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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문화원 없는 문화의 시대
윤 한 택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



오늘

k-pop이 문화 발신지 파리에 상륙하고, 겨울연가가 제국 일본열도를 울리는 요즈음이다.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훈민정음이 세계기록유산에 오르는 시대이기도 하다. 세계 10위 대의 경제 강국에서 명실공회 문화 강국의 꿈을 향하여 가고 있는 양상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한민족 생활공간의 기초 단위는 삼한 소국 이래 신라·고려·조선 왕조의 군현, 근현대의 시군으로 이어진 현재의 기초지방자치체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 현대사에서의 일선 문화일꾼 자리에 바로 문화원이 서 있다. 
이런 문화원은 지방문화의 진흥과 지방문화원의 균형발전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역고유문화의 계발, 보급, 보존, 전승 및 선양, 향토사의 조사, 연구 및 사료의 수집, 보존, 지역문화행사의 개최, 문화에 관한 자료의 수집, 보존 및 보급, 지역문화발전에 관한 교육문화활동, 지방문화원 종사자의 자질향상, 지방문화원간의 상호협조 및 공동이익증진을 위한 연수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기도에서는 연간 기관지 <<경기향토사학>>을 발간하고, 경기지역 민요, 고전문학, 능원, 서원 등 자료를 연차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 향토와 해외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경기도 민속예술축제, 청소년 민속예술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문화사업 종사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합동연수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선 문화원의 지속적인 문화 사업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문화 강국으로의 발돋움이 가능하게 된 것은 당연하겠다. 그런데, 정작 일선 문화일꾼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왠지 그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산, 사업, 조직 모두가 열악하여 이른바 한류란 지역문화의 저변과 동떨어진 먼 자본 세계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발자취

우리 현대사에서 문화원이 어떤 존재인가? 구 일본 제국에 대신하여 팍스 아메리카나의 조류를 타고 이 땅에 상륙한 세계자본주의 첨병 미군정의 파트너로서의 지역 파수꾼이 아니었던가. 이만하면 전통문화와 근대 문명이 만나는 모세혈관이자 전초기지로서의 자격을 공인받은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 지위는 제 1공화국, 한국전쟁, 전후 원조경제체제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세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냉전체제의 일정한 변화와 내부 독재 정권의 붕괴에 이은 민주화 운동과 군사 정변은 외자주도형 개발정책으로 방향을 선회시켰다.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군사 정권은 그 지역 하위 파트너로서 좀 더 색다른 나팔수가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광범한 예술단체의 조직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기존의 문화원은 그나마 역동성을 예술단체에 넘겨주고 점잖은 지역 신사로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몰고 온 외형적 성장 정책은 예의 양극분해를 동반한 소외층의 지속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기존의 전통은 파괴되고 마당이 사라진 곳에 다시 판소리, 탈춤 등 민족예술 부흥운동이 자리 잡아갔다. 이 흐름은 외형상 기존 예술 운동에 대한 안티 테제, 영역 분점의 양상을 띠었지만, 그 내용상 민족정신을 담지하던 문화 운동에 대한 도전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문화원의 정신 줄마저 이제 온전히 보전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어갔다. 
현실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따른 전일적 세계화와 내부 군사독재정원의 붕괴에 따른 민주화, 곧 이은 지방자치화의 진행은 변화된 지형에 걸맞은 문화 운동 조직으로 문화의 집, 문화연대, 문화재단 등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제 지방 유지로서의 지역사회에서의 조직적 텃밭조차 내어놓아 급기야 문화원 없는 문화의 시대를 초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존립의 근거인 지역의 중요성은 반대로 더 커져 그 터줏대감으로서의 문화원 위상의 진정성에 대한 요청도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대는 달려가는데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생활양식의 단위로서 기존의 국가란 자리를 대신하여 새롭게 ‘지역’이 부각되게 된 데에서 집약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일군의 미래학자, 문화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국민국가’의 쇠퇴와 ‘창조도시’의 등장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를 지탱해왔던 국민국가 체제가 동요하면서 새로운 지역 단위의 창조도시가 진화해오는 과정을 크게 3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첫째, 초국적 자본에 의한 수직적 세계분업체계가 기존 선진국 중심부의 공동화를 가져오면서 주변 지역의 중요성을 증대시키고, EU 등 블록화가 이 경향을 촉진시킴으로써 각 도시 사이의 수평적 네트워킹이 확대되고 있다. 
둘째, 중앙집권적 관료기구의 비대화에 따른 경직성의 증대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지나친 민영화가 기존의 복지정책의 후퇴를 가져오면서 시민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셋째, 산업의 하이테크화, 정보화, 소프트화에 따라 기존의 소재 중심 산업의 소품종 대량생산에 걸맞던 포디즘에 대신하여 포스트 포디즘적 조직 경영, 문화지향형 산업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휴먼스케일의 공방형 기업이 지역 단위의 네트워크형으로 결합하는 다품종 적량 생산의 유연한 산업 커뮤니티가 주목받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세계화, 지방자치화란 산업사회로부터 후기 산업사회, 문화의 시대로의 이행, ‘국가’ 단위로부터 ‘지역’ 단위로의 생활양식의 이행, 지역학 내지 지역문화로의 세계관의 이행 바로 그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행 과정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의 주역인 초국적 자본은 오로지 자기의 존립을 위하여 국경을 초월하면서 무엇이든지 해체하여 편입시키지만, 결코 자기의 국적을 초월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난 세기까지의 과학문명이 이룩해 놓은 성과를 바탕으로 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과정은 전체 인류사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약탈적 성격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약탈적 성장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면서 인류사를 한 단계 더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자체 내의 창의성을 찾아내고 이를 고양하여 여러 이웃과 공유하면서 적정한 덩어리를 만들어나가는 선한 이웃의 길을 모색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개별 지역은 그럴 만한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가? 생생하게 살아있고 그럼으로써 상대방도 살리는 힘을 내장한 생동적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민족은 근대 문명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일제를 비롯한 서구 열강에 의해 타율적으로 강제 당하면서 근대 이전에 존재하던 주체적 생명력과 근대로의 지향의 자생적 움직임을 말살 당해 왔다. 
그리하여 이제 세계화 시대, 문화의 시대를 맞아 이전 시기 세계 도시 뉴욕, 런던, 동경과 아울러 서울로 상징되는 약탈적 성장 구조의 한계를 돌파하여 창조적 균형 체계를 구축해가기 위한 대안적 지역별, 산업별 연합체의 하나로서 개별 지역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것이 긴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행하고 있는 미래 세계관의 바탕인 지역학의 대상은 문화적 개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별, 산업별 연합체, ‘수평적 지역 네트워크로 연계된 문화산업 커뮤니티’, 창조도시이다. 그 속에서의 의식주 등 생활, 예술, 정신 등 구체적 삶을 포괄하는 가장 추상적인 세포 형태는 자본제적 ‘약탈적 성장’의 단위인  ‘상품’을 대신한 ‘창조적 균형’의 단위로 된다. 
그 실체는 경제와 환경을 고려한 지역문화 소우주인데, 그 속에서는 국가의 문화, 세계의 문화, 전통문화, 현대문화가 서로 융화, 공명, 상생하면서 미래를 지향하고 품격과 매력을 높여 간다. 
여기서는 예술가와 과학자가 자유로운 창조 활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노동자와 기술자도 노동을 통하여 자기 삶을 실현시킴으로써 자기혁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며, 전체적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서민 수준의 일상생활을 예술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제도적으로는 도시의 과학과 예술의 창조성을 지탱하는 대학, 전문학교, 연구기관, 극장, 도서관, 문화시설 등과 각종 기업의 권리를 옹호하고 신규 창업을 용이하게 하며 창조적 일을 지원하는 각종 협동조합과 협회 등 비영리섹터가 광범하게 확충된다. 
정책적으로는 도시 주민의 창조력과 감성을 높이는 도시경관을 조성하고, 개성적인 문화적 지역을 지탱하는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등 산업정책과 문화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문화원도 새롭게 자신을 추스르고 신발 끈을 조여 왔다. 대표적으로 문화원 개관 60주년을 맞은 2007년에 대한민국 224개 지방문화원 임직원 명의로 발표된 문화비전 선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2007 문화비전 선언
문화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는 문화시대에 살면서 세계인과 한 가족으로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할 책무를 지닌다. 
지방문화원은 전통문화예술의 발굴과 육성, 문화예술교육 기회의 제공, 문화자원의 확보와 활용에 앞장서 온 지역문화발전의 주역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제 인간의 창의성 계발, 우리 문화의 세계화, 지방분권화에 따른 문화적 책임 등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 새로운 문화환경을 선도하는 문화원이 되기 위해 역할의 재정립을 가다듬어야 한다. 
지방문화원은 도약을 다짐하는 뜻에서 ‘문화원의 날’을 제정하고 우리의 공고한 의지를 모아 다음과 같이 실천할 것을 선언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여러 문화 주체들의 힘을 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이 시대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식정보와 다문화 시대의 매개자가 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문화 소외층이 없도록 함께 나누며 찾아가는 문화 활동을 펼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일회적 · 단기적인 사업을 지양하고 지속적·장기적인 활동을 추진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을 문화경영의 전문조직으로 적극 육성한다.

이를 기념하여 이근배 시인은 다음의 축시를 헌사하고 있다. 


찬란한 아침이여! 문화의 새날이여!

더 높고 더 푸르른
이 나라의 가을하늘이어라
세종임금 한글 지으신 오백예순 한 해
21세기 IT시대에 세계가 우러르는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문자
한글의 달, 시월상달, 문화원의 날에
오늘 이 땅의 문화를 가꾸고 지키는 
전국의 문화인이 한 자리에 모여
문화비전 선언을 터뜨리는 날이어라

보라
오천년 역사 줄기줄기
백두대간 굽이굽이 맥맥히 혼불로 타오르고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문화예술의 금자탑들을
고구려 벽화에서는 광개토대왕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와 대륙을 호령하고
첨성대, 석굴암대불이
하늘과 바다에 신라의 금빛을 뿌리니
운주사 미륵와불이 백제의 꿈을 일으켜
자유, 평화의 새 천지를 여는구나

그렇다
이 나라는 세종대왕의 나라, 고려청자의 나라
팔만대장경의 나라, 금속활자의 나라, 거북선의 나라
조선 백자의 나라, 솔거의 나라, 김생의 나라
원효의 나라, 이규보의 나라, 춘향전의 나라
흥보가의 나라, 사임당의 나라, 허균의 나라
김홍도의 나라, 정약용의 나라, 김정희의 나라
여기서 나라가 일어서고
여기서 백성들을 살찌우고
여기서 외적들을 물리치고
여기서 인류에 앞서가는 슬기를 뿜어왔어라

문화는 나라를 세우고 겨레를 낳고
역사를 만들고 정치를 바로 세우고
경제를 북돋우고 자유와 평화를 꽃피우나니
문화는 행복이다, 사랑이다, 통일이다

오늘 우리 지지 징징 징을 치고 북을 울리자
오래 참아온 신명의 한 마당
둥게 둥게 우리말이 우리글이
우리 가락이 우리 슬기가
지구촌에 가득 넘치도록 한류의 하늘
한류의 바다로 밀어 올리자
지구촌에 우뚝 서는 문화예술의 나라
문화예술 겨레로 높이 높이 솟아오르자    



시인의 말대로 그렇다! 바야흐로 IT의 시대이다. 문화는 나라, 겨레, 역사, 정치의 바탕이며, 자유, 평화, 행복, 사랑, 통일이다. 백두대간 오천년 역사의 혼불이다.  
특히나 문화의 시대는 입자에서 파동으로, 굴뚝산업에서 지식산업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유형에서 무형으로, 산업의 원심력에서 문화의 구심력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커다란 전환기이다. 그 귀결은 지역네트워크형 산업커뮤니티 형성으로 될 것이다. 

그 곳에서는 문화와 산업, 예술과 경제의 결합, 지역고유의 산업자원과 문화자원의 결합을 통한 사업의 전문화, 다양화, 재정의 다변화, 자립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조직적으로는 문화원, 예총 등 문화 기관, 상공회의소, 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단체, 시청, 교육청 등 관청, 지역 소재 대학교 등 학교가 결합된 문·산·관·학 네트워크의 형성을 통하여 지역 발전과 통합의 전망을 공유하고 적절히 분담하는 명실상부한 지역 일선 일꾼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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