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별보기

<연재> <정책/이슈>
문화원과 문화다양성1불쑥 나타난 문화다양성

 

문화다양성 첫 걸음

이 기획시리즈는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진행합니다. 문화사업과 활동에 있어 어느덧 중요한 가치로 자리한 문화다양성. 이주민사업을 칭하는 다문화사업과 달리 문화다양성은 더 넓은 영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회 시리즈로서 연재하는 이 문화다양성 기획은 문화다양성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위한 이야기자리가 될 것입니다. 
최혜자 |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문화디자인자리 대표

들어가는 말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기 때문입니다. ‘백인백색’, ‘아롱이다롱이’ 등 사람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말들은 일상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또한, 집단의 문화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다’는 말도 있습니다. 문화다양성은 이토록 우리 생활과 삶에서 일상적으로 알고 느끼는 감성입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감성은 우리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각각의 모습이라는 것이나 가정이나 집단마다 제 각각의 문화가 있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사회라면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 집단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문화의 성질을 이야기합니다. 예컨대, 문화는 개인의 특성과 달리 집단성(공동체성)을 가지며, 다양하고(다양성), 서로 섞일 뿐 아니라(수용성), 때로는 서로 간 충돌하기도 하고(배타성), 새롭게 구성되기도(창발성) 합니다. 이러한 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문화는 인간 집단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도 하고(대안성), 내적 균형을 잃게 되면서 쇠퇴하기도(퇴행성) 합니다.






<그림> 문화의 다양한 속성


2. 특별할 것 없는 “문화다양성”의 발견

그런데, 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감성이 사회 전체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인간 본성에 해당되는 이 감정을 사회에서 받고 말고 할 것이 없을 듯 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문제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는 수준이라는 것이 차곡차곡 발견되었습니다. 즉, 이러한 보편 감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음에도 우리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국가 체계 속에 법과 제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질서 속에 개인의 감성 따위는 매우 사치스럽거나 위험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적 이념과 법 그리고 제도 속에 진행되는 일들은 언제나 선한 것으로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바로 1900년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인간은 원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치르고, 죽여야 하는가?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가? 




<그림> 폭력과 학살이 권장되던 2차 대전의 모습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저질러진 참혹한 학살과 만행은 단지 한두 명의 선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1948년 UN에서는 역사적인 “세계 인권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거대한 권력도 인간이 가진 본연의 존엄을 강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인권선언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선언 중의 하나 일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권정신에 입각하여 권력의 전횡을 막는 각종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왔으며, UN은 그것을 권장하고 때로는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인류적 경험지혜와 합의에 입각해 법과 제도를 보완해 왔으며, 아직도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3. 마침내 특별해진 “문화다양성”의 등장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이 가진 다양성이 지지되고, 집단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참혹한 학살과 만행은 한두 명의 선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 스스로 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의 이러한 고통은 누군가를 징벌하고,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바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가 바로 개개인이 가진 내적 힘이며,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문화다양성입니다.

문화다양성은 인류학적 성과 즉, 모든 개인과 집단의 문화는 상대적이라는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한 개념입니다. 개인 혹은 집단이 개인의 삶과 특정한 역사 속에서 체득한 문화는 정체성의 표현이며, 지속가능한 삶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대적 질서와 규칙을 거부하고 개개인의 삶과 가치의 발견이며, 1960-7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탈근대적 사회운동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발견과 성과는 기술혁신과 함께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는데, 오늘날 사회의 변화는 이러한 사유의 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아닙니다. 1960년대 이미 유네스코에서는 문화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고, 문화다양성과 경제적 권리에 대한 논의까지 확산하였습니다. 마침내 2002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흔히 1948년 “세계 인권선언”의 문화적 버전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권리를 선언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과 집단의 문화다양성을 선언함으로써 스스로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림> 2002년 문화다양성 선언의 상징 이미지
(출처 : 유네스코 위원회 홈페이지)

4.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읽고, 관점을 입자

문화다양성은 2002년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이후 유네스코에 의해 권장되고 확산되는 가치입니다. 이는 유네스코에 의해 각 국의 상황과 진전을 점검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는 인류보편의 지향입니다. 또한, 2005년 문화다양성 세계통상협약은 국제 통상협약으로서 상업적 이익에 의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문화체육부에 의해 처음으로 정책화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문화사업과 맞물리면서 진행된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과 분리되어 2012년 새롭게 추진된 정책입니다. 그래서 불쑥 나타난 것처럼 보일기도 합니다.



<그림>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으로 진행된 문화다양성 연수
(제공 : 문화디자인자리)

그러나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는 독자분이라면, 문화다양성의 관점이 그냥 트랜디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성찰을 통해 발견된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보편성이 상실된 사람들에게 문화다양성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닌듯합니다. 그러니까 유네스코에서 굳이 선언을 하는가 하면, 각 국의 문화정책과 국가 운영방향에 권고 혹은 강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야 할 문화다양성의 가치는 인간과 사회의 보편가치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문화다양성의 관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보편성이 선언되고, 보편행위가 정책이 되는 정도로 우리의 본성은 훼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다양성을 단순히 프로그램화하고 사업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점을 봐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일상은 물론 실행하는 모든 사업에서 문화다양성의 가치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문화원은 전통과 현대, 세대 간의 만남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 세대의 가치에 대한 성찰 등 문화다양성의 가치가 반드시 관철되지 않으면 안 되는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문화다양성은 문화원이 새롭게 혁신하는 동력일지도 모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