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6일 경기형토문화연구소 워크숍에서 경기향토문화연구 네트워크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1. 들어가며
좌장 윤종준
지방문화원은 축제, 발간사업, 학술회의 등 다양한 목적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을 중추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곳은 지방문화원의 향토문화연구소이다. 그런데 향토문화연구 사업을 수행하다보면 여러 가지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다. 지자체의 재정이 열악한 경우가 있고 문화원장이 향토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차체 단체장이 향토사의 중요성을 모르기도 한다. 가끔은 지차제의 예산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지방문화원의 역량이 부족하여 사업을 수행하지 못해 연구가 정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가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한다면, 그 대안 중의 하나는 각 지역별로 네트워크 형성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지역의 향토문화연구의 네트워크 활성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진행하겠다.
2. 동두천향토사의 현황과 문제점
이명수
동두천향토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역의 문화유적지가 훼손 되어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관련 조사가 미비하거나, 왜곡된 것들이 있다. 그 사례들을 알리고자 한다.
첫 번째로 동두천 걸산동에 김좌진 참모 역할을 했었다는 김승록의 공적비가 있다. 독립열사로 1989년도에 시로부터 6백만원 예산을 받아다가 김승록 공적비를 만들고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래서 이 분에 대한 조사를 해봤더니 자료가 없더라. 제가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조사 위원이여서, 자료를 찾아봤다. 김좌진 장군의 참모 명단에 김승록은 없더라. 이 분에 대한 조사가 더 진행되어야 한다.
미2사단 영내에 고려 시대의 오층 석탑이 있다. 이는 원래 서울에 있었는데, 1963년 당시 미 7사단 통역관이었던 루이스장이라는 목사가 한미 우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 7사단장 데이비드 그레이스 소장에게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엔 우리나라가 문화재와 유물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일이다. 이제는 환수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석탑 하단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데 복원도 이루어져야한다.
동두천의 대표적인 인물로 정장공 어유소(魚有招1434) 장군이 있다. 조선의 무관이었는데,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적개공신으로 예성군, 이조판서, 병조판서,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며, 많은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향토유적 제 1호인 어장군의 사패지 경계석이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있다. 성종이 어장군과 사냥을 즐기다가, 어장군의 뛰어난 궁술에 감탄한 성종이 현재의 동두천 시 일대를 사패지로 하사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문인석(文人石)을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문인석을 내려 주는 예는 없다. 전쟁 문화와 아무 관계도 없는 문인석을 잘못 옮겨 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장군을 기릴 수 있는 생가터 복원이나 기마동상 건립, 관련 연구 활동은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소요산과 관련된 유적, 기념물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소요산 매표소 건너편에 독립유공자 추모비가 있다. 독립유공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당시 동두천시장(市長)을 비롯하여 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60년부터 70년대까지 소요산 남쪽 건너 산에 규석(確石:유리원료)을 채석하는 과정에서 소요산 원형이 훼손되었다. 채석하다 남은 크고 작은 돌무더기들이 여기 저기 흉물스럽게 흩어져 등산객들의 안전에도 위험스럽게 놓여있다. 소요산성(山城)복원과 함께 안창말 원각사 뒷산으로 등산로 개설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조선 27대 순종의 윤비(尹妃) 생가, 마차산 봉화(峰火)터와 보루(堡壘), 태조 이성계가 물을 마셨다던 우물터 등 아직 묻혀져 있는 유적과 유물이 많다.
동두천의 문화재가 묻히고, 잊히고 왜곡되고 있다. 동두천문화원 예산이 1년에 3~4억이다. 시 규모 대비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행사 성, 보여주기 식 행사다. 지역 역사의 활성화를 위해 활용 가능한 발굴 자원 조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두천의 문화유산 보존 방안과 전반적인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두천시는 전철과 함께 수도권의 일일 관광권으로 각광 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소요산성을 비롯하여 관광 자원의 상품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 많다. 제대로 된 고증과 방법으로 역사 현장을 복원함으로서 지역 경제도 활성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두천 문화원이 이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동두천 문화원은 학문과 학술을 연구하며 장려하는 단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좌장 윤종준
이명수 소장님께서 동두천의 향토사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아마도 다른 지역 역시 이러한 문제점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되는데 다른 지역의 향토문화 현황은 어떤가?
엄중오
왜 활성화가 안 되는지, 지역에 따라 잘 되고 잘 안 되는지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해봤다. 제가 살고 있는 남양주를 비롯해서 인근 지역을 볼 때 재임기간에 있는 문화원장의 마인드와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정해져 있는 예산에서 단 얼마라도 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문화원 관계자들이 일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명수
동두천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된 극장인 동광극장이 있다.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기 드라마 촬영을 이 극장에서 했다. 그런데 정작 지역에서는 이 극장에 대한 관심이 낮다. 문화원과 지자체장, 시민들 모두가 지역에 관심이 많아야 이런 시설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동두천에 있는 지명들만 봐도 엉망이다. 마차산 표지석을 보면 ‘차’자의 한자를 깍지낄 차(又)인데 비녀차(致)자를 새겨 넣었다. 여러 차례 시에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이다. 지명위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좌장 윤종준
동두천 향토문화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두고 이명수 소장이 홀로 각개전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지역향토문화연구의 의미와, 향토사학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강범 부소장이 발표하겠다.
3. 지역향토사의 의미 및 향토사학자의 역할
이강범
제가 이 주제로 발표를 하는 것이 주제에 넘는 일 같다. 직접 관여했던 연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다. 문화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문화란 자연과 인간을 매개로 인위적 작용을 가해 새롭게 창조해 낸 생활방식의 전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역향토문화의 연구는 지역에서 일어났었거나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생활방식 전체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분야라고 할 것이다.
향토문화의 연구는 대개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에 의하여 시행되며 그 대종은 향토사학(鄕土史學)이다. 일찍이 역사를 잊은 민족을 두고 처칠은 ‘미래는 없다’라고 했고 신채호 선생은 ‘재생 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쳐 472년간 조선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별로 기록함으로써 역사의 중요성을 왕실 스스로 인정한 증거이다. 이렇듯 역사가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인간이 경험한 과거의 전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시대에 따른 인간의 제반 행위를 탐구하고 서술하는 노력의 일환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구체적으로 역사와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면 항상 후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를 논할 때는 과거의 인간행위를 대상으로 하게 되는데 그 대상을 직접 우리들이 지각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항상 남아있는 기록문서나 가요, 구비전설(口碑傳說), 회화, 유물 등의 사료(史料)를 근거로 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료는 대개 역사의 현장에서 발견되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행위가 이루어 진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곧 지역 향토사이며 향토사에 가장 밀접하게 관여하고 연구하며 경험한 사람이 향토사학자인 것이다.
이렇듯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첫째의 목적이 인간의 자기인식 즉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위한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무었을 할 수 있겠는가를 알게 되고 또 과거의 역사적 실패를 거울삼아 또 다른 과오를 방지하고자하는 교훈적 대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따라서 향토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지역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연구하는 것이요 이를 기반으로 지역민의 자신감과 긍지를 심어주어 애향(愛鄕)의 토대를 설계하는 것이고 올바른 역사를 확립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어 하남시의 향토사연구를 통한 지역 정체성 확립과 향토사학자들이 나아갈 방향과 역할에 대하여 말씀드리겠다.
지역 향토사 연구의 의미를 제 생각대로 말하겠다. 지역 정체성 확립의 보루다. 정체성이란 자기내부의 일관된 동일성(同一性)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과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하남시는 오래 전부터 ‘하남이 한성백제의 중심도성’ 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주민의 정서는 85년부터 시작된 지역 내 이성산성의 발굴조사와 88서울 올림픽을 위한 서울의 몽촌토성과 풍납동 토성의 발굴을 기점으로 풍납동지역이 백제의 중심도성이고 하남은 이와 관련이 없다는 사학계 주류의 중심사고(中心思考)의 이동은 지역 정체성에 중대한 혼돈을 초래하였고 지금까지도 정체성의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뜻있는 학자들과 하남문화원 그리고 향토사학자를 중심으로 한성백제 중심도성의 역사적 위상회복과 정체성 확립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하남시 향토사 연구는 백제건국과 도성변천사를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사학계가 백제 중심 도성을 서울로 옮겨가져 갔는데, 이것이 아니라 하남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연구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관내 백제 관련 유적 답사를 시작으로 전문가들과 함게 국내외의 백제 유적 답사를 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있다. 하남문화원에서 ‘한성백제의 도성은 하남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최근의 주제는 2010년 백제지명(百濟地名), 2011년 이성산성(二聖山城), 2012년 고대신앙(古代信仰)과 백제불교(百濟佛敎), 2013년 백제인(百濟人)의 삶, 2014년 하남의 불교유적(佛敎遺跡), 2015년 하남의 발굴(發掘) 백제유적(百濟遺跡)이다.
또한 매월 하남향토사연구 회의 진행, 하남 정체성 관련 도서 발간과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제가 여기 계신 연구위원들에게도 드린 적이 있는 발간물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라는 책은 2014년 하남과 관련한 지역 및 일본, 중국 등의 유적 답사기와 하남이 한성백제도성의 중심이라는 2편의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
작년에는 하남문화원 주관으로 이성산성(二城山城)과 기쿠치성(鞠智城)에 관한 한일 국제 학술세미나 개최했다.
제가 하남 정체성과 관련한 연구 현황에 대해 말하겠다. 도미나루의 위치와 한산의 소재도 규명했다. 그리고 백제 초도는 남한산성임을 규명했는데, 금년에 제출할 경기향토사학 논문과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 부존재(否存在)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다. 자세한 내용은 드린 자료를 참조해달라.
우리가 향토사를 연구한다고 하지만, 기존 사학계 주류들의 연구보다 내가 깊이를 더 하여, 그 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는 논문을 써서, 뛰어넘어보자는 것이 목표이다. 그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북위례성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다산 정약용 선생이 주창을 해서 이병도 학사가 이어받았다. 역사의 주류 사학자들의 대부분이 이거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제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하북위례성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향토사학자들은 기존의 사학자들을 꼼짝 못하게 할 몇 가지 방법론을 토론 시에 시간이 되면 제시하겠다.
좌장 윤종준
하남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가 발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활기를 띠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강범 소장님께서 이끌어 가신 후 부터는 더욱더 활성화 되고 있다. 하남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유물, 유적들이 있는데 본격적으로 시민들에 알리는 많은 사업을 하시는 것 같다. 다음은 김장환 용인문화원 국장이 발표하겠다.
4. 문화원형과 지역특성화를 연계한 문화콘텐츠
김장환
이명수 소장님이 문화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문화원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난처하다. 향토문화연구소는 문화원의 얼굴인데, 향토문화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문화원들이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 문화원형을 소재로 발굴하고, 그것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문화원형에 대한 개념을 먼저 말하겠다. 문화원형은 본디 모습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originality 또는 archetype라고 한다. 이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원형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변화지 않는 불변의 속성이 아니라 변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문화원형’이란 한 민족, 국가 또는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가운데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현상이다. ‘문화원형을 찾는다’, ‘문화원형을 발굴한다’는 것은 특정 지역의 정체성이나 고유성과 연계된 근원적인 형태의 문화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래’의 어원은 놀이이다. 놀이의 기본형은 ‘놀다’이다. 놀다-놀이-노래-노름 같은 어원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단어인데, 이 용어들의 어원을 찾는 행위가 문화원형을 찾는 것이다.
문화원형의 일반적인 특성을 말하겠다. 문화원형은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본디 모습, 원래 모습을 갖고 있다.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 전형성이 있다. 전형성은 본질적 속성이다. 전형성이란, 본질적 특성, 대표적 특성을 말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이나 민족적 범주 내에서 볼 때, 그 지역이나 민족의 특성을 잘 표현해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민족이나 지역과 차별화 되는 고유성을 갖고 있다. 즉, 본래적인 모습, 전형성, 정체성, 고유성을 갖고 있다.
문화원형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두 측면이 있다. 문화의 보편성은 인류 전체의 공감을 전제로 하는 글로벌 문화원형이다. 또한 특수성의 입장에서는 다른 민족과 차별되는 주체성과 민족 구성원 사이의 공감대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 민족 또는 지역 단위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불교는 세계인이 다 알고 이해하고 있는 종교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보편성이 담겨있다. 불교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형이 된다. 사유체계라던지 이론적 접근, 체계가 그 나라마다 독자성을 갖고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 불교, 태국불교 등으로 이야기 한다. 이것이 특수성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가 가장 큰 상품으로 각광받는 시대이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함께 문화의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문화원형을 발굴하여 문화콘텐츠 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의 발전뿐만 아니라 문화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문화원형 논의를 처음부터 주도한 곳은 문화관광부 산하의 문화콘텐츠진흥원이었으며, 논의의 의도는 ‘우리 문화원형’을 발굴해서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어 21세기 문화경쟁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산업적 효용가치를 끌어내는데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은 전통문화와 창의력을 바탕으로 무한한 시장 확대 가능성을 지닌 분야이다. 오늘날 우리문화에 기반을 둔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문화원형 콘텐츠는 관련 산업분야의 미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중요한 소재로 인식되고 있다.
향토문화는 어떻게 보면 가장 오래된 문화양식이므로 가장 현대적인 문화산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토문화는 가장 고유성이 많은 문화자원인 동시에 가장 활용성이 높은 문화산업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지역적 향토문화 자원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향토문화 자원은 콘텐츠의 무진장한 보고일 뿐만 아니라 관심만 있으면 언제라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이면서 고유성과 배타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지역의 정체성 확보와도 밀접하다.
용인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요 문화콘텐츠 사업을 소개하겠다. 포은 정몽주를 소재로 오페라로 제작하여 오페라 ‘정몽주’를 공연했다. 포은 선생과 관련된 연극, 뮤지컬도 제작했다. 포은 선생과 관련된 사업은 다양하다. 김윤후 승장이 몽골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한 의미를 살려서 처인성 연극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용인하면 떠오르는 말이 ‘생거진천사거용인’인데, 용인은 실제로 역사인물의 묘가 아주 많이 있다. 그리고 용인의 진산이라고 부르는 할미산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도 하고 있다.
저는 문화원형이라는 표현보다는 문화자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용인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역사인물 축제인 포은문화제가 있고 처인승첩의 의미를 살려 처인성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 역사를 널리 알린다는 입장에서 연극으로도 제작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 음력 7월에는 세시풍속인 백암 백중문화제가 열린다.
지역학과 관련하여, 용인향토문화연구소를 2013년부터 용인학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고 있다. 관내 6개 대학에 용인학 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행사 때마다 전국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운영하고 있는데, 문화콘텐츠를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도 용인의 특화사업으로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향토문화연구와 관련해서 용인에서는 구술생애사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는 5집 발간을 앞두고 있는데, 시대별 테마를 설정하여 관련 원로 인사를 섭외하고 그들을 인터뷰 하여 제작하게 된다. 가령 일제강점기 때 징용을 다녀오신 분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분들, 또 70년대 새마을운동 이야기 등 다양한 시대별 테마를 통해 그동안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증언을 통해 복원해보자는 취지로 진행해 오고 있다.
좌장 윤종준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향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연구위원으로서 향토사학자로서의 역할과 문화원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 그리고 문화콘텐츠와 관련해서 향토문화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럼 이제부터는 주제와 관련한 종합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5. 종합토론
최창근
용인에서는 구술생애사를 발간한다고 했는데 포천에서는 작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6명의 증언을 기록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 증언해주실 분을 선정하는 것이 어렵다.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해서 면담을 하는데 두 시간, 네 시간씩 면담을 한다. 현직 사학과 교수들과 함께 입회해서 녹음을 하고, 관련학과 대학원생들이 녹취 기록을 한다. 아직 자료 보관만 하고 책을 발간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김장환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선정했나?
최창근
교육계, 정치계 또는 행정 분야에서 새마을운동 현장에 계셨던 분들 등 다양하다. 포천 지역이 넓어서 60명 정도 인터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작년에 6명 진행했다. 앞으로 10년은 해야할 것 같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다.
김장환
용인의 경우 구술사 채록 사업을 5년째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10명에서 12명 정도 구술을 채록한다. 전문적인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자문을 구해서, 사업 시작 전 모든 면담자들이 교육을 받는다. 술적인 자문도 얻고 있다. 매년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그에 적합한 구술자를 선정한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등 주제가 다양하다. 작년의 경우는 사라져가는 직업을 찾아 기록했다. 정말 살아있는 역사를 보는듯하다.
김명희
구리의 경우,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들이 구술생애사 사업을 하고 있다. 용인처럼 주제를 정하고, 녹취, 기록, 최종적으로 수정을 하는 팀을 짜서 운영하고 있다. 연구위원들이 봉사하는 맘으로 거의 10년째 하고 있다. 물론 사전에 교수초빙해서 심화교육을 받았다.
좌장 윤종준
각 지역별로 주민들의 구술사 채록 사업은 최대한 빨리 서둘러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향토문화자원을 보존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성남의 경우는 10년 전 사진을 구하기도 힘들다. 얼마 전에 포천의 100년 전 사진이라는 책을 발간한걸 보고 매우 감동받았다. 이러한 사업들이 많이 추진되기를 바란다.
김명희
구술사를 녹취할 때 녹취한 그대로를 기록해야 하는데,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어떡해야 하는가?
김장환
그런 부분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전문가의 자문을 들어야하고 질문지를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구술자가 살아온 시대적인 연구를 한다. 구술의 내용은 영상을 함께 찍어서 그대로 보관한다. 다만 구술자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을 때는 전체적인 흐름에 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편집을 하기도 한다.
좌장 윤종준
그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오늘 토론의 목적은 향토문화연구소가 지역별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어떤 발전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논의이다. 각 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색있는 향토문화사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 또는 우리가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자.
하남의 집성촌에 대한 연구는 매우 좋은 것 같다. 성남에서 몇 년 전 인물지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조사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약 500명 정도를 예상하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6품 이상의 인물이 800명 정도 나왔다. 그런데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이름과 벼슬만 있고 내용이 없는 인물이 대부분 이었다. 경기도의 인물들을 조사해본다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될 것 같다.
다만 청백리를 기준으로 한다든지 등 어떠한 기준이 있다면 좋은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김명희
구리에서 사대부 문중에 대한 조사를 한적 있는데 각 문중에서는 자료를 내 놓으실 때 좋은 점만 기록해주길 원한다. 그런데 역사 기록을 하는 입장에서는 좋든 나쁘든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김장환
바로 그게 향토사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되지 않게 기록을 하되 그 문중에서는 껄끄러워 하지 않도록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한다.
좌장 윤종준
숨기고자 하는 문중의 마음은 용인이 되지만, 없는 사실을 부풀리는 것은 왜곡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할 것 같다.
이명수
역사의 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향토사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완곡하게 서술하는 게 운영의 묘가 아닐까
좌장 윤종준
이러한 자리가 마련되어 경기도의 향토문화가 더욱더 발전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나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의견을 나눠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장환
사실 피부로 와 닿는 부분을 말씀 드리자면 지역 간의 비교문화를 연구해보는 게 어떤가 싶다. 경기도내에 살면서도 서로 지역 간의 문화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경기 남부와 북부 권역별로 나누어서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좌장 윤종준
좋은 의견이다. 3.1운동 같은 경우에는 지역별로 거의 비슷하지만, 의병의 경우는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그런 경우는 권역별로 사진, 연구서, 유적답사를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올해로 명성황후 시해 된지 120주년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의병이 일어난 지 120주년인데 그런 의병에 관해서만 경기도에서 답사를 진행한다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또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 피난 갔던 일기가 발견되었다. 서울에서 여주까지 피난길을 답사하는 프로그램도 좋을 것 같다. 공동연구를 병행하면서 용인, 하남, 광주, 이천의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답사와 연구를 하는 것도 좋은 사업이 될 것 같다.
엄중오
남양주는 왕릉이 많이 있다 보니까 능을 연구하면서 답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강범
하남에는 ‘바댕이’라는 지명이 있다. 양수리 지역은 물길이 합류하니까 배를 세워 놓으면 빙글빙글 돈다. 그래서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게 버드나무에 묶어 놓는 것을 바댕이라고 하고 그 안쪽 마을은 속바댕이라고 했다. 바댕이를 한문으로 표기하려니까 한자가 없어서 팔당이라고 했다. 그래서 팔당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거다. 이러한 지명을 연구하는 일이 젊은 세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귀중한 재산이고 향토사학자들이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사무처장
공식적인 워크숍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가 어떤 맥락으로 아카이빙을 잘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방법과 연구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 지역과 경기도 차원의 향토문화 아카이빙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오늘 이 자리의 숙제로 남아있다.
김장환
미래지향적인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이것이 네트워크의 단초이다.
좌장 윤종준
이것으로 좌담회를 마치겠다. 모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