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강원일보 논설위원, 문화융성위원회 전통문화분과 전문위원)
며칠 전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뮤지컬 ‘킹키부츠(Kinky Boots)’를 관람했다. 미국의 팝 디바 ‘신디 로퍼’가 만든 감각적인 음악이 객석을 압도하는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내용은 영국의 소도시 노스햄스톤의 한 구두공장이 파산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찰리는 고향을 떠나 런던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갈 수 있는 의지도 충만했다. 하지만 파산 위기에 처한 구두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소식에 발길을 고향으로 돌려야 했다. 얼떨결에 가업을 물려받은 총각 사장 찰리지만 가업을 되살려야 하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 공장에 딸린 직원들의 생계를 떠안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부터다. 아버지가 고수했던 스타일의 구두는 변화한 세태에서 상품가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친구 롤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장남자인 롤라는 자신의 취향과 고충을 들어 튼튼하고도 화려한 명품 부츠를 만들자고 강권한다. 찰리는 직원들의 원성을 듣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밀라노 런웨이 패션쇼에까지 진출하기 위해 집념을 쏟아붓는다.
이러고 보면 특별나게 감동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이 작품에 흐르는 메시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욕망보다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 즉 직원들의 직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열정이 가상하다. 여기에 화려하고 비트가 강한 음악, 간간이 분위기에 맞게 깔리는 애잔한 곡절, 배우들의 내밀한 연기력과 화려한 피날레가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의 전형을 보여준다. 2013 토니상 6개 부분을 수상했고, 2014 그래미상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받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미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 필자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우리에게 깊숙이 파고든 미국의 팝문화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세계적인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의 화장기 짙은 면모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현실을 관객이 열광하는 무대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이 과제라는 생각의 파생도 길게 늘어졌다. 휘황찬란한 수도를 벗어나 당도한 공간은 필자가 사는 지역, 강원도다. 여기도 ‘다문화 사회’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융합(融合, Convergence)’이 시대적 화두이고 보면 그리 생경하지도 않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 어울렸다고 해도 거기에는 서로의 결핍을 보완할 수 있는 성분과 재질이 제각기 존재했기에 가능했음은 불문가지다. 지역문화도 마찬가지다. 삶의 근간인 정체성을 토대로 변화하는 시공간적 환경이 조화를 이뤄야 살기좋은 고장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 가치관·방식도 어설프게 접목되면 서로가 공감하는 문화가 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인문학에서 언급하는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고 자신에게 먼저 질문하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적 가치관,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 가슴에서 피어날 수 있어야
‘문화융성’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문화융성’을 경제부흥·국민행복·평화통일 기반구축을 4대 국정기조의 한 축으로 내세웠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문화정책이 이처럼 중요하게 제시되지 않았기에 획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대통령 소속 정책자문위원회인 ‘문화융성위원회’가 구성돼 정책발굴과 국민의 문화의식 제고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문화예술, 전통문화, 문화산업, 문화가치확산 4개 분야 전문위원회와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도 설치돼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문융위는 문화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8대 정책과제’를 도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민에게 제시했다. △인문(人文)정신의 가치 정립과 확산 △전통문화의 생활화와 현대적 접목 △생활 속 문화 확산 △지역문화의 자생력 강화다. 또한 △예술 진흥 생태계 형성 △창의 문화산업의 방향성 제시 △국내외 문화적 가치 확산 △국민통합 구심점으로서의 ‘아리랑’ 활용 등이다. 제시된 모든 항목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국민생활에 적용돼야 할 사안이다. 그런가 하면 문융위가 입안한 ‘문화기본법’과 10여 년간 지루하게 끌어온 ‘지역문화진흥법’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됐고, 시행령도 갖춰져 올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은 제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국민 삶의 현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제구실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문화는 시공간적 환경과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한다. 문화의 원칙과 정도(正道)가 있을 수 없는 속성이다. 전통문화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과 개인의 삶의 방식과 따라 존재 가치의 비중이 다르게 적용된다. 이런 현상에 따라 전통문화가 왜곡되고, 훼손되기 일쑤다. 더 심각한 것은 일단 상실된 가치는 제아무리 완벽하게 재현해도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적통·계통을 살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복구한 유물을 지정 문화재로 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문화의 원형을 제대로 전승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을 역임한 박광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한국문화정책론(김영사 발행, 2010년」에서 최근의 우리나라 문화정책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해 제시했다. “1) 고급예술 외에 민속과 대중예술까지 포함하며, 2) 예술가 위주에서 시민 위주의 정책 확산이며, 3) 생활 속의 문화가치 부여와 생활환경, 도시건축, 공공시설 등에서 생활의 문화화를 구현하며, 4) 소비적 시각이 아니라 생산적 측면의 문화산업을 중시하며, 5) 문화적 가치창출과 부과로서 도시계획 및 도시 개발에서 문화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관건은 이러한 기조에서 나온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이 어떻게 문화현장과 국민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현장에 대한 인식이 합치하지 않아 갖가지 정책과 시책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발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광화문 복원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다. 문화재청이 경복궁 복원을 위해 태조 이성계 5대조의 묘소인 강원도 삼척시 소재 준경묘 일대에서 황장목을 벌채하겠다고 발표하자 전주이씨 종중에서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라며 정부 관계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제가 발생하자 문화재청에서는 “민족 정통성을 상징하는 광화문 복원사업은 조선정궁의 상징을 원형대로 되찾자는 의미로 조선왕조 근원지인 준경묘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종중 관계자들은 “문화재청이 행정절차상 과오를 저질렀다. 삼척시 및 종친회와 사전에 협의가 이루어졌어야 했는데도 밀어붙이기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격분했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적지 지정을 받는 것이 당면 과제인데 일언반구의 협의도 없이 불쑥 벌목을 하겠다고 발표부터 한데서 빗어진 불상사였다. 1년 가까이 황장목 벌채안을 논의했지만 끝내는 문화재청이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일단락됐다.
지역 전통문화의 지속적인
확산·환원이 과제
근·현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크게 3가지 시점의 변곡점을 지나왔다. 물론 문화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다. 첫째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의 문화통치정책과 이후 조선총독부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전통적 가치관은 무참히 짓밟혔다. 공동체의 근간인 놀이문화가 변질됐는가 하면 아예 금지되기 십상이었다. 귀중한 문화재가 강탈당했고, 민족의식조차 유린, 말살, 왜곡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두 번째는 1970년대, 즉 한국 농촌변화의 분수령이었던 ‘새마을운동’ 전개과정에서다. 전국에 새벽종을 울린 이 운동에 의한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순기능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의 지혜와 전통적인 가치관까지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1995년 지방자치 전면실시 이후다. 전통문화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정책과 시책이 시행되고 있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미 변질되고 훼손된 양식과 내용을 되살리기에는 적지 않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문화예술정책과 달리 더 심각한 것은 재창조 과정에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통문화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는 일 보다 당장의 관광 테마·소재로서 이용하는 측면이 지나치기 강조되다보니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천 년의 축제’라고 자부하는 강릉단오제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강릉단오제는 ‘종묘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에 이어 한국에서는 세 번째로 유네스코(UNESCO)에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된 우리민족 고유의 민간주도 축제다. 특히 중국이 자국의 단오제를 앞세워 집요한 훼방과 도전을 했음에도 이를 뿌리치고 강릉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단오제가 인류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강릉시에서는 단오제의 전반적인 행사 지원을 관광과에서 취급한다. 문화예술과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의 단오제의 주요 의식과 관노가면극, 강릉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 호) 등의 시연행사만 관장한다. 더구나 행사의 중심축인 단오굿을 펼치는 무속인들과 악사들은 전용 연습공간도 없이 ‘강릉단오문화관’의 일부 공간을 할애받고 있을 뿐이다.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걸맞은 보존·전승에 관한 법·제도가 부실한 탓이다. 기능보유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문화재청과 지자체에서도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치를 제대로 전승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보다 확실하게 제시해야 마땅하다.
‘사상 최악이었다’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평가가 불편하게 한다. 특히 개최국, 개최 도시의 총체적 역량을 가늠하는 개·폐회식의 경우도 졸작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외국 언론들은 개회식에 대해 저급한 한류영화제였다고 비아냥거렸다. 폐회식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통상적으로 펼치는 차기 개최 도시의 문화공연이 더 볼만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올해 초에 펼쳐졌던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과 2년 전의 런던올림픽, 4년 전의 중국 광저우아시안게임과 6년 전의 베이징올림픽 등의 개·폐회식에서 느꼈던 감동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더 참담하게 한다.
이제 우리가 보여줄 마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준비기간이 불과 3년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문화행사·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적인 계획과 예산 확보조차 안 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화올림픽 실현 기본계획 연구용역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오죽 답답하면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지원 특별위원회 의원들이 주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에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라며 질타성 촉구를 했겠는가.
문화정책도 현장에서
성과 보여야 제구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넘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그래서 전통문화는 현대인에게도 생활문화가 될 수 있고, 또한 문화산업의 테마이자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남북통일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분단된지 60년이 훌쩍 넘었고 민족 동질성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질화되고 있는 정서의 본질을 되찾는데 있어 최적의 방식이 예부터 공유해온 전통적 가치관 회복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어려운 문제를 들고 신경전을 벌이기에 앞서 남북교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밴드웨건효과(Bandwagon Effect)를 가져올 수 있는 분야가 전통문화, 민속예술이라는 점에서다. 또한, 남북에 산재해 있는 관동팔경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함께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을 둘러본다. 정부가 문화융성을 주창하고 있지만, 광역자치단체에서 문화융성위원회를 구성한 곳은 제주도뿐이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기해 실시하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프로그램이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어떤 감도로 느껴지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지역의 전통문화 보존·전승 실태는 사회변화의 시류와 동떨어져 있음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전통문화는 구태의연한 것,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 것 등으로 치부되기 일쑤인 탓이다. 전통문화를 소홀히 취급하면 ‘정서의 결핍’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인식부터 지니게 해야 마땅하다. 피부에 와 닿는 지역문화와 지역학을 자각해서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삶의 의미를 더하는 직업, 창업으로까지 발현되는 전통문화 활성화가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질주하는 현대문명과의 균형, 융합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융성 3년 차를 맞는 2015년 정책의 기본방향을 ‘문화의 일상화’라고 밝혔다. 이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6대 중점관제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생활 속 문화 참여 일상화 △콘텐츠·관광·스포츠 산업 집중 육성 △청년·취약 계층 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사업 추진 △문화여가 향유 환경 조성 △지속적 한류 확산 △문화공간 재생·문화자본 구축·문화중산층 확대 등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내세우는 것이다. 지역은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시급한 현안이 다르다. 또한, 국비 지원금의 대부분이 지역발전특별회계에 포함된 관계로 가뜩이나 소외되고 있는 문화예술분야는 힘겨운 처지다. 자치단체장들이 예산 투입 효과, 파급력이 크지 않은 전통문화분야를 등한시하기가 다반사인 탓이다. 지역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전통문화 분야에 전체예산 중 일정 부분이 쓰일 수 있게 하는 규정도 충실하기 시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방식으로 유도해야 옳다.
‘문화기본법’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 지역에서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문화시설과 프로그램진행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곤란해진다는 인식이 각인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문화올림픽도 실현해야 할 강원도가 도립미술관 건립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시사하는 바다. 게다가 전통문화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멸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별로 ‘선택과 집중’을 발휘해야 할 사업을 지목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수행하게 해야 국민이 묺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본다. 제아무리 합당하고 좋은 취지를 담고 있는 정책도 현장에서 제구실을 못하면 결국은 예산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국민 생활문화현장, 비전 있는 문화사업·산업에 시선이 맞춰진 법, 제도, 규정, 정책을 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문화융성을 추구해 나가는데 있어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유네스코와 유럽의회에서 문화정책 전문가로 활동한 장 미셀 지앙이 펴낸 「문화는 정치다(동녁 발행, 2011년)」이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 우리에게 맞는 문화정치를 일궈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