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책상머리
밤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붉고 푸른빛으로 얼룩진
어두운 산동네가 참 아름답다. 모두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그런데 그 어둠을 한 겹 만 들추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삶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 속에 뒤엉켜 있는 사람들의 깊은 말도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모두들 그저 어둠이 덮은 아름다운 산동네에 그냥 취해 있다.
심지어 거기 살던 사람까지도 그리고 거기 살고 있는 사람까지도 말이다. 1)
1) 신경림 시인의 詩 ‘밤차를 타고 가면서’에서 인용
그렇게 우리들의 마을은 사라져 가고 있다. 사람들은 좀 더 편하고 쾌적한 삶을 지향하게 되고, 그 지향은 ‘개발’이라는 당연한 과정을 야기한다.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작은 것이 큰 것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다. 사라져 가는 마을을 조사한다는 것은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이고, 큰 것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은 것, 작은 소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마을을 조사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리하고, 그것의 역사적 위치를 재설정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2010년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과 공동주관하여 <경기도문화상징토론회>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쉽게도 이 시기에 개최한 토론회는 경기도 각 지역의 문화원형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 2011년부터는 문화원형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하면서, ‘지역문화원형’이라는 타이틀로 그 의미와 외연을 확장하여 크게 4가지 분야로 설정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역사문화인물, 두 번째는 자연경관, 세 번째는 문화유산(건축, 산성 등) ,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인 민담·설화가 그것이다. 그에 따라 6개 문화원이 참여하여 각 문화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원형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향후 그것이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활용될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토론회를 진행했다. 현실적으로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구체적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발표하는 형식으로 기획된 것이다. 발표된 내용들을 토대로 개별 시·군 지자체와 경기도가 함께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의 형태로 전개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2012년부터는 문화원형토론회를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 설정된 문화원형의 개념을 광의적 개념으로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키워드로 ‘현재화’라는 개념을 설정하게 된다. 과거·전통·역사를 구태의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로 재창조·재탄생시키자는 뜻을 담고 있다. 기존의 문화유산 뿐 아니라, 현재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곧 역사가 된다는 점에 집중했다. 곧 역사가 될 현재의 마을 조사를 통해 지속적인 구술사 채집을 통해 지역의 생활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동안 나온 성과는 <문화원형이 브랜드다>라는 주제의 영상콘텐츠로 제작, 발표되었다.
지역의 특색으로 브랜드화 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기획인 ‘경기도문화원형브랜드사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하여금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역사의 흔적이 현대적 의미로 재탄생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정체성으로 연결되었다. 역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이 경기도의 역사가 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문화원형은 그 지역의 삶과 역사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지역민의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또한, 오랜 역사를 거쳐 그것에 담긴 함축적 의미가 더 확장되기도 하고, 때로는 퇴색되기도 하면서 지역 정체성이 형성된다.
지금까지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마을조사를 통한 문화원형의 발굴하여 그 활용방안을 찾는 토론회를 통해 사업화 방안을 도출했다. 더 나아가 문화원형을 지역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기 위한 기획사업을 통해 경기도 31개 시·군 문화원 중심의 지역전통문화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했다. 이러한 사업은 우리가 사는 지역, 넓게는 경기도에서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의 궤적을 되짚어 보고, 그것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재조명하면서, 다시 중심을 세우는 일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내 주변에 있는 돌멩이 하나,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역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의미 지어지고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다.
핵심은 지방문화원이다.
지방문화원이 지역문화의 중심을 잡아가야 한다.
문화원을 통해 지역의 문화정책이 큰 틀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지원과 정책개발이 연합회에서 해야 할 일이다.
중심이 지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