 예술여행’을 통해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전문예술단체의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작년에는 외부 단체에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드리는 행사를 하였고,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다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세월초 운동장에서 ‘마을운동회’를 열어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세월초등학교와 세월모꼬지, 세월리의 활동은 다른 농촌 체험마을 만들기와 달리 일상 속에서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 고집 센 어르신들도 함께 놀다보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어울림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생활 속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외부활동들이 매개 되는 것이다.
△ 세월리 얼음 썰매 만들기
△ 세월리 마을 운동회
■ ‘사랑방’은 공간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매개를 만들어준다.
1990년~2000년대 지역문화정책이 생기면서 중소도시 곳곳에서 문예회관이라는 하드웨어가 생겼다. 그러나 점차 그 곳은 공간만 있고 운영에 대한 지원의 부재로 비어있는 공간이 되어갔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확장되기 시작한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어내면서 문예회관과 지역의 여러 단체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역마다 있는 문화원들도 2000년대 지역문화 활성화 속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역문화조사를 수행하거나 지역예술가들의 예술프로그램 공간을 넘어서 점차 현 시대의 문화를 읽어내고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민간단체들 중심으로 기획 된‘우리 집에서 걸어가는 거리에 만들자’라는 작은 도서관 운동은 2012년 작은 도서관 진흥법의 재정으로 확장되어지고, 몇몇 작은 도서관은 단지 책 읽는 공간이나 학습공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생활문화플랫폼 공간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몇 년 사이에 문화예술은 커다란 하드웨어 공간만이 아닌 가까운 일상 속 소소한 문화의 필요성으로 확장되었고, 다양한 문화 공간들이 그 역할을 만들어 내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한편 이 공간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사람’이다. 일상 속 공간, 자발적 운영을 내세우다보니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주민들의 자발성과 지역마다의 특수한 환경을 읽어내어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해야하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작은 문화 공간 존재여부의 중요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엮어내는 사람의 역할이다. 비어있는 공간, 혹은 운영자와 참여자가 이원화 되어있는 공간이 된다면 이 공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계속적인 환경 개선과 서비스만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많은 정보가 오가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벌어질 때 지역 공간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늘어나며 불만족의 목소리만 커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방’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운영하게 되기까지에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주민들의 필요와 공감을 읽어내고 그들 스스로가 그 역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해줄 수 있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그들의 제안을 조율 할 수 있으며 그들의 관심이 확장되도록 사고를 키워줄 수 있는 운영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변화되어가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본인이 ‘세월’에서 하는 역할도 그것이다. 마을사랑방의 놓치지 말아야 할 주요한 목표는 마을과 학교, 학부모들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가는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사랑방’이다. 그 사랑방이 어느 한 편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각자가 공간의 필요를 공감하며 활용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과 학부모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수렴하고 활동들을 조율하며, 새로운 일들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거나 지원해줌으로써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그 가능성은 한 번의 경험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본인의 생각과 차이를 느끼며 이해해 가기도 한다. 그 하나가 피아노를 야외에 두는 것에 대한 찬반 문제이기도 했고 청소년들의 공간 활용에 대한 생각의 차이이기도 했으며 사랑방을 학교 공간으로 오해하는 양자의 생각을 이해시키며 끊임없는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였다. 이런 시간을 통해 마을‘사랑방’은 단지 프로그램을 하는 공간이 아닌 주민, 학부모들의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주민 주체로 운영되는 세월리 ‘사랑방’
■ 마을 속 생활문화플랫폼
농촌의 어느 마을에나 다 있는 것은 ‘마을회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을회관은 노인들의 경로당을 주 역할로 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중소도시에서는 주민자치센터 공간들이 새롭게 바뀌기도 하고 곳곳에 작은 도서관들이 생기기도 했다.
인구에 비례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에 있었던 공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새로운 공간들에 공공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공간들은 주민들의 관심과 멀어져 있으며 몇몇 사람들의 전용공간이 되어있다.
본인은 ‘생활문화플랫폼’의 주 역할은 주민들의 소통을 확장시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소통의 확장 속에 생활문화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교육 강좌로서만 활용 되었지만 이제 ‘사람’으로 만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필요와 관심이 반영되고 그것이 확장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만남과 소통이 일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을의 생활문화가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만남과 소통과‘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들의’ 생활문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생활문화플랫폼은 마을 곳곳에서 크고, 작게 생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