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 :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출처: 경기도문화원에서 노올자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전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본래 식물원이었지만 수련 전시에 초점을 맞춰 1999년부터 6년간 건물 개조공사를 벌인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모네의 소망대로 길게 펼쳐진 수련 연작을 자연 채광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작품을 위한 미술관’으로 구축한 것. 겉만 웅장하고 화려하게 완성한 전시공간과 그 품격이 다른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갑자기 왜 머나먼 이국땅의 미술관 타령인가. 안산문화원(원장 김봉식)이 이처럼 유물을 수집한 후 그에 맞춰 정체성이 뚜렷한 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 기실 그 규모와 역사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많은 공연미술공간과 문화교육센터의 등장에 갈 길을 잃고 휘청거리는 문화원이 ‘선 소프트웨어, 후 하드웨어’를 지향하며 마련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의미가 깊다.
"버려지고 잊혀진 유물 발품 팔아 수집,
민속유물·전통놀이 다양한 즐길거리 풍성,
전통문화 전승·문화 공간 역할 톡톡"
도내 문화원 중 유일한 ‘등록 박물관’
“저희가 자랑거리가 아주 많아요. 다른 문화원하고 비교하면 안 되죠. 이렇게 잘 지은 문화원 건물에 향토사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도 있잖아요. 지역 교사와 학생의 놀이터나 다름없어요.”
22년간 안산문화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현우 사무국장은 연신 자랑에 침 마를 새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안산 시민의 생생한 역사 교과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물관의 유물 대부분이 이씨가 20여 년 전부터 직접 수집하고 매입한 것들이다.
도내 문화원 중 최장수 사무국장으로 꼽힐 만큼 오랜 경력과 전문성을 자랑하는 이씨는 지난 1991년부터 도시개발사업에 사라져가는 안산의 마을 곳곳에서 ‘고물’을 주웠다.
“헐리는 마을에서 나온 것은 우리 지역의 생활사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인데 막 찍어버리고 묻어버리니까 아깝더라고요. 그렇게 수 천점을 모으고 기증받아 향토사료관을 만들었어요.”
포크레인을 동원해 땅 속에 묻혀있는 ‘연자방아’를 꺼내고 야산에 방치되다시피 버려져있던 ‘태실’도 수거했다. 이 태실은 왕가의 태를 묻은 석실로, 안산 단원구 고잔2동 주공아파트 8단지에서 출토됐다. 또 제보를 받고 찾아간 안산 반월동의 한 빈집에서 찾은 고문서와 고서적 300여권을 발견, 주인을 찾아 문화원이 위탁관리하기로 했다. 안산문화원은 그렇게 10여 년간 모은 것을 보여주는 향토사료관을 운영하는 한편, 꾸준히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과 기록물을 수집하고 매입했다. 2008년에는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기에 이른다.
“도내 문화원이 운영하거나 추진 중인 향토사료관은 있지만 등록박물관은 유일하죠. 그 요건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예산 지원이요? 그것보다 전문가가 평생직장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최우선이에요.” 전국에서도 유사 모델을 찾기 어려운 ‘문화원이 등록한 박물관’은 전문 인력 확보에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역시 사람이 힘이다.
지역문화원들이 하나같이 ‘예산 지원에 대한 간절함’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전문인력의 안정적 수급’을 주장하는 것이, 정답임에도 낯설고 색다르다. 그 색다름은 ‘지자체장 변화에 따른 문화원 인력 물갈이’와 같은 불편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저라고 왜 자리 내놓으라는 압력이 없었겠어요? 초창기부터 향토사에 푹 빠져 안산을 샅샅이 뒤지고 기록했는데 그게 다 제 머리에 있으니 힘들게 살아남은 거죠. 문화 원장이 바뀌거나 자치단체장 변화에 상관없이 문화원의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근무한다면 1종 박물관 등록이 어렵겠습니까.”
연중무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교과서
2012년 9월 11일 오전 10시. 새소리와 닭울음소리가 허공을 가르던 문화원이 시끌벅적해졌다. 인근 이화어린이집의 4~5세 원아 20명이 문화원 1층의 안산향토사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자못 진지했던 아이들은 체험공간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낯선 옛 물건을 서로 만지며 까르르 웃는다.
시간이 흘러 한산해진 박물관이 또 다시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방과 후 들러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친구들과 전시장을 구경한 후 떠난다. 이 같은 초등학생들의 방문이 오래됐나보다.
박물관 정수기에는 종이컵 대신 약수터에서 볼 수 있는 바가지 하나가 걸려 있다. 최현호(석호초 4년)군은 “지난번에는 엄마랑 같이 왔었는데 재미있었다”며 “그 이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가끔 들러 전시를 본다”고 말했다.
연중무휴 어린이의 놀이터이자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안산향토사박물관은 1종 박물관으로 등록한 후 도비와 시비 1억원을 지원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건평 약 2천200m²규모의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수장고 등이 있다. 보유 유물 2천517점 중 300여점을 상설 전시하며 매년 2~3회에 걸쳐 주제별 유물을 돌아가며 선보인다.
이 곳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선사시대, 삼국시대에 안산에 사람이 살았음을 방증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현재 주요 시설과 지정문화재 등을 모형과 멀티미디어 자료로 보여준다.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민속유물을 의식주로 나눠 전시하는 한편, 안산의 전통놀이인 둔배미 놀이를 소개하면서 지역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박물관은 또 맷돌과 다듬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역사적 의미가 깊은 유물부터 매일 알 낳는 닭을 키우는 전통가옥 등을 만날 수 있는 야외 전시실도 있다.
야외전시실에서는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폐능지에서 출토한 ‘석양’과 왕가의 태를 묻었던 ‘태실’, 직접 돌릴 수 있는 ‘연자방아’ 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고 즐길 것이 많으니, 조영주 학예사의 “한 번 와도 다 익히고 갈 수 없어요. 끊임없이 아이들이 몰려 온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김봉식 문화원장은 “안산향토사박물관은 문화원의 정체성을 집약해 보여주는 공간이자 전통문화의 보존 전승과 시민들의 문화공간 등 본 기능을 수행하는 효자”라며 “지역에서 높아진 문화원의 위상만큼 질적 수준이 더 높은 교육 프로그램과 기획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