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여기, 느리고 더딘 손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규방문화연구소’라는 작은 사랑방에 모여 오래된 옛 이야기를 꺼내듯 전통과 우리 문화를 손으로 그려내는 이들은 참 느리다.
규방공예는 조선시대,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규방에서 생성된 공예장르다. 규방에 모인 여인들이 바느질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던 것에서 비롯됐다. 이제 규방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여인의 창조적 에너지가 가득한 규방공예가 최근에는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용인문화원(원장 김장호)은 다른 지역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규방문화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고 이를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고자 부설 규방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 규방문화연구소(소장 변인자)에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규방공예를 배우기 위해 여수, 광주, 대전, 서울, 남양주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생활용품에서 인테리어 소품까지 조선시대 여인들의 예술혼 고스란히 다양한 연령대 수강생들 전국서 모여”
규방공예, 생활 속으로 들어오다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오전 10시, 용인시청 문화예술원 3층에 자리 잡은 규방문화연구소 강의실엔 수상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인들은 하나 같이 ‘바늘’과 ‘실’을 들고 앉아 수다잔치를 이어갔다. 여인들의 수다엔 불편한 시댁이야기,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말썽쟁이 아이, 친구 험담은 없었다. 오로지 보자기, 바늘방석, 복주머니, 저고리, 노리개, 매듭 등 작품이야기 뿐이었다. 수강생들은 ‘사선단보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1년 과정의 규방공예 전문가 과정을 이수중인 수강생 25명은 각기 다른 사연과 인연으로 용인에 모였다. 소선희(40·화성 동탄)씨는 규방공예를 배울만한 곳을 찾다 찾다 어렵게 규방문화연구소에 들어왔다. 소씨는 “대기자로 있다가 입학하게 된 케이스인데 스트레스 받을 때 바느질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곱고 아름다운 손끝에서 바늘과 실이 만나 완성된 작품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규방공예에 빠진 겁 없는 20대도 있었다. 한지혜(25·용인 신갈)씨는 “그냥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평생 규방공예를 하면서 살고 싶어 바느질을 시작했다”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규방공예를 한다고 하니깐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걱정도 하셨지만 충분히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공예분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전통문화를 잇는데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김성미(41·서울 상암)씨는 새벽밥을 먹고 바느질을 하러 온 ‘열혈 바느질쟁이’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한 김씨는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식, 전통차 등을 여러 가지를 배워봤지만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는 규방공예야말로 한국 전통 문화를 세계인들과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문화콘텐츠”라며 “특히 일본인과 프랑스인들이 바느질의 섬세함과 화려한 한국 전통색이 잘 어우러진 규방공예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수강생들은 “규방공예를 돈 많은 부잣집 사모님들이 하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공예라고 생각해 입문을 꺼리는 이들이 많아 아쉽다”며 그 동안 만든 작품 한 무더기를 꺼내 놓았다. 색실로 수놓인 손수건부터 시원한 모시발이나 조각보 등 은은하고 단아함이 깃든 작품들이다.
특히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는 규방공예의 꽃이라 할 정도로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멋스러웠다. 수강생들이 저마다 한두 장씩 들고 나온 조각보를 펼쳐드는데 아름다운 색상과 디자인은 물론 남은 천을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까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규방공예,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2012년까지 규방문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일반과정 및 전문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수강생들은 총 60여명. ‘규방공예의 대모’로 통하는 변인자 소장이 규방문화연구소의 안방마님이다. 어렸을 때 바느질 솜씨가 남달랐던 변 소장은 용인으로 시집와 30년 넘게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규방공예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시작한 지 10여년. “바느질이 좋아 취미로 시작했는데 취미가 직업이 됐고 어느새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녀는 “건강과 인생을 되찾게 되어 행복할 따름”이라면서 “한때 갑상선암으로 고생했을 때도 바느질이 큰 힘이 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변 소장은 2010년 열린 ‘G20 정상회의’ 때 한국 대표로 조각보와 규방공예품을 전시하는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실력파다. 그녀의 수업을 받고 싶어 만삭의 몸으로 대전에서 용인까지 오가며 매주 강행군을 한 수강생도 있었다고 할 만큼 전국 각지에서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규방문화연구소는 2011년 1월 1년여 동안의 교육활동을 통해 쌓은 수강생들의 기량을 선보인 첫 번째 졸업작품전 ‘느린 손바느질 이야기’展을 개최하기도 했다. 수강생들이 정겨운 규방공예 소품부터 규방의 꽃인 조각보까지, 스물 일곱여 가지를 만들면서 완성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손끝에서 영근 결실을 맛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시대에 되살려야 할 규방문화, 용인에서 꽃피우다 전국적으로 규방공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제대로 된 강의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전문가 과정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나마 용인문화원 부설 규방문화연구소는 일반과정(1년)-전문과정(1년)-예비연구반(1년)-연구회(1년) 등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방문화연구소도 용인문화원 부설이긴 하지만 용인시의 예산 지원 없이 오로지 수강료로만 운영되고 있어 살림살이는 빠듯한 형편이다. 그래도 변인자 소장은 우리 전통공예의 멋과 맥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웃으며 강의한다.
김장호 문화원장은 “규방문화연구소는 도외시되었던 한국의 규방문화의 연구 및 사료수집, 기술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설립된 부설기관으로 사랑과 정성을 담은 기도의 산물인 우리의 규방공예품이 21세기 또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특히 용인이 규방공예의 본고장이 될 수 있도록 규방문화의 전승·공유·교육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용인에선 오늘도 옛 여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규방공예를 재연하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그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바느질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