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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경계를 넘어 관객을 즐겁게 하는 공연예술
서 연 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지구촌의 공연예술과 관객

 교통수단과 매스미디어 같은 첨단과학의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온 지구에서 벌어지는 문화현상들을 빠르게 접촉할 수 있고, 자기 취향에 따라 문화를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일부 계층은 과거부터 전승되는 문화를 선호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은 새로 유행하는 문화에 감염되듯이 동화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지역과 지역, 인종과 인종, 분야와 분야, 장르와 장르 사이의 교류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온 세상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문화를 폭넓게 공유하고, 또한 디지털 매체로 소통하는, 이른바 글로컬시대, 디지로그시대에 살고 있다.

 2012년 10월 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그 일대에는 8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 1977-)가 공연하는 <강남 스타일>의 ‘말춤’을 보려했던 관중이다. 오늘날, 이른바 해외에서 한류로 통칭되는 K팝의 확산과 더불어 싸이의 이번 메가 히트는 ‘번지는 산불에 기름을 퍼붓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싸이의 국적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국적, 국경이라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의 노래는 온 지구촌의 호응과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노래가 얼마나 흥행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는 달리, 대중을 파고드는 폭발력이 놀랍다. 이번 싸이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 공연예술의 전파와 충격은 글로컬시대, 디지로그시대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공연예술은 현장에서 보아야 제격이다. 공연예술의 현장성이야말로 현대성을 표상하는 영상․복제시대에 대응하는 존재성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주위를 돌아보면, 영상․복제시대라는 개념도 그 범주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음을 또한 지나칠 수 없다. 복합과 융합의 기술과 정신이 발달하고 있다. 앞에서 디지로그에 주목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2012년 7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세계에 중계된 런던올림픽의 기억은 우리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특히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벌어진 공연예술은 예술 강국인 영국의 실력과 수준을 그대로 웅변하는 감동을 주었다. 우리가 런던의 현장에 참여했다고 해도 그렇게 사실적이고 생동하는 장면을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통신위성 디지털(CSD)이 이루어낸 글로컬의 놀라운 성과이다.
 
 이제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 전 세계의 ‘지구촌 공연’(스포츠 등), 또는 ‘지구촌 공연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지구촌 관객’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누려온 공연예술의 현장적 즐거움(이른바 아날로그식)과 더불어 통신위성 디지털에 의한 지구촌 관객으로서 새로운 차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공연예술의 실정

 날이 갈수록 우리 주변에서 공연과 공연예술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날 공연은 주로 공연예술을 가리켰다. 오늘날의 공연은 예술만이 아니라 행사, 축제, 이벤트, 발표회, 퍼레이드 같은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공연의 종류와 의미 역시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연은 예술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공연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 즉 기획자, 제작자, 공연장운영자와 관리자, 홍보담당자, 매표담당자, 영상관계자 등, 여러 전문가들이 종사하고 참여하는 분야가 되었다.

 공연예술에 대한 전통적 용어는 굿, 짓거리, 놀이(놀음), 재담, 연희다. 지난날 공연의 담당층은 서민이었지만 그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한자이든, 한글이든 자신들의 행위를 기록할 수 없었다. 서낭굿, 마당놀이, 탈놀음, 재담굿, 판놀이 같은 용어들이 그것이다. 교육을 받은 상류층은 공연내용을 한자로 기록했다. 노래하고(歌) 춤추고(舞) 연주하는(奏) 것을 연(演)이라 했고, 놀고 짓거리하는 것을 희(戱)라고 했다. 연희라는 용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잡기(雜技), 잡극(雜劇)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는데, 잡다한 놀이와 공연들을 지칭했다.

 공연 또는 공연예술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오늘날, 연희는 주로 전통적(전승적, traditional)인 공연예술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은 매우 혼란된 개념으로 사용된다. 전통 문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서양에서는 ‘훌륭하게 살아있는 문화․예술의 전승’을 유산(heritage)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공연은 퍼포먼스(The Performance)라는 용어와 더불어 매우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그 범주가 지구촌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또한 공연예술은 퍼포밍 아츠(The Performing Arts)라는 용어와 더불어 전통적인 장르와 첨단적인 장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공연예술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도 지나칠 수 없다. 공연과 교육, 공연과 매스 미디어, 공연과 콘텐츠, 공연과 이벤트, 공연과 문화관광 등은 상호 밀접한 관계다. 공연은 청소년들의 학교수업 보충교육으로서, 나아가서는 일반인들의 사회교육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문화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아울러 이런 프로그램은 공연의 발전에 기여한다. 공연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보급되며, 매스 미디어는 공연을 통해 풍부한 내용과 가치를 발휘한다. TV, DMB, CD, DVD 같은 매스 미디어가 방영하는 작품들을 상기해 보기 바란다.

 모든 공연은 콘텐츠 개발의 원형이자 원동력이며, 콘텐츠는 공연을 통해 새로운 내용을 충족시킨다. 만화, 캐릭터, 애니메이션, 게임, 디자인 같은 것이 그 사례다.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특별한 공연’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이벤트는, 현재 문화산업적인 축제를 일컫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이벤트의 내용은 대부분 공연으로 이루어진다. 춘천마임축제, 지역특산물축제, 새 자동차전시, 패션 쇼, 아트 마켓, 스키장 개장식, 경복궁의 조선왕조회례연의 재연 같은 이벤트들이 이에 속한다.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현지에 도착하면 그 지역의 전통공연들이 여행자들을 관객으로 맞이한다. 가장 짧은 기간에 한두 번의 공연으로 현지의 문화적 특색을 감지하게 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공연이다.

전통과 창조

우리는 전통문화를 문화재(文化財)로 관리, 응용해왔다. 문화재에 대한 국가적 보존과 보호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전통, 특히 정신문화와 비(非)물질문화의 성격이 짙은 문화재의 국가보호는 ‘법규에서 제외된 문화재’들에 상대적인 차별을 갖게 하는 반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덜 중요한 문화’라는, 일반인들의 차별의식은 끝내는 숱한 문화재들을 망각케 하고, 생활 속에서 사라지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문화재 보존의 정책이 필요한 데는 이런 사유도 공존한다. 여기서, 지정문화재만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는 비지정문화재들도 전통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1964년에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이 공포되었고, 그해 연말부터 중요무형문화재의 지정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지정사업은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전통문예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거국적인 노력의 일단을 시사한다. 중요무형문재 지정은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양주 별산대놀이, 남사당놀이, 갓일, 판소리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형문화(물질문화)에 대하여 무형문화(비물질문화)는 그 문화를 전승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곧 문화재인 셈이다. 문화기능론에서 래드클리프-브라운(Radcliffe-Brawn, A. R.)이 지적한 대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기능적인 역할과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기예능 보유자(保有者)로 규정했다. 개인이든 단체이든, 보유자는 전통문화 전승의 주체로서 교육과 공연과 이론연구를 실제로 실연(實演), 실천(實踐)하는 기능인이다.

 무형문화재는 말 그대로,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실연(實演)을 통해서만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무형의 문화’이므로 원형(原型) 그대로 보존되거나 계승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 공예품은 유형문화재이지만 그 작품을 만드는 기술은 무형문화재이다. 무형문화재의 실연은 아무리 철저히 해도 다소의 변화, 변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원형(개념)은 언제나 새로운 창조의 기반이 되고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무형문화재의 이러한 특징을 단점(短點)으로만 속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의 장점, 도약대(跳躍臺)로 활용해야 한다.
 
 원형의 변질과 망실이 아주 심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문화재는 본질적인 가치를 잃게 된다. 무형문화재로서의 목록해제(目錄解除)는 이런 개념과 상관된다. 표현방식, 제작방법은 시대에 따라 불가피하게 조금씩 변화한다고 해도 문화재가 지닌 근본적인 정신과 이상, 예술적 가치지향을 잃지 않으려는 순수한 노력 속에서 원형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원형이야말로 문화발전의 원천(源泉)인 것이다. 아울러 원형의 진실성에 대한 판별은 해당 분야의 고도한 전문적 평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에 대한 국가보존책을 분명하게 수립한 점에 역사적인 의의가 있지만, 원형과 전승자에 국한(局限)된 지정방법, 문화재청에 국한된 중요무형문화재의 관리, 종목 유파(類派)의 불인정, 지적재산권 보호가 불가능한 분류체계, 현대적인 문화유산을 폭 넓게 수용할 수 없는 한계 등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대로, 보호법의 일부 개정만으로는, 급변하는 시대의 문화 전반을 보존하고 관리하고 선양할 수 없다.

 전통을 창조의 도약대로 삼으려면,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 C.)가 지적한 ‘정신의 구조’와 터너(Tuner, V. W.)가 중시한 ‘문화의 상징성’을 진정으로 이해, 파악해야 한다. 어떤 양식의 문화든, 현대적인 의미에서 정신의 구조와 상징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 그 문화를 토대로 한 창조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창조를 시도했다고 해도, 온당한 창조로 평가받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문화에 관한 폭넓은 해석력이다. 기어츠(Geertz, C.)의 해석학이 중시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의 실제에서 작용하는 것은 화이트(White, L. A.)가 언급한 기술 및 기술체계의 계승과 첨단적인 활용 및 지속적인 발전이다.

 서양에서는 천재론(天才論)이 우세하다. 그들은 우리가 전통이라고 하는 개념을 문화전승(tradition)과 문화유산(heritage)이라는 용어로 분명하게 정의한다. 그런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이른바 천재라는 인물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그들은 문화유산의 상속자(相續者)들로서, 그의 성장 배경에는 과거부터 전문성을 이어온 가계, 스승, 친구, 예술가, 대학, 왕가, 전문단체, 후원자, 문화동반자로서의 애인, 관객, 교회 및 훌륭한 공연장 등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문화천재는 혼자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양육과 교육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창조의 정신, 방법, 기법, 기술, 체계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을 때 천재적인 문화창조는 가능해진다.

 상징문화론자의 한 사람인 터너는 치료의례에 큰 관심을 두고 상징을 논의했다. 상징이란 신체적 ․ 도덕적 ․ 정치경제적인 힘을 현실화하는 수단으로서, 상징의 힘은 부족사회에서는 통과의례의 경계(성인식의 경우, 의례 도중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상태) 및 역사적인 경계(사회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상태에서 현저하게 발견된다. 또한 상징은 무시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 변화에 대응해 의미가 변화해 간다는 사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은 잠시 잊었던 상징을 상기하여 그것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했다.

공연예술의 감상과 평가

 모든 공연 또는 공연예술은 사회적인 행위인 동시에 폭넓은 사회성을 지닌다. 공연은 수시로 모든 사람들에게 수용, 감상, 평가되고 있으며, 가능한 대로 전문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작품은 사회적으로 집단성, 의식성(儀式性), 상황성, 중층성(重層性)을 지닌다. 집단적인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다. 의식성은 제의성, 축제성, 원형성, 공의성(公儀性) 같은 개념과 상통한다. 작품의 상황성은 동시대성, 지역성(특수성), 민중성, 정치성, 보편성 같은 개념과 상통한다. 중층성은 공연의 역사성, 적층성(積層性), 복합성, 구조성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작품의 창작자 ․ 제작자 ․ 경영자는 공급자의 입장이고, 관객 ․ 청중 ․ 구경꾼 ․ 비평가는 수용자의 입장이다. 공급자와 수용자의 입장은 수시로 뒤바뀐다. 우수한 공급자는 훌륭한 수용자가 되고, 지혜로운 수용자는 탁월한 공급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공연예술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장르와 장르, 창작방법과 수용방법 사이에서 서로 빈번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말 그대로 문화의 전승과 전파, 창작과 수용의 굴레를 반복하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체험행위를 감상이라 한다.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그 감각적인 미질(美質)을 맛보고, 나아가 기술적 ․ 정신적 구축물인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그 제작 기법을 평가하며, 거기서 끊임없이 의미를 탐구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비교 고찰하면서 전제적인 사상을 파악한다. 감상은 감각적이고 기술적, 지적인 다층적 이해의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감각성의 입장에서 보면, 미적 체험은 시간적인 것이며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지성의 입장에서 보면, 미적 체험은 일종의 발견이다.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특정한 목적에 국한된 행동이 아니라, 온갖 가능한 발견을 주의 깊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미적 체험은 만남이며 ‘열린 체험’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쾌락)은 일시적이고 외면적인 데 한정되지 않는다. 심각하고도 어두운 내용의 작품에서도 얻어지는 심층적인 즐거움에 비유할 수 있다. 발견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 발견은 우선 대상의 특징적 발견으로부터 체험 주체 자신의 발견으로 연결된다. 온갖 가치를 포괄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작품을 시청하는 행위는 일종의 소비에 해당한다. 그러나 재물을 낭비하는 소비와는 달리, 이 소비는 감상에 해당한다. 감상의 유사어로는 직관, 향수, 관상, 수용 등이 사용된다.

 가다머(Gadamer, H.)가 지적한 대로, 예술 작품은 감상자(체험자)를 일순간에 생의 연관 밖으로 끌어냄과 동시에, 그의 생활 전체와의 관련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예술 체험은 넘쳐흐르는 의미로 채워져 있으며, 그것은 특정한 내용이나 대상에 부대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의 의미 총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미적 체험은 언제나 무한한 전체에 대한 경험을 포함한다.

  공연예술학(The Performing Arts Studies)은 학문으로서의 전체성과 엄밀함을 갖추고 원론적인 탐구에 치중하는 것이라 한다면, 비평은 작품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해서 현상의 의의를 평가하는 일이다. 넓은 의미로 공연예술에 관한 담론(discourse)이다. 비평을 일컫는 용어 가운데, 평론은 풍부한 이론을 펼치는 데 반해, 시평은 단편적인 감상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공연예술은 모든 경계를 넘어 관객을 즐겁게 한다. 빈부의 격차를 넘어서며, 지역적인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으며, 지식의 유무에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빈부 ․ 지역 ․ 시대 ․ 지식에 갇힌 공연예술은 일시적으로 문제작이 될 수는 있어도 명작이 될 수 없다. 특수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런 경계를 초월해 인간의 보편성을 탁월하게 표현했을 때, 비로소 온 인류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예술인 진정한 즐거움이 되려면 우리 삶의 진실과 미래의 꿈과 언제나 만나는 작품이어야 한다. 일시적인 감각과 유희, 소비와 마취의 즐거움을 탐닉하는 공연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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