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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정책/이슈>
시민 아카이빙 시대에 대한 단상
유해정 | 인권기록활동가,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보미 엄마랑 마주앉았을 때, 그는 정말 궁금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제 이야기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작가님이 처음이고, 보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사 이후 처음이에요. 저는 처음 이야기하는데, 왜 사람들이 지겹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9년간 나는 동료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왔다. 따로 또 함께 만난 유가족들이 70~80여 가구쯤 될 듯한데,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이들이 처음이라고 했다.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아 지금도 녹음기를 사이에 둔 인터뷰도 처음이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처음이라는 가족들을 만난다.
사실, 기록하는 나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들 투성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주아 엄마는 참사 직후 회사를 그만뒀다. 출·퇴근길 옆자리를 지켜주던 주아가 그립고, 주아 대학 등록금에 보태려 시작한 일은 주아 없는 미래에선 의미가 없었다. 은정 엄마는 천직이라 생각했던 미용실을 접었다. 은정이 또래 청소년들의 머리를 잘라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가족들의 일상이 멈췄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은 또한 멈춘 적이 없었다. 주아 엄마는 마음 둘 곳을 몰라 헤매면서도 시부모와 친정부모를 간병했고, 시부모의 장례를 치렀다.

알코올이 안 맞는다는 은정 엄마는 술 없인 잠을 못 잔다. 교회를 향한 발걸음은 끊었지만, 4·16가족봉사단을 만들어 전국의 구호 현장을 다닌다. 알고 있다고, 익숙하다고 생각한 순간, 인터뷰는 늘 미끄러졌다. 재난과 국가폭력의 결을 모두 가진 세월호 참사의 특성과 유가족과 죽음, 애도의 이야기가 생소한 사회적 특성들이 한몫했다. 여기에 희생자만 304명. 가족마다, 구성원들마다 각자의 사연과 방법으로 10여 년의 시간들을 밀어 올리고 있으니, 이야기는 늘 새롭고 낯설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는, 아니 모든 타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쩌면’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이라곤, 언론을 통해 접한 편집된 보도와 세간의 풍문과 추측, 그리고 이에 기반해 만들어진 납작하고 전형화된 집단의 이미지뿐이다.
다양한 편견과 꼬리표가 달린 상상의 덩어리에, 고유하고 다채로운 개인의 얼굴과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청과 만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모든 시민은 기록자

몇 년 사이 마을기록활동가, 시민기록활동가, 기억수집가, 기록노동자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록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아카이빙 사업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기록가, 아카이빙으로 명명하지 않더라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하는 행위는 흔한 일상의 풍경이다. 모든 시민이 기록자이자 아카이비스트라는 말이 가능한 ‘시민 아카이빙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자료의 생산과 보관, 사회적 활용을 도와주는 소셜미디어의 발달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손쉽게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으며, 클릭 한번으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기록을 보관하고 타자와 공유할 수 있다. 기록과 아카이빙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권력을 가진 누구, 집단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세계 속에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감각” *1)이 확고해진 것 역시 중요한 이유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어떻게 아카이빙할 것인지를 정하고 판단하는 것에도 정치와 권력이 작동한다. 어떤 기록은 적극적으로 생산, 수집되어 아카이빙되지만, 어떤 기록은 생산조차 되지 못하거나 폐기되고 탈락된다. 기록이 중요한 건 기록이 역사와 자긍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권리와 평등에 대한 감각은 자발적 시민기록을 북돋았다. 무엇을 기록하고,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4·16 세월호 참사 당시 활발했던 시민기록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또한 대전의 반성매매여성단체는 아카이빙 북을 펴내며 다음과 같이 썼다.

“여성운동사의 한 챕터로 축약되거나 생략되기 일쑤인 반성매매활동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하고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으니 그냥 먼저 기록하기로 했다. 역사가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역사를 쓰면 되니까”. *2)
사회참여와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 역시 사람들을 기록과 아카이빙으로 이끈다. 전국화되고 다양화된 기록강좌와 아카이빙 사업에서 내가 만난 수강생들은―물론 제한적이지만― 삶의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도전, 재취업 역량 강화, 재능 나눔,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 문턱(사진, 촬영, 수집 등의 익숙함) 등을 참여 동기로 꼽았다.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주어(主語)’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다. 기록은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했다.

확장되는 스펙트럼, 부상하는 고유성

시민 아카이빙 시대의 도래는 기록 스펙트럼의 확장을 가져왔다. 기록의 목적과 목표, 관점과 태도를 고민하고 그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가 증가한 것이다. 동시에 ‘기록권력’에도 적잖은 변화를 초래한다.
관 중심, 전문가 주도의 기록은 점차 시민 참여 중심의 기록으로 변화되고 있다. 일례로 향토사가 문헌, 엘리트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주민 목소리를 통해 역사와 문화, 마을이 기록되고 아카이빙된다. 관광, 경제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아이디어나 스토리텔링도 주민 속에서 찾고, 도시재생 사업엔 주민 아카이빙이 빠지지 않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증평기록관은 주민 주도 자주적 아카이빙을 원칙으로 표방했다. 경남여성가족재단은 기록전문가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한 지역 여성들과 함께 생애구술생애사 연구를 실시하는 [경남여성사 발간 중장기계획]을 수립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무엇을 썼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썼는가’이고, 더 중요한 문제는 ‘누가 듣는가’라고 말했다. *3) 아직 형식에 그치더라도, 세 측면 모두에서 변방에 위치했던 시민이 기록과 아카이빙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 시민 아카이빙의 지평도 확장됐다. 물론 과거에도 개인 기록과 아카이빙은 존재했다. 크리스마스 실 모으기, 우표 모으기, 사진첩, 일기 쓰기 등은 고전적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록들이다. 하지만 개성이 두드러지지도, 사회적 권위가 부여되지도 않았다. 공유하는 통로나 방법에도 한계가 많았다. 개인 기록과 아카이빙은 자족적 취미생활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차이와 공유에 집중한다. 사람이 집단의 일원으로만 사회에 존재할 때 개인인 ‘나’를 대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 동시에 그가 누구라도 그 한 사람의 목소리는 그가 속한 집단을 대표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하고, 서로 다른 위치성을 드러낸다. 물론 기록의 스펙트럼이 큰 만큼 자기 과시적 광고 경향도 강하지만, 사회 문제를 발굴, 기록하고 공유하려는 일군의 분투 역시 계속된다. 이 중 사람에 대한 기록은 획일화되거나 집단화된, 혹은 잘 드러나지 않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과 목소리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난, 산업재해, 국가폭력, 성폭력, 부랑인 시설 피해자를 비롯해 노숙인, 장애인, 노인, 여성, 철거민, 성소수자, 노동자 등에 대한 다채롭고 교차적인 기록과 아카이빙은 시민들이 따로 또 함께 빚어낸 눈부신 성취다.

사업을 넘어 사회로

문제는 시민 아카이빙의 사업화 경향이다. 기록과 아카이빙은 손쉽게 시민을 동원하고, 외부 자원을 편리하게 획득하는 인기 있는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 유행처럼 추진되는 관행적이고 일회적인 사업에는 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고 누구와 나눌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교육을 통해 배출한 기록활동가들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토대 마련과 생산, 수집된 기록을 의미 있게 나누기 위한 시도에도 게으르다. 기록활동가들의 역량 제고, 기록의 질적 향상, 기록의 지속가능성, 체계적인 아카이빙엔 물음표가 쳐진다. 생산된 기록, 일례로 마을기록이 정겹고, 인심 좋은 마을이라는 전형적 서사를 반복하고, 기록물이 서가나 단발성 전시에 머무르는 이유다. 특색도, 갈등도, 이후도 없으니 기록과 아카이빙을 통한 소통이 북돋아지고, 이정표가 만들어질 리 없다.

경청과 만남도 당면한 과제다. 시민기록과 아카이빙은 개인을 개별화하기 위한 시도여서는 안 된다. 타자의 현존을 일깨움으로써 알지 못하던 삶과 자신의 삶을 잇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존재들 사이의 대화에 참여” *5)하고 경청하며 만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에고(ego)에 대한 집중과 나르시시즘적 경향은 경청을 가로막는다. *6) 만남은 편견, 이념, 경쟁 앞에서 멈춘다. 회피는 목격보다 힘이 세다.
시민 아카이빙의 시대가 한때의 유행이 아닌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집단이 아닌 개인,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위치하려 노력할 때, 또 다른 기록의 첫장이 열린다.

1) 권김현영,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휴머니스트, 2019, 74쪽.
2) 여성인권티움, 『이건 내 싸움이다: 대전, 반성매매활동을 말하다』, 여성인권티움, 2019, 4쪽.
3) 이호연·유해정·박희정,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코난북스, 2021, 8쪽.
4) 권김현영,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휴머니스트, 2019, 211쪽.
5) 아를레트 파르주. 2020. 김정아 옮김. 『아카이브 취향』. 문학과지성사. 153
6) 한병철. 2017. 이재영 옮김.『타자의 추방』. 문학과지성사.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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