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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업>
마을큐레이터의 탄생을 위하여

 

고영직 | 문학평론가


 1년 전 어느 칼럼에서 ‘비빌리힐스’라는 신조어를 작명한 바 있다. 비빌 언덕이라는 우리말에 마을[里]과 언덕(Hills)이라는 말을 의미하는 외래어를 변주해 ‘비빌里Hills’라고 변주한 것이다. 마을에는 비빌 언덕이 있다는 뜻도 되고, 마을이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삶터가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을 그런 신조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삶터가 과연 비빌 언덕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우리 사는 삶터에는 놀이가 없고, 관계가 없으며, 이야기(서사) 또한 부재하다는 것이 잠정적인 나의 결론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각자도생을 꿈꾸고 살아가지만, 저마다 각자고생하며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에 놀이가 살아 있고, 관계가 살아 있으며, 이야기가 살아 있는 삶터의 복원이 필요하다. 우리 사는 삶터에 놀이와 관계와 이야기를 회복할 수 있는 문화기획자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7년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시민활동가양성사업을 추진하며 ‘마을 큐레이터’라는 용어를 제시한 것도 그런 이유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마을 큐레이터: 의미 생산자, 이야기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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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큐레이터 되기 프로젝트’ 웹자보


 어쩌면 마을 큐레이터라는 말은 커넥터(connector)로서의 문화기획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전기가 통하도록 전기 기구와 전선 또는 전선과 전선을 서로 연결하여 주는 접속 기구인 커넥터의 기능처럼, 마을에서 이것과 저것을 서로 연결하는 문화기획자(활동가)로서의 마을 큐레이터를 양성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커넥터로서의 마을 큐레이터는 의미를 생산하고 이야기를 생산하는 마을문화 기획자(활동가)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러한 시민활동가양성사업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고, 당연히 필요하다. 시민활동가양성사업에는 <마을 큐레이터 되기 프로젝트>를 비롯해 <문화체육자원봉사활성화 사업 내 커뮤니티활동가양성과정>과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와 협력사업으로 진행되는 <향토문화대학> 프로그램이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민들이 ‘끈끈한’ 관계의 발효(醱酵) 과정을 통해 참여 지방문화원들과 ‘단단한’ 협력의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면, 지방문화원으로서도 사업의 내실을 꾀하는 동시에 활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문화정책의 기조가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로 근본적으로 전환되었고, 문화기본법 및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생활문화정책이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는 등 급변하는 정책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전국적인 망(網)을 구축하고 있는 문화원연합회 차원에서 지역 실정에 맞게 변화하는 문화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참여 주체들을 양성하는 의미가 있다. 최근의 각종 정책사업의 목표가 갈수록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하나의 큰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해 지역의 입장에서는 생활문화정책이든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이든 문화예술교육이든 마을공동체 활성화든 간에, 결국 중요한 것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격(格)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삶터)문화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지역 실정에 맞게 정책사업의 목표를 지역 상황에 맞게 조율하고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지방문화원을 비롯해 지역의 문화예술(인)단체 입장에서는 개별 정책사업에 참여하기 전에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지역 이슈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이 더없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개별 정책사업에 참여하면 할수록 지역에 대한 통합적 사고와 역할을 고민하는 대신에, 되레 지역을 지극히 파편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확언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규칙들의 유토피아(The Utopia of Rules)를 지상에 구현하려는 관료제 사회의 칸막이 행정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 문제에 관한 한, 지역이 주도권을 갖고 실제 지역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정책사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때 가장 큰 문제가 다양한 형태의 정책사업들을 지역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참여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터 포프(1688-1744)가 “만사에 대해 그 고장의 신령에게 물어보라(Consult the genius of the place in all)”라고 한 의미 또한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지역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며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언명으로 보아야 옳다.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는 자발적 문화자치 공동체의 형성과 강화가 정책사업의 새로운 화두라고 할 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간명한 명제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사업의 기조 변화에 대해 개별 지방문화원 차원에서 일일이 대응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지역 분권과 지역 민주주의-문화분권과 문화민주주의-지역문화와 생활문화, 이러한 정책적 가치 사슬들을 지방문화원 스스로 고민하고 풀어가는 것은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시·도 문화원연합회가 중간지원조직으로서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좋은 매개자인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자기 역할을 규정하고 한계 지으려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주요 문화기반시설로서 제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각 지방문화원이 수평적인 협력의 경험들을 충분히 축적해왔다고 간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장 1명-사무국장 1명-직원 1∼2명으로 구성된 지방문화원의 경우 인력 부족 문제는 항상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주민들을 비롯해 문화예술인 및 문화예술단체들에 협력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2014년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조사한 연구보고서 《지방문화원 실태조사》(코뮤니타스, 2014.6)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방문화원에서 인건비를 지급받는 인력은 ‘평균 3.0명’이고, 한 해 동안 1개 지방문화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숫자는 ‘평균 38.9개’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문화원이 추진하는 문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지역 이슈들을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주민 및 문화예술인들과의 파트너십 형성은 중요하다. 그런 수평적 협력을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고민하고 실제적인 협력의 경험들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 우리 안의 ‘미소니즘’을 넘어

현재 마을 큐레이터 사업은 경기도 2개 권역(의왕/하남)에서 생활문화동아리 육성지원사업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추진된다. 마을 큐레이터는 “지역의 현재(일상)를 조사하여 지역 자원(사람, 사물, 장소, 분위기, 커뮤니티 등)을 발견”하고, “발견한 지역자원을 새롭게 분류, 조합하여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특징을 만들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역사적·문화적·사회적 의미를 담은 콘텐츠 제작”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견자(見者)로서의 로컬 문화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지방문화원과 지역 커뮤니티 연결망을 구성해 지역 생활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사업 의도를 엿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낯설고 새로운 사업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미소니즘(Misoneism)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이다. 정치적/문화적 차원의 보수주의를 의미하는 미소니즘은 기존의 상투적 관행들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않으며, 기존의 관성을 그대로 묵수(墨守)하려는 견고한 마음의 습관을 의미한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미리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를 상정해 놓고, 거기에 모든 프로세스를 짜맞추려는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 ‘작고 시시한’ 지역 이슈를 발굴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어가며, 함께 해석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동시에 또래압력(peer pressure)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구현해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왜 작고 시시한 프로젝트인가. 그것은 작고 시시한 프로젝트에는 결코 작고 시시하지 않은 가치들이 내장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은 것에서 큰 흐름을 찾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퍽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고 시시한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며, 수평적 협력의 문화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문턱과 빗장 또한 풀리게 된다. 그런 협력의 의례를 구현하려는 과정들 속에서 지방문화원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문화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또한 정립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점에서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생활문화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 문화체육자원봉사사업의 방향을 주민의 문화생활 지원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실제 활동할 수 있는 매개자(문화자원봉사자)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의의가 있다. 시흥, 화성, 안성, 의정부문화원과 진행하는 커뮤니티활동가 양성과정을 통해 참여 문화원들이 주민들의 활동 거점이 되고, 자원봉사자 간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한다면,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직면한 사회문화적 도전과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화적 접근의 한 형식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문화체육자원봉사라는 정부 주도의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자원봉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자원봉사를 하지 않을 권리 또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경기학연구센터와 협력사업으로 진행되는 경기향토대학의 경우 향토(鄕土)라는 어감이 주는 정체(停滯)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체되지 않는 정체성을 어떻게 응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지역 연구자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전환하느냐가 관건이다. 길 위의 학교를 의미하는 로드스꼴라 형식의 과정설계를 하고 진행하면 어떨까. 자기 자신과 지역에 대해 부정을 통한 혁신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설계는 퍽 중요하다. 

2017년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는 시민활동가양성사업은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함께 부르고자 하는 사업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형질전환을 하게 되고, 한 사람의 로컬 커넥터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문화적 삶이란 무엇이고, 문화적 접근이란 무엇인가를 체득해가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적 삶과 문화적 접근이야말로 지금·여기 우리가 직면한 여러 형태의 사회문화적 문제들에 가장 적절히 개입(engaged)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문화를 단순히 소비하고 생산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아직도 우리 삶터가 비빌리힐스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마을 큐레이터를 비롯해 시민활동가들의 즐거운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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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원연합회 인력양성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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