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우 | 거버넌스25 운영감독
1. 들어가며 : 문화예술 저변확대 정책에 무언가 빠져있다.
1988년부터 시작된 <문화향수 실태조사>는 2016년 조사결과를 발표한 현재시점까지 28년간의 조사데이터를 축적하였다. 그 중 <문화예술관람률>항목에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추이를 비교하고 있는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두 가지의 흥미로운 관점이 엿보인다. 그 중 첫 번째는 2003년 이후 점진적으로 문화향수를 체험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2014년에 비해 7%의 큰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6 문화향수실태조사>
반면에 두 번째는 약간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영화관람의 증대가 결정적 요소라는 점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예술행사도 증가하기는 하였지만 소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평균 관람횟수도 영화는 3.7편이나 미술전시 0.3 ․ 전통예술 0.1 정도다. 미술전시와 전통예술부문은 <2016문화향수실태조사>에서 관람률 증대에 일조한 부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약한 상황임을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6 문화향수실태조사>
게다가 분야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광역시도에 집중된 관람현황, 주말에 집중된 향수활동, 매스미디어 중심 문화향수, 알찬 내용을 요구하는 학교 외 문화예술교육 현장, 점차 확대되는 문화동호회의 성장, 문화예술관람 비용의 부담감 등으로 표현된 문화예술부문의 현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2017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기금운용계획 개요>에서는 “문화융성 체감 확산을 통한 삶의 질 제고”를 예산편성 방향으로 삼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화의 일상화측면에서 “문화가 있는 날”사업, 인문정신문화 확산을 위해 “도서관”중심의 사업, 예술인 창작 역량강화 및 기반조성으로 “예술인 창작 안전망 구축” 및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등으로 문화예술 부문의 일반회계 주요사업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주요한 내용이 빠진 것 같다. 문화예술의 저변확대가 필요함이 다양한 텍스트로 표현되는데, 정작 정책내용은 이를 담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통역하는 기획자들의 다양한 노력을 발산시킬 내용도 없고, 대중들이 예술을 소비하고 흡수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예술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받고 확산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창작지원을 하니 예술가들은 알아서 생존하라는 흐름으로도 읽힌다. 대중으로부터 지지와 확산을 이끌어 내는 것이 빠져있고, 향수에 대한 실질이 빠져있다.
2. 매개자 역할 : 여기서 “중간”을 이야기 하다.
흔히 매개자는 서로 다른 두 개를 잘 연결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와 비슷하게 퍼실리테이터는 어떤 일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끔 촉진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말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병렬적인 관계의 중간이든, 사업위계관계의 중간이든 “중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중간지원조직”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작용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나 가 좋은 예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기업>또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일정부분 담당하고 있음을 감안해 보면 “중간”의 필요성은 이미 사회적으로 상당부분 인정되고 있고, 역할도 세분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간”의 역할은 상당히 피곤하다. 상호 관계를 깊숙하게 알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일이 틀어질 때 비난받기 일쑤다.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무척작고, 어떤 때는 추진력마저 생산해 주어야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이 필요한 것은 <연결성과 원활성>을 이끌어 내야하는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인체의 <유연성>은 뼈 마디를 구성하는 연골이 담당한다. 연골이 없다면 온 몸의 기관들은 결코 작동할 수 없다. 연골이 있기에 우리 신체는 원활하게 작동된다. 즉, “중간”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유연성을 달리하고, 원활하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역할이 매개자이며 퍼실리테이터라고 할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의 <거버넌스25> 사업은 사실 매우 딱딱하고 어려운 사업이다. 각 자치구를 기반으로 생활예술동아리와 활동공간을 찾아 연결하고 나아가 생활문화지원조례를 통해 활성화를 도모하는 사업이기에 형식과 틀에 매우 집중한 사업이다. 눈 씻고 찾아봐도 <유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생활예술동아리들이 존재함을 온갖 서류로 남기고, 다양한 공간이 도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모자라 지역축제로 나오게 하며 모두 한마디씩 하게 만들어 지원조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결코 유연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버넌스25>사업에서도 유연함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바로 FA(facilitating Artist)다. 선정과정의 방법상 자치구FA(자치구선정), 재단FA(서울문화재단 선정)로 편의상 구분하고 있으나 역할은 거의 같다. 매개자․촉진자로서 역할개념을 도출했고, 현재 18개 자치구에서 각자의 역할을 깊이 있는 고민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역할은 매우 광범위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몇몇 서류를 작성하면 되는 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양한 이들의 수많은 생각들을 너른 마음으로 듣고 이해하고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간 대화에서도 유연함을 펼치기 어려운데 타인의 이야기를 내면에서 끌어 올리는 일은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음이다.
3.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FA : 수다네트워크를 향하여
몇 일전 어느 FA는 활동 중의 어려움을 내게 토로하였다. 꽤 강한 어조로 “공간을 내놓으라”며 항의성의 말문을 열었다. 몇몇 동아리를 찾아 만나보니 그들만의 활동공간이 없다는 상황이 문제이고,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예술 네트워크 형성은 불가하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는 활동공간을 내놓지 못할 것이면서 왜 FA활동을 진행했냐는 볼멘소리도 어디선가 삐져나왔다. 생활예술의 활성화라는 추상적인 비전을 다시금 그려가며 설명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놓을 것이 없다는 뜻으로 알겠다”라는 대답이었다. 안타깝고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생활예술의 활성화를 말하면서 제반 환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안타까웠고, 이를 알면서도 진행해야 하는 모든 처지에 화날 지경이었다. 아마도 생활예술의 네트워크에 동참하자라는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들려오는 대답도 곱진 않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동아리 문제의 해결방법을 당장에라도 내밀고 싶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속상함은 꽤 컸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경청”의 중요성이다. 마셜 B.로젠버그는 저서 <비폭력 대화>에서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공감으로 듣고, 강요보다는 부탁을 통해서 진행하며 원인과 자극을 구별하는 일”을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방법(NVC: Nonviolent Communication)으로 제안하고 있다. 즉, “듣는”일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NVC방법에서는 권위주의적 사회모습에서 소통은 필요치 않아졌고, 때문에 인간관계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다른 것을 배척하는 현 사회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소통하는 방법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를 “경청”으로 두고 있다. 이는 FA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FA는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재단FA교육에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는 이유에 대하여 많은 담론을 나눈 바가 있다. 나아가 FA역량을 세부적으로 나누고 설명하였지만 본질은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역할이었다. “경청”은 그만큼 FA에게 중요한 요소이며, 거버넌스25의 주요사안임은 분명하다.
경청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인다. 얼마간의 시간이 쌓이면서 함께 이야기도 쌓인다. 일종의 수다네크워크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야기가 모여야 하고, 이야기가 모이려면 일단 수다가 쌓여야 한다. 잡스러운 말이라도 좋다. 상호신뢰란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또한 부질없어 보이는) 접점을 무수하게 형성할 때 신뢰가 움틀 수 있다. 이런 신뢰의 토대에서 생활예술네트워크가 작동해야 소위 <건강한 네트워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다>가 <건강한 네트워크>로 이행한다니 이 얼마나 대단하고 <생활적>인가? 그 정중앙에 FA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4. 문화예술 저변의 확장? : 듣고 이야기하며 네트워크로
이 글의 주제인 <활동가 양성사업>의 필요성에서 <활동가>라는 말은 짐짓 목적의식적인 집단을 연상케 한다. 문화예술분야의 활동가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겠지만, 이들과 함께하면 왠지 거대한 의무가 엄습해올 것 같다. 특히 생활예술동아리 참여하는 사람이 활동가와 지속적인 만남을 약속하기란 부담스럽지 않을까? 조금 다르게 <중간자>와 <생활적>이라는 개념을 드러내고, 단기적 효과보다는 다소 긴 호흡을 염두 하면 훨씬 좋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거버넌스25사업에서도 무척 딱딱하고 목적의식적인 역할로 설명되고 있다. 인적자원FA ․ 공간자원FA ․ 기획홍보FA의 세 역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후 FA활동이 지역사회에 다소 확대되었을 때를 염두한 형식적 포석이다. 현재는 <만나고 듣는 일>에 모두가 주력해야 함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향후 각 자치구 내 문화자원이 다양하게 발굴되는 시점에 이르면, 본래 설계된 각 주력분야에 집중하여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나, 역시 이때도 <중간자, 매개자, 조력자>로서 역할이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문화예술정책의 핵심은 예술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문예생태계를 중요시한다. 또한 콘텐츠에 집중하고 창작인프라에 집중하고 있다. 허나 저변확대와 삶의 질에 관한 정책논의 속에는 <선 경제성장, 후 문화향수>라는 의미가 은연중 깔려있음에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히려 경제논리의 하부구조로서 문화의 입지를 굳히고, 나아가 문화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예술의 근간마저 해칠 수 있다.
때문인지, 현재 향유되고 있는 방식을 점검하고, 다양한 생활 속 경로로 전달되는 방안을 구체화 하는 게 중요해졌다. 생활예술의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문화예술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문화예술의 발전은 예술향수의 크기와 연동되고, 매개자들의 수다네트워크의 크기와 비례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생활예술의 네트워크에서 생산된 논의가 여러 테이블 위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문화예술 저변확대를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일상의 언어로 <생활>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형성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예술생태계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그 중요 지점에 우리 FA(매개자, 중간자, 조력자)가 있다. 앞으로 이들 없이는 작은 확대조차 꿈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듣고 이야기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온갖 무게중심이 이들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항의성 말을 던진 FA와의 결말을 이야기 해야겠다. 사실 난 그 FA에게 뾰족한 해법을 드리지 못했다. 그런 해법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네트워크는 참여의 대상이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난 그저 “사람들로 인해 마음 다치지 말고 활동해 달라”고 당부 아닌 당부만을 전하였을 뿐이다. 이런 나의 아쉽고 식어빠진 말을 뒤로하고 가는 FA의 뒷모습에 숙연함마저 느껴왔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이 무엇인지는 서로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우리FA들은 어디선가 <중간자><매개자>로서 생활 속 예술을 잇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경청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튼튼한 생활문화 네트워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참고자료 : 생활문화지원단 거버넌스25-FA 역할․활동․평가, 교육자료 중 발췌>
※ FA의 역할․활동․평가의 대부분을 소통과 조율능력으로 중요시하고 교육을 구성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