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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책/이슈>
새 정부 문화정책을 논하다향토문화 인프라를 통한 지방문화원의 자생력 확보 방안
김명수(화성문화원 연구원)

 촛불혁명으로 시작된 새 정부는 탄핵까지 불러왔던 과거정부와의 결별을 통해서 새로운 발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다. 실제 정권에 대한 호불호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인들의 목록을 작성하여 관리하고 지원금이 없이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용해 굴복시키고자 했던 시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청산이 되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에게 거는 기대는 각 문화의 주체마다 많은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지역의 유일한 문화기관이었다가 그 역할을 점점 다른 문화기관에 내어주고 있는 지방문화원의 경우에는 생존의 셈법이 복잡할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물결에 동참하라고 할 때 우리만이 유일했던 과거로 회귀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필자는 문화원으로 오기 전까지 구비문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했다. 구비문학은 민요, 설화, 무가, 판소리 등 글보다는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이다. 이것을 흔히 구전문학이라고도 부르는 데 구전문학이 아닌 굳이 어려운 비석 비(碑)자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전해진 것이 아닌 집단이 선택하여 비석에 새기듯이 간직해온 문학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구비문학 공부를 위해서는 실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나 노래를 청하고 녹음하여 기록하는 필드워크과정이 필수적이다. 
필자가 처음 문화원과 만난 계기도 바로 이러한 필드워크를 수행하면서다. 특정지역을 조사하기 전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 바로 주민센터와 문화원이다. 주민센터에서는 관의 협조를 얻어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 문화원은 실제 연구팀이 조사해야할 지역의 대표 이야기꾼과 소리꾼의 정보를 얻는다. 물론 지역 노인정을 중심으로 기습적인 조사를 하고 그런 곳에서도 훌륭한 자료제보자를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 문화원에서 추천하는 이야기꾼이 지역에서 제일가는 인물일 때가 많다. 그때 당시는 문화원이라는 곳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고용안정을 위해 소속기관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현재 화성문화원에서는 크게 <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문화강좌 프로그램, 주로 인문학 명사들을 초청하는 각종 특강들, 크고 작은 축제무대와 행사를 진행, 향토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연구 자료집 발간, 전국의 문화재를 답사하는 <문화유산을 찾아서> 답사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각종 동아리에 활용공간을 제공한다. 그렇게 지원하는 단체 중에는  지역향토문화를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향토문화연구소도 포함되어있다.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거의 모든 활동은 지역의 문화재단의 프로그램과 겹친다. 또한 좀 더 전문화된 인력이 더 큰 규모와 더 좋은 시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작은 예를 들어보면 문화원에서 지역 성악가의 무대를 기획한다면 문화재단에서는 유명한 외국의 지휘자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 뿐만 아니라 같은 서예반, 민화반이라도 더 좋은 시설에서 두 세반이 로테이션 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거리가 가깝다면 주
민들의 만족도는 문화재단 쪽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워낙에 부족한 한국의 문화 인프라를 생각해보면 이런 부분은 서로의 체급차이를 인정하고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문화원 인근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역접근성도 강점이 될 수 있고 우리 이웃인 성악가의 무대를 보는 것 또한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원에서 운영 중인 강좌의 가격도 훌륭한 경쟁력일 것이다. 화성시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공존의 가능성은 아주 커 보인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문화재단 등 새로 생겨나는 문화기관보다 문화원이 나은 점 그래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역문화를 오랫동안 책임져왔던 경험과 노하우를 통한 진정한 지역문화개발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류학계에서 다루기 어려운 디테일한 향토사와 지역사에 최고의 접근성을 가진 것이 문화원의 가장 큰 무기일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강력한 지방분권 시대의 개막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만약 구상대로 진행된다면 경기도가 서울의 위성도시를 벗어나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획일화 되고 있는 도시에서 고유의 지역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향토사를 재료로 민속학, 구비문학, 인류학 연구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동안 중앙 학계의 관심이 뻗치지 못했던 향토사가 주목받게 되는 순간이며 문화원이 타 단체들보다 비교우위에 설수 있는 지점이며 이 중심에는 지역 문화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향토사연구소와 같은 학술연구단체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해결해야할 과제들은 많이 있다. 대부분의 주류학계에서는 향토사연구소의 학술성과에 대해 편견이 있고 그 편견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많은 향토사학자들이 열악한 현실을 열정으로 극복하는 연구를 진행해왔고 그에 따른 도움이나 지원이 열악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자료수집의 조건을 누락하는 경우도 많고 글에도 허점이 있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향토사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학술지들이 발행되고 있으나 실제 인용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중앙학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직접 수행하는 연구도 문제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라포 형성의 어려움이다. 라포는 일종의 친밀감, 신뢰감을 이야기하는 용어이다. 민요나 설화 같은 구비문학부터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과 같은 현대사의 갈등에 대한 증언까지 지역 연구를 위한 구술 자료의 폭은 아주 넓다. 가장 좋은 자료는 제보자와 조사자의 친밀함이 극대화 되어 자기 안에 있는 진짜 생각을 그대로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역 문화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예사나 향토문화 연구 인력일 수 있다. 

 그래서 문화원은 향토문화 연구가들이 어디든 통용될 수 있는 좋은 연구 자료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중앙학계의 조사 방법론 학습을 지원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담긴 연구 성과물들을 평가받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공적인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향토사 연구자들은 그들의 열정이나 성과에 비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부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실제 직업을 수행하고 남는 시간에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련 학위를 취득한다든지 하는 연구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자존감을 보호하고 그들의 열정을 지역사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현재 화성문화원에서는 화성지역의 산업화 상황에 대한 구술자료 확보 및 연구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의 회원들에게 구술채록 관련 교육을 하여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부분에 참여시키고 관련된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협업의 경험을 주고자 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사업이다. 우수한 향토문화 연구가를 양성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형성된 지역정체성의 모범답안 위에서 문화콘텐츠 개발이나 축제 개발도 이루어지는 것이 맥락과 원형이 살아있는 좋은 콘텐츠 제작의 지름길일수 있을 것 이다.문화원 주변에는 오랫동안 지역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왔던 많은 인적자원과 네트워크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산임을 인식하는 것이 문화원 자생력 확보 시작지점이 될 것이다.




2012년 1월 27일 철원 전쟁체험담 구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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