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성(안산문화원 총무팀장)
故최고은 작가는 1979년생이었다. 그녀의 직업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였으며 2002년 단편영화 <연애의 기초>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작가는 2004년 <새벽정신>, <젖꼭지가 닮았다.> 등을 발표했고 2006년에는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능 있던 이 젊은 작가는 2011년 1월 29일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그리고 故최고은 작가의 사망소식은 우리사회에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녀의 사망소식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그녀의 유작 혹은 미발표된 작품 때문이 아니라 “쌀이나 김치를 더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얼마 지나면 밀린 돈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이후 전기세는 꼭 정산해드릴게요.” 라는 내용의 쪽지 때문이었다.
일전에 영화를 하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그 친구가 한창 영화 연출 관련하여 이론 공부를 하려고 중고 서적을 사서 읽는 와중 중간에 이런 말이 낙서처럼 적혀 있었다고 했다. ‘영화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 기업 그리고 대중들의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은 대형 기획사 소속 연예인과 그들이 출연하는 드라마 혹은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얻고 있는 이른 바 ‘한류열풍’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연예인과 대형 기획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여러 장르의 작품을 유통시키며 이익을 창출하는 대기업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점차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음지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당장의 생계를 고민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문화예술인들도 다수 존재한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산업의 파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여전히 굶주리고 힘겨워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6.25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풍비박산 났다. 나라를 재건시키는 것만이 모두의 염원이었고, 쌀이나 공산품으로 치환할 수 없는 모든 활동은 사치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고, 도로와 공장을 지어야 했으며 댐이 필요했고, 발전소가 시급했다. 국가의 모든 정책과 시선은 당연히 국토의 물리적 재건에 있었다. 그 시기에는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당연했다. ‘한강의 기적’은 하나의 종교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했다. 거덜 난 국토의 물리적 재건만으로도 벅찼고 힘겨웠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도 의지도 부족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가 시작됐다. 모든 활동의 가치는 온전히 경제적 지표로만 평가 받게 되었다. 돈이 되는 일과 돈이 되지 않는 일 사이에서 예술가들은 완벽하게 후자였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정부는 농업을 위해 비료 관련 사업을 육성하고 공업을 위해 수도권에 대규모 공장단지 및 인프라를 구축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지었지만 예술과 문화의 몫은 없었다. 배고프니 농사가 먼저고, 물건이 필요하니 공장이 먼저고, 애들 교육을 시켜야 하니 학교가 먼저였다. 이러한 정부주도의 홀대 속에서 예술가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결실을 맺어야 했다.
1994년 문화체육부 산하에 문화 산업국이 신설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예술을 장려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예전에 비해 정책 조직이나 예산, 제도적인 면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지표상으로도 세계 문화산업 점유율 7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한류 열풍’이 중국, 일본, 그리고 대만을 휩쓸었다. 국내 드라마가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국내 연예인을 보기 위한 해외 관광 상품까지 생겨났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자칭 문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예전에는 홀대했던 문화산업이 어느 순간 한류의 이름을 타고, 기업들의 집중 투자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우리들 인식의 변화일까? 아니면 그저 문화산업이 돈이 되기 때문일까. 나는 아무래도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예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사실 크게 변할 여지가 없었다. 현재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거나 투자를 받는 문화 콘텐츠 영역은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 등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돈이 되고 수출이 가능한 형태의 문화산업은 정부의 정책적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종류의 문화 콘텐츠는 예전에 비해 대우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단기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당장 돈이 되는 산업에만 투자를 하는 것도 현실적이긴 하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다른 영역의 산업이 지니지 못한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과 유기성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영화제작에만 투자를 한다고 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질의 시나리오와 사전 스토리라인 작업이 필수적이다. 좋은 스토리와 시나리오는 반드시 단단한 문학적 토대가 필요하다. 훌륭한 뮤지컬을 연기할 배우와 연출가는 어디서 배출되는가. 대학로의 소극장이 바로 훌륭한 무대 연출자와 배우들을 훈련시키고 배출하는 곳이다. 즉, 문화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인식의 변화 없이 단순히 돈을 벌려는 수단으로만 문화산업을 이해하고 정책을 만들게 된다면 이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경우 문학, 음악, 연출, 영상기술이 집약되어 완성되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문학, 음악 등 예술 작품이 먼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과 의무를 기업 혹은 예술기관 등에게만 맡기는 것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갑과 을’로 표현되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산업구조 상 ‘을’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러 예술인들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을’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올바른 산업구조가 형성되도록 장려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불합리적인 구조를 개선시켜 다 같이 공생할 수 있는 대한민국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문제는 새로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수 없이 개선해나가야 하는 많은 정책과제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또한 문화원 역시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 내 소외된 문화예술과 예술인들을 살피고 돌보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문화원이 누구든지 자유롭게 찾아오고 문화예술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문화의 허브가 되길 꿈꿔본다. 그리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시행과 관련 문화원이 뒤에서 바라만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예술인들의 처지를 대변하며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당연히 나를 비롯한 여러 문화원 직원들이 개인과 조직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앞으로의 문화정책과 관련하여 이야기 한 ‘새 정부 문화정책’ 관련 보고서에는 수많은 문화 관련 정책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그 효용성을 판단할 만큼의 전문지식을 나는 갖추지 못했다. 다만, 문화산업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변화와 관련한 교육정책이나 소외된 문화예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정책들이 좀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 나쁜 토양 속에서 실뿌리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나무는 결국 시들 수밖에 없다. 크기의 차이가 곧 나무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대한민국 문화산업은 향후 추진될 새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실뿌리가 제대로 박힌 나무들이 서로 공생하며 자라가는 문화생태계로 가꿔져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